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주의


허무주의

※※※ 0 2,916 2003.09.30 04:09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8년 9월 20일 일요일 오전 12시 31분 52초
제 목(Title): 허무주의



* 김붕구의 '불문학 산고(散考)'에서 발췌하여 올립니다. 단기 4291년(!) 글이라

  어법이 심하게 이상한 부분은 조금 손질했어요.


< 행복의 종교 - 지이드, 말로, 까뮈 >

지이드의 출발점은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쌓아놓은 카드'로써 현실을

희생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절대자를 거부할 뿐이었습니다. 즉 그 대화를

막아버리는 폭력과 편견과 고집과 거기 개입하는 위선 등을 규탄하며, 이들을

대신하는 편견 없는 양심,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자치적 모랄'을 확립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어느 시대에나 있는 낡은 휴머니즘의

낡은 가치가 고집과 억압으로 굳어버릴 때 이에 항거하여 인간해방의 모랄을

받들고 싸우는 휴머니스트로 출발한 것입니다. '남이 볼까봐', '남 앞에 얼굴을

붉힐 일을 하지 않도록...' 설교하는 부르조아 어머니의 모랄에 대하여 지이드

세대의 탕자는 '자기 언동에 대하여 자기 낯이 뜨거워지지 않는' 개인적 모랄의

반기를 든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것은 오히려 훨씬 더 까다롭고 엄격한

모랄입니다. 신의 침묵 속을 항해하는 현대인 각자가 지녀야 할 자기 나침반이며,

최고의 자리에 인간을 끌어올린 인간 시민의 자치권의 확립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말로, 까뮈에 이르러서는 일체의 가치, 어떠한 생의 의미도 없는, 깨끗이

자리를 쓸어버린 마당에서 노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쌓아놓은

화투장도 없이, 처음부터 파토를 인정하고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로는

최대한 많이, 그리고 강렬하게 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이 점은 까뮈 시대 역시

마찬가지여서,

"삶이 무의미하다면 오히려 더 잘(마음껏) 살아볼 수 있지 않은가!"

"희망이라고? 앞날의 기대라는 건 우리를 구속하고 우리 삶을 그 기대의 틀 안에

잡아넣을 뿐이다. 처음부터 희망 없이 출발한다면 절망도 없지 않은가! 죽음 저편에

피안이 없고 생의 의미를 주어 생을 정당화하는 마지막 화투장이 없다면 '솔직이

말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밖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영생? 농담 말라"는 것입니다.

"행복스럽다는 데에는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나는 기쁨을 누리기를 꺼리는

자를 천치라 부른다." (까뮈, '결혼', 1936)


그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면 이것은 이미 하나의 종교입니다. 까뮈의

'결혼'이 구체적 삶과 모든 감각의 해방을 구가한다는 점으로는 지이드의 '지상의

양식'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습니다만, 지이드의 그것이 과거의 모든 사상적 전통에

억눌린 문화병에서의 회복기의 구가라면 까뮈의 그것은 그저 싱싱한 청춘과

자연과의 티없는 '결혼'의 잔치라 하겠습니다. 까뮈의 고향, 태양이 내려쬐는

처녀지 알제리에서 벌거벗고 그저 바다의 품 안에 텀벙 뛰어들어가는 그것입니다.

(중략)

이리하여 '결혼'은 일체의 '문학'과 '철학'적인 객실을 축출하고 오직 구체적인

현실과의 빈틈없는 접촉에서 떠오르는 찬가입니다. 이러한 그의 '행복의 종교'

에서는 희망, 영생, 영혼의 구원, 국가, 역사등의 관념이야말로 삶에 대한

반역이며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일체의 신화(이념으로 현실을 마구 바꾸어

버리는 이데올로기 따위)와 위안(의식을 잠재우는 것 - 윤리적 맹종에서 종교에

이르기까지)을 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 철저한 니힐리즘이 그의 출발점입니다.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그는 그러한 자기 출발점을 검토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지프스의 신화'와 더불어 그 철저한 허무는 오직 그의 '출발점'일 뿐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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