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혁기님께 드리는 몇 가지 반론


황혁기님께 드리는 몇 가지 반론

※※※ 0 3,244 2003.09.30 15:04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6년04월20일(토) 11시54분36초 KST
제 목(Title): 황혁기님께 드리는 몇 가지 반론




> 어째서 완전한 존재의 인정이 신앙이 되어야하는 지 모르겠군여.
> 그렇다면 인정하지 않는 것도 '신앙'이 되는 것이죠.
> 과학적인 방법으로 모든 가능성이 배제된다는 것을 알면 남는 건 그거 하나라는
>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 보드의 '완전한 존재의 존재 문제'에 대한 논의를 벌써 잊으신 건

아니시겠지요? 완전한 존재의 인정은 논리로서 뒷받침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앙입니다. (여기까지는 이미 기독교 보드에서 서로가 동의한 바 있으니 이견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 다음으로, 완전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과연 신앙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인데... 표현을 엄밀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완전한 존재의 부재를

인정'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될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전지전능자의 존재 자체가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음은 여러 번 지적되었지만 여기서는 쓸데없는 논의의

분산을 피하기 위해 이 점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완전한 존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태도임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과학'이란 객관적으로 관측 가능한 현상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개개인의 실존적

체험은 과학의 지평에 소속되지 아니합니다.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면 대체로

'그분'의 존재성에 대한 확신을 가진다고들 합니다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관측 가능하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으므로

그것이 과학의 대상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객관적인 관측에 포착된 바 없고

객관적인 관측에 기초를 둔 엄밀한 추론에 의해 추인되지도 않은 '완전한 존재'의

존재성은 적어도 과학의 영역 내에서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과학의 영역 내에서'

라는 의미는... 완전한 존재의 존재 여부에 대한 신념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며

(그러므로 '신앙'이라고 부른다 해서 하등의 불만을 품을 필요가 없지만) 그러한

신념을 과학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부당하며 그러한 논법이야말로

'과학'의 개념 자체를 망각한 apostolicism에 불과합니다.

요약하면... 완전한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신앙이지만 과학의 영역 이내에서

완전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 믿지 않으시겠지만, 과거에 지구가 한번 15도 가량 거꾸로 돌았다가
> 다시 제대로 돈 적이 있죠. 또 지구의 자전이 거의 하루정도 일어나지
>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시기도 있습니다....
> PS: 위의 사건들은 성경을 역사서로 볼만한 근거에 의해 인용한 것입니다.

우선 '역사서'라는 개념이 불명확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史實)을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역사서로 간주한다고 하면 성경은 역사서입니다. 저 역시

성경의 역사서적인 성격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서'라는

표현에 그 이상을 담아서는 안됩니다. 즉, 논리를 뒤집어 '역사서에 씌어 있는

것은 전부 역사적 사실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약입니다.

예를 들어 박혁거세 신화를 뿌리도 줄기도 없는 허구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박혁거세라는 한 자연인의 존재 여부마저 불투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도 사실

이 점에 있어서는 나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만) 적어도 그 시대의 지배 세력에 대한

소중한 정보들이 박혁거세 신화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에서 사람이

태어났다는 등 비합리와 비논리가 만연한 자료들을 당당한 '역사서'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논리를 뒤집어 '삼국유사는 역사서이므로 곰이 사람으로 변신한 것도

알에서 왕들이 태어난 것도 모두 사실이다.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이것은 유사를

역사서로 볼 만한 근거에 의해 인용한 것이다.'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제 얼굴에

먹칠하기밖에 안됩니다. 물론 황혁기님께서 성경을 '그냥 역사서'로 보지는 않으실

테지요. 만일 성경의 '보편적인 역사서로서의 특징'만을 근거로 해서 위와 같은

인용을 하셨다면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오류입니다. 곰이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을 믿으라는 이야기의 근거로 '유사는 역사서니까'라는 멍청한 소리를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한 성경의 보편적인 역사서로서의 특징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초월적인 신뢰성에 기반을 두었다면 그것은 '성경을 역사서로 볼만한 근거에

의해 인용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성스러운 책이라고 믿기 때문에

인용했다'라고 밝히셨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황혁기님께서 어떤 의미로

인용하셨든 그 인용은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적어도 '과학적'이고 '역사 실증적'

시각에서는요. 물론 신앙인으로서는 아주 훌륭한 태도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 말씀드린대로 저의 세계관은 성경과 그를 믿는 신앙에 근거하고 있지만,
> 그것이 창조론의 전개에 있어 결론을 정하고 논지 전개를 하는 것까지에
> 영향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창조론의 전개에 있어 결론을 정하고 논지 전개를 하는 것'에 있어서 당신은

당신의 세계관의 영향을 덜 끼치는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마는

실제로는 전혀 그러하지 못함을 위의 두 예를 통해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불성실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다만 - 이런 외람된 말씀

드리는 것을 용서하신다면 - 당신의 논리와 언어구사의 허약함 때문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사족 하나만 : '창조론의 전개에 있어 결론을 정하고 논지 전개를 하는' 것이

 당신의 순서라면 먼저 결론을 정했다는 점만으로도 당신의 논의가 당신의 세계관에

 의해서 오염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같군요. *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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