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쓴 글 5' 정리


'전에 쓴 글 5' 정리

※※※ 0 2,576 2003.09.30 03:44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8년 5월  7일 목요일 오전 04시 34분 11초
제 목(Title): '전에 쓴 글 5' 정리



Gatsbi;
그런데, 정의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듯이 존엄이란 단어에는 가치판단이란 것이
들어있습니다. 누가 존엄성을 판단하나요? 내 자신이라고 답한다면 너무 주관적일
것 같군요. 스테어님께서 존엄하신 것을 스테어님이 정의하시는데, 다른 사람이 그
사실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 사실을 어떻게 입증하실 건가요? 스테어님의 존엄을
증명하실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신다면 너무 무책임한 주관이 되어버리는군요.

staire;
무책임한 주관이라고 부르셔도 할 수 없습니다. 저의 존엄은 제가 판단합니다.
다른 사람이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저의 주관과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할
그의 주관으로 말미암은 바 제가 그를 설득하고 저의 존엄을 입증하고자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의 존엄과 만유의 존엄을 어째서 남들에게 '입증해야' 하는지요?
존엄한 자는 누가 곁에서 인정해주고 그를 위하여 영광을 돌리지 않더라도 스스로
존엄하고 영광된 존재입니다.

Gatsbi;
제 방식대로 설명하면 어렇습니다. 스테어님은 존엄하다. 신이 인정하는 한에서...
왜 하나님이 스테어님을 존엄하다고 하는가? 그건 저도 모릅니다. 다만 성경에서
그렇게 얘기할 뿐입니다.

staire;
존엄성을 부여하고 판단하는 자로서 신을 내세우는 것은 무책임한 주관이 아닙니까?
누가 신에게 물어보기라도 했다는 것인가요? 또 성경을 그 근거로 삼아 인간이
존엄하다는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성경에 대한 신뢰는 무책임한 주관이 아니라고
하실 근거(성경을 신뢰하지 않는 이를 설득할 만한)가 있으십니까? 그러나 저는
신이나 성경에 기대는 당신의 방식에 대해 불만을 품지도 무책임하다고 매도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의 방식과 저의 방식은 비슷한 정도로 객관적이고 비슷한 정도로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Gatsbi;
스테어님의 존엄에 대한 개념에서 매우 의문스러운 점이 있습니다.(이것은 꼭
답해 주세요) "존엄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돌멩이의 실존에는 사유가 없기 때문에 돌멩이는 스스로 이기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존엄하지 않다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staire;
저의 근시안적인 세계관에 의하면 존엄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족이지만 '돌멩이의 실존에는 사유가 없다'가 아니라 돌멩이는 실존이 아닙니다.
또한 실존성은 사유능력이 있음을 함의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돌멩이는 스스로
이기적이지 못한 비실존이므로 스스로 존엄하지 못합니다만 실존에 의해 투사된
실존성이 돌멩이를 존엄하도록 해줍니다. 

Gatsbi;
저는 왕양명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실존의 투사라는 개념을 쓸 때에 그
실존의 주체가 생각하는 주체(즉, 나)밖에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인식하는 주체(더 좁은 개념)가 실존을 투사시키지 않나요? 그 실존의 주체를
신이라고 보면 안될까요?

staire;
실존성을 투사시키는 주체는 물론 실존입니다. 생각하는 주체와 인식하는 주체를
굳이 분리하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실존성은 양자를 포괄하는 개념이거든요.
그리고 인식의 주체를 신이라고 보아서 안될 이유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식의
주체를 신이라고 보아야만 할 이유 또한 없다고 생각합니다.

