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쓴 실존 이야기


쉽게 쓴 실존 이야기

※※※ 0 2,653 2003.09.30 03:45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8년 5월 11일 월요일 오전 04시 47분 18초
제 목(Title): 쉽게 쓴 실존 이야기



위에 다른 분들이 실재와 실존의 문제를 잘 정리해 주셨으니 저로서는 별로 덧붙일

여지가 없습니다만 '실존'에 대한 저 나름의 유치한 이해를 잠시 언급해 둘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철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므로 '실존'을

어려운 말로 설명드릴 재주는 없습니다. 지금부터 설명드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staire 나름의 실존관'이므로 철학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이라면 이 글에서 숱한

오류를 발견하실 것입니다. 실존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은 이 글을 읽지 않으시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실존'과 '실재'의 구별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꼭 읽으십시오. :)


Gatsbi님의 정의가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이므로 그냥 빌려 쓰기로 하지요. 실존이란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는 객체이자 주체'이며 '단순히 존재하는 객체'인 실재와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실존'이며 돌멩이는 '실재'입니다. 이 시점에서

제오님의 질문들에 답을 드려야겠군요. 아메바, 여우, 곰팡이, 미토콘드리아 등이

실존인지 실재인지 저는 모릅니다. 그들이 '자신'을 인식하는지 어떤지 저로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견을 밝힌다면 여우 정도라면 인간처럼 명료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며 하나의 실존으로 취급해도

될 듯 합니다. 아메바나 곰팡이, 미토콘드리아 등은 '의식'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므로 실존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짐작'에 불과합니다.


실존이라는 개념은 실존 철학이 유행하기 이전에 이미 쓰이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개념은 아닌 셈이죠.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합시다. 플라톤은 개개의 인간을 관찰하며

그 공통점에 주목합니다. 똑같은 인간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어느 것이 인간이며

어느 것이 인간이 아닌지 판단할 근거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차원이 아닌,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개념이란 것이 있을 거라고

플라톤은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인간의 '이데아'라고 불렀습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이데아가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시시껍적한 인간들보다 더 뛰어난,

흠 없는, 이상적인 인간의 속성을 갖추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을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인간 개개인은

시원찮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한 거죠. 이 '개개인'들이 바로 실존들입니다. 본질적인

인간에 비하면 어느 정도 일그러진 녀석들이죠.


플라톤 이후 2000년 이상 '본질적인' 인간만이 철학의 주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실존들은 들러리에 불과했지요. 그 전통은 칸트에까지 면면히 이어집니다.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staire가 읽은 가장 어려운 철학책이죠)에 나오는 그의 도덕 규범은

이렇게 돼 있습니다. "너의 행위의 규범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워낙 어려운 말이라 제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만... 하여튼 이 말에 따르면 바람직한 도덕률이란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닌, '보편적인 입법 원리'입니다. 즉 칸트의 도덕관에

따르면 인간이 갈등의 상황에 빠져 있을 때 선택의 기준이 될만한 보편적이고 유일한

규범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인간의 이데아가 갖는 기준입니다.

개개의 실존들은 감히 그런 규범을 내세울 자격이 없으며 때때로 그 보편적인 규범을

위반하여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절대적 진리관'과

'유일하고 보편적인 도덕 규범'을 요구하는 기독교 교회의 구미에 맞다는 이유로

크게 환영받았습니다. 근대 이후 '개인의 가치와 존엄'이라는 개념이 대두되고

기독교와 '보편 원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비로소 '실존'이 서양 철학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셈입니다.


실존의 특징은 전 우주에서 유일무이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존은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벽돌은 실존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벽돌 하나가

흠이 있거나 깨어졌으면 다른 것으로 교체한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실존이므로 그렇게 갈아끼울 수 없습니다. 사랑하던 아내가 죽었다고 해서

아내와 똑같은 외모, 똑같은 마음씨를 가진 여자와 재혼하는 것으로 온전히 해결이

됩니까?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 전처와 후처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하시기 위해 그의 자녀들을 죽였습니다. 시련이 끝난 후 다시

같은 수의 자녀를 욥에게 주었으니 보상이 다 된 것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욥의 아들딸들은 '실존'이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는 고민에 빠진 청년의 예를 들었습니다. 그는 혁명가이며 혁명 전선에

참가하고자 합니다. 그에게는 그래야만 할 도덕적 의무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또한 어머니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노모를 편히 모셔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

역시 크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의 고민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뒤지면 답이 나옵니까? 칸트의 '보편적 입법 원리'에 따라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는 되지 않습니다. 청년은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실존입니다.

다른 누구도 그 청년의 개인적인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현명한

스승'이나 '거룩한 경전'으로부터가 아니라 스스로의 치열한 고민 속에서 그 청년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본질적 인간'이 알려주는 '보편적 규범'이 아니라

각각의 실존들이 개인적 상황(실존적 상황)에 따르는 개인적 원리(실존적 원리)

로부터 답을 구해야 합니다. 유식한 체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이것을 두고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라고 말합니다. (으으... 어려운 말이로군요. 더 쉽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플라톤이 '이데아'에 주목하기 시작한 이래 '본질'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실존'이 이제야 주인공의 자리를 되찾은 거죠.


이처럼 실존들은 스스로 답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외롭습니다. 과거와

같이 답을 척척 알려주는 보편적 입법자로서의 신이 있었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요.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신의 그늘 밑으로 돌아가기보다는 당당하게 스스로

선택하는 괴로움을 감수합니다. 안락한 나무 위에서 살던 원숭이들이 위험한

지상으로 내려와 두 발로 선 것에 비견될 만한 대사건입니다. (물론 서양 철학사의

시각으로 볼 때 그렇다는 얘깁니다.)


마지막으로... Gatsbi님과 저의 편지에 '실존'이 왜 등장했는지 알려드려야 할 것

같군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것은 원래의 줄거리와는 전혀 무관한 '삼천포'입니다.

Gatsbi님께서는 '무신론적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모순을 갖는다'고 말씀하셨고 제가

'무슨 소리냐, 근거를 대봐라'라고 답하면서 편지를 통한 논쟁이 시작되었음은 이미

말씀 드렸지요? 그 '근거' 중 하나로서 Gatsbi님은 '무신론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이

신의 작품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 아니냐? 그러니 우연의 산물에 불과한 인간을

존엄하다고 하는 staire의 세계관은 모순이 아닌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간의 존엄은 인간이 우연의 산물이냐 신의 작품이냐에 무관한 문제이며

staire의 무신론적 세계관에서는 모든 실존이 존엄하므로 모순될 이유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에 쓴 글 5'는 그 근처의 논쟁들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Gatsbi님께서는 '돌멩이의 실존', '소립자의 실존'을 거론하셨기 때문에 '실존'과

'실재'를 혼동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삼천포 맞지요? :)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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