to guest(Wood) 헌금과 면죄부


to guest(Wood) 헌금과 면죄부

※※※ 0 3,303 2003.10.06 02:00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2000년 7월  3일 월요일 오후 01시 39분 54초
제 목(Title): to guest(Wood) 헌금과 면죄부


논의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 스테어님이 모르신다니 저로서는 뜻밖이네요. 헌금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 뻔히 알면서도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매달 "십일조"를
> 그 교회에 계속 갖다바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정말 모르시나요?

그리고 다음 글인가 다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 간단하게 얘기하죠. 헌금은 빈민 구제, 전도 활동, 해외 선교 등의
> '선한 일'에 쓰여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한국 상황은
> ...
> 간단히 계산해 보면 주일예배에서 일인당 몇천 원씩 내는 헌금으로는 당장
> 교회 관리하고 유지만 하는데도 빠듯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는 말씀 안 하셔도 이미 충분히 납득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목사도

먹고 살아야죠. 그런데 다음 단락은 제 머리가 단순한 탓인지 잘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 만약 제가 제 수입에서 적정한 부분을 헌금으로 꼬박꼬박 낸다면 그것은 제
> 크레딧이 됩니다. 그 부분이 심장병 어린이의 수술비로 쓰이면 크레딧이
> 따따불이 되고, 목사 아들의 유흥비로 쓰이면 무효가 되고 마는게 아닙
> 니다. 민주시민으로서 참정권이 권리이자 의무이듯이, 교회의 구성원이라
> 면 헌금이 제대로 쓰이도록 감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신자로서의 의무
>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도 사회와 마찬가지로, 직분이라고 부르
> 는 직능들이 있습니다. 직접민주주의가 더이상 가능하지 않듯이 교회 구성
> 원의 어느 소수가 교회예산의 집행을 담당하는 것도 불가피합니다. 비기독
> 교인들에게는 어처구니 없는 개념이지만,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종말'과
> '최후의 심판'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수십만명을 '주님께로 인도'한 공로로
> 받는 상이 수십명을 '주님께로 인도'한 공로로 받을 상보다 크다고 믿는다면,
> 수십만명의 헌금을 유용한 죄로 받는 벌은 수십명의 헌금을 유용한 죄로 받
> 는 벌보다 클 것이라고 믿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래서 목사와 장로가 오
> 히려 천국가기 힘들다잖아..."라는 말은 '은혜스러운' 말은 아니지만 제가
> 교회를 처음 다니던 80년대 초에도 종종 들을 수 있었던 말입니다.


대충 요약하자면...

1. 헌금이 어디에 쓰이든 그 용도에 따라 내 크레딧(?)이 늘거나 줄지는 않는다.

2. 신자라면 헌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3. 그렇지만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하듯이 교회 예산 집행에 일일이 개입하기는

  어렵다.

4. 헌금 빼돌리는 목사나 장로들은 천국 가기 힘들 거다.

저는 1-4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헌금은 좋은 일(?)에 써야 한다. 신자들은 내가 바친 헌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 용도를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만 그걸 평신도들이 일일이 감시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교회 예산을 집행하는 자들이 알아서 할 수밖에

없고 거기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이 내리실 거다." (맞습니까?)


이 결론을 애초의 질문과 비교해 봅시다.

> 스테어님이 모르신다니 저로서는 뜻밖이네요. 헌금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 뻔히 알면서도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매달 "십일조"를
> 그 교회에 계속 갖다바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정말 모르시나요?

'헌금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지 뻔히 알고 있는' 경우라면 적어도 '예산 집행의

감시가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는 얘긴데 그런 경우에도 역시 심판은 하나님의

손에만 맡겨 두나요? 그럴 바에야 아예 '감시'조차도 하나님께 맡겨 두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위의 1, 2, 3, 4로 요약한 내용은 헌금의 용도를 감시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라고 못박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시하기 어렵다고만 했지 감시한 결과

비리가 적발되었을 경우 어떻게 하라는 얘기가 없군요. 그리고서 '뻔히 알면서도

수십, 수백만원을 갖다바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정말 모르겠냐'고

하셨는데 솔직이 말해서 전혀 모르겠습니다. 감히 짐작해 보건대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바치는' 사람들의 생각은 비리가 적발되었어도 "내가 나서서 목사를 성토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 다아 알아서 심판하실 거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뻔히 알면서도 계속 갖다바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제가 헌금

행태를 면죄부에 비교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입니다. 면죄부가 어떤 의도로 판매되고

있는지,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갈지 '뻔히 알고 있다면' 현대의 기독교인은 면죄부를

사겠는가 안 사겠는가... '뻔히 알면서도 계속 갖다바치는 사람들'이라면 역시 뻔히

알면서도 면죄부를 살 것 같다는 겁니다.


> 그리고, 면죄부 운운하셨는데, 스테어님 수준에 좀 실망입니다. 요즘 어느
> 교회가 '헌금'과 '구원'을 연결시킵니까? 그건 두말할 나위 없이 이단이에요.
> 이건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만 보았어도
> 알 수 있는 내용 아닙니까? 기독교 내부에서 우려하는 것은 "헌금"과 "축복",
> 특히 물질적인 축복을 심하게 연결시키는 경향입니다.

1. '스테어의 수준'에 대해서는 당신이 뭔가 제멋대로 상상하시는 모양인데 제가

  그런 꿍얼거림(제오님께 배운 단어입니다)까지 받아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2. 교회가 헌금과 구원을 연결시키는 예가 얼마든지 있다는 건 '윤리 교과서'에만

  안 나올 뿐 현장 리서치를 조금만 하시면 금방 아실 수 있고,

3. 저의 '면죄부론'은 "면죄부 사서 구원 받아보자"라는 심리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뻔히 알지만 그래도 사자. 신도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내가 천당 갈

  수만 있으면 땡이다. 면죄부값 빼돌리는 넘들은 하나님이 알아서 지옥 보내실

  테니 내가 신경쓸 거 없지 않은가. 면죄부 값이 좋은 일에 쓰이든 말든 나의

  크레딧(?)에는 상관 없을 테니 더더욱 내가 알 거 없지 않은가."라는 심리에

  대한 얘깁니다.

4. 사족이지만 저는 헌금이 어떤 용도로 쓰이든 아무런 불만 없습니다. 그런 문제는

  헌금을 내는 당사자와 받아서 쓰는 당사자 간의 문제일 뿐 저는 헌금을 내지도

  받지도 않는 제 3자니까요. 제가 먼저 헌금 문제를 제기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 잊지 않으셨죠? 수십만원이든 수백만원이든 바쳐서 기쁘다면 제가 그걸 왜

  말리겠습니까.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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