Gatsbi;
이세상의 모든 것들(삼라만상)을 인식하는 존재-신-이 있지 아니하면 인식되지
못하는, 그러나 실존하는 존재들은 인식되는 순간에만 존엄합니까? 예를 들어
소립자가 발견되기 전까지 소립자는 존엄하지 못하다가 발견되어지는 순간에
갑자기 존엄해지는 겁니까?

staire;
사소한 문제지만 윗 글에서 '실존하는'은 '실재하는'의 착오가 아닐까 싶군요.
실존과 실재는 같지 않습니다. 소립자는 실재하지만 실존은 아니거든요. 또한
당신의 지적대로 인식되지 않는 객체는 발견되는 순간에 존엄성을 획득합니다.
존엄성이란 가치 부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는 것이므로 가치 부여의 주체가
없는 객체만의 비실존은 존엄하다거나 존엄하지 못하다는 구분이 무의미합니다.

Gatsbi;
모든 것이 존엄하다면 구지 존엄이란 단어가 필요할까요? 모든 것에 해당되는
속성이면 그것을 논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staire;
논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굳이 더불어 논하기를 청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것을 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존엄성이란 존엄하지
못한 그 무엇에 빗대어야만 비로소 존엄해지는 '상대적인 존엄'이 아닙니다.

Gatsbi;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인간은 존엄하지만 존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은 인간도
많습니다. 그들조차도 항상 존엄하다고(즉, 존엄하지 않은 존재와 분리된다고)
생각하게 할 단순명쾌한 논리를 제공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아직도 스테어님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이란 구절은 "인간은
존엄해야 한다.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는 정언명령에 따른 보조정리이기 때문에
이런 연유로 생각의 골이 깊어서 이해를 못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스테어님의
존엄의 개념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staire;
한 가지만 지적한다면 '존엄하지 않은 존재와 분리된다'라는 표현은 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당연히 저는 아무리 패악한 인간이라도 그의 존엄성을
인정합니다. 전두환이라고 해서 존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정서'에 불과하므로 당신께 설명드릴 단순명쾌한 논리 따위는 없습니다. '전두환과
같은 인간은 존엄하지 않다'라는 주장은 어쩐지 '빨갱이의 위안부들은 존엄하지
못하므로 젖가슴 좀 주물러도 된다'라는 식으로 쉽게 비약할 수 있을 듯해서 어쩐지
꺼림직하군요. 흉악범도 존엄하다는 사고방식이야말로 '죄형법정주의'의 기반이
아닙니까?

 * comment : 한총련 사건에서 경찰이 여학생들을 성희롱하며 '빨갱이 위안부들의
  젖가슴 쯤은 좀 주물러도 된다'는 식의 발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이 이
  토론 바로 직전의 일이었습니다. *

Gatsbi;
공리와 진리에 대해서 혼동이라... 무엇이 공리인지를 확실히 안다면 제가
착각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을텐데.. 우리의 대화에서 아직까지 무엇이 공리인지
모르겠습니다.

staire;
저의 공리 : 모든 것은 존엄하다
당신의 공리 : 우연의 산물은 존엄하지 않다
양자는 모두 검증받은 적이 없는 전제일 뿐입니다. 둘 중에서 어느 편이 옳은지
혹은 둘 다 틀렸는지 모를 일이지만 만일 어느 한 쪽이 옳다면 그것은 공리의
차원을 넘어 진리로 인정받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괴델의 지적대로 저의 공리계
내에서 위의 두 공리 중 하나를 택하거나 버릴 근거를 얻기는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공리계 내에서 위의 두 공리 중 하나를 '틀린 공리'라고 부르고 있으며
저는 그 근거가 매우 궁금했습니다만 아직은 설득력 있는 대답을 들은 것같지
않습니다. 저의 공리계는 아직도 당신의 공격 앞에 이렇다할 모순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당신께 드리는 저의 답변이 저의 공리계 내에서 정합성을
잃지 않고 있으니까요.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Comments

Category
글이 없습니다.
글이 없습니다.
State
  • 현재 접속자 101 명
  • 오늘 방문자 1,824 명
  • 어제 방문자 4,469 명
  • 최대 방문자 5,411 명
  • 전체 방문자 1,463,507 명
  • 전체 게시물 14,414 개
  • 전체 댓글수 38,036 개
  • 전체 회원수 1,663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