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 : porori님과 기타 모든 분들께


선/악 : porori님과 기타 모든 분들께

※※※ 0 2,695 2003.09.30 04:44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9년 3월 27일 토요일 오전 04시 15분 10초
제 목(Title): 선/악 : porori님과 기타 모든 분들께



처음에 답을 드리려고 한 시점보다 많이 늦어졌습니다만 이제 저의 답을

올리겠습니다. 사실은 별로 깊은 의도 없이 쓴 글이 일으키는 파문을 보면서

저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알아듣지도 못할 layer론이나

이기적 유전자론 등을 읽느라 시간도 꽤나 축냈지요. 하여튼 'when staire

speaks out, those problems will be simplified or resolved'라는 분위기

이면서도 논쟁의 굵은 줄기는 이미 저의 손을 벗어나 있다는 묘한 상황에서

지난 몇 주를 보내면서 '이제야말로 답글을 써야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쉴새없이 올라오는 새 글들 사이에서 오히려 저의 글이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될까봐 망설일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서론은 길었지만 본론은 최대한 단순하게 쓰기로 하죠. 질문받은 것에 대해서만

대답하겠습니다.


>  staire님의 글을 보면,
> (1) 선과 악을 명료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경우는 매우 많다(가득차 있다.)       
> (2) 선과 악의 구분을 할 수 있는 일관된 원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 (3) 선과 악 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유익함'과 '불리함'만이 있을 뿐이다.
> (4) (1),(2),(3)을 볼때 기독교의 선과 악은 상상력이 결여된 유치한
>  개념이다. 그러니 사탄을 왜 무조건 미워해야 하는가?
>  라고 하셨는데,,,,
> 과연 (2)를 주장하기 위해서 (1)이  적절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까?
> 그리고 (3)은 그에 따른 논리적 결론이 될 수 있는지요?

(1), (2), (3)은 제가 선/악에 대해 갖고 있는 단편적인 인상들을 나열한 것에

불과합니다. (1)이 근거가 아니며 (3)이 논리적인 귀결이 아닙니다. 저는 (1)

에서 (3)에 이르는 논리적 필연성 같은 것을 주장하고자 하지 않았는데 이런

질문을 받게 되다니 의외였습니다. 요컨대 위의 (1)-(3)은 선악에 대한 저의

생각을 대중없이 늘어놓은 '선악에 대한 단상'일 뿐입니다.


> 무슨 이타주의 따위를 들먹이지 않아도,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 과거에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러
> 죽음을 택한 행위가 결국엔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 일종의 이기심을 추구한 것이었다고만 간주할 수 있는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전태일의 분신이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며 그 선택 아닌 다른

어떤 대안보다도 그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깡패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자신의 성적 욕망을 나름대로 만족하기
> 위한 '유익함'을 추구한 것이고 당한 당사자들은 '불리함'을 느낀 경우다 -
> 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 제 생각엔 깡패들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별로 망설임없이"
> 악의 행위라고 규정할 것 같습니다만...
(staire 註 : 흉악한 짓을 저지른 깡패들 이야기를 예로 드신 부분입니다.)

깡패들조차도 자신들의 행위를 '악'이라고 생각하겠지요. (환상님이 '아름다운

살인' 운운하셨더라도 그것이 지독한 말장난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듯이.)

저는 선악을 명료하게 가릴 수 없는 경우가 있으므로 - 그런 사례들의 존재가

논리적인 증거로서 작용하여 - 선악의 구분 따위는 없다 혹은 필요없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그 깡패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자신의

행복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깡패들을 성토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절대 다수가 선호하는 선택이므로 그것을 보편성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선악의 보편성이라기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본능의 보편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약하면, 저는 절대선/절대악의 개념은 사람들의 상상력의 산물 이상으로

생각지 않으며 대다수의 사람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선악 개념 역시

인간의 이기심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매하게 들릴까봐

다시 고쳐 씁니다. '인간의 이기심에서만'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저는 '선/악'을 '유익/불유익'의 완곡한 (정치적인) 표현으로

봅니다.


> 저는 staire님이 기독교인들과 달리 '아집'으로 보이는 태도로
> 위와 같은 원리를 주장하는게 아닌 줄 잘 알고 있습니다.
> 당연히 강요하실 생각이 전혀 없는 걸로 짐작합니다.
>
> 그러나 사르트르가 그랬듯이 , staire님도 결국엔 자신도 모르게
> 모든 사람이 취해줬으면 좋을 것 같은 도덕율을 나름대로 이미
> 갖고 계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시작 부분과는
> 달리 말입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에게든 누구에게든 아무것도 '권면'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의

세계관은 이렇다'라는것을 보여줄 따름입니다. 제가 RNB님께 '사탄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RNB님께서 정말 사탄을 사랑하려고

하실 리가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RNB님은 그 이후의 글에서

"나는 조건부 사랑을 철회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조건'이 타당한가의 여부에

대해 좀더 고민하겠다"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 어쩌고

하는 사춘기적인 표현을 굳이 빌어 쓴 이유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합시다'라고

설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선악의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세계관에서조차

기독교적 세계관과 마찬가지로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이 보드에서 진행되어 온 토론의 문맥을

- 특히 '진화론자들의 기이한 세계관'을 염려하시던 마리아님과의 논변을 -

감안하신다면 제가 그런 식으로 표현한 연유를 이해하실 듯 합니다. 아무튼

기독교인들의 세계관이나 선악관이 저의 '권면'에 의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기독교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moondy님같은 분들은 그래서 "staire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애정이 없군. 이왕

비난하려면 좀 건설적으로 해라. 우리도 귀담아 듣고 반성할 수 있도록."이라고

하셨지만 당연히 저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독교의

환골탈태'가 아닌 '기독교의 멸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간략하게 썼습니다. 간략함으로 인한 오해는 지적될 때마다 그때그때

풀기로 하지요. 애초부터 장황하게 써서 읽는이를 피곤하게 하는 것보다 이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Comments

Category
글이 없습니다.
글이 없습니다.
State
  • 현재 접속자 121 명
  • 오늘 방문자 1,384 명
  • 어제 방문자 4,469 명
  • 최대 방문자 5,411 명
  • 전체 방문자 1,463,067 명
  • 전체 게시물 14,414 개
  • 전체 댓글수 38,036 개
  • 전체 회원수 1,663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