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늦었지만] 완벽한 것은 존재한다?


[무척 늦었지만] 완벽한 것은 존재한다?

※※※ 0 2,287 2003.09.28 10:35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6년03월13일(수) 05시30분37초 KST
제 목(Title): [무척 늦었지만] 완벽한 것은 존재한다?



하야니에게... 지난 2월 3일의 글이니까 한참 늦었군. 하여튼 지금의 text는

minus님을 향한 자네의 답글일세.


> 가장 완벽한 것,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보시겠어여?


사소한 문제이지만 짚고 넘어가기로 하지. 이후의 논의를 뚜렷이 하기 위해서.

완벽함에 비교급이 있는가? 만일 비교급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적 완벽'이

아니라고 이해해도 되는가? 자네의 논의로부터 미루어 짐작하건대 자네가 신을

묘사할 때 쓰는 '완벽'이란 어휘에는 비교급이 없다고 가정하겠네. '완벽하다'라는

한 마디로 충분하지 않은가? 가장 완벽하다거나 더할 수 없이 완벽하다는 표현이

설마 '상대적 완벽'이나 '완벽성의 비교 우위'를 의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감히

속단(?)하고서 출발하기로 하지.


> 우리는 개념적으로 '완전'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그러한 것을
> 직접 관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개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 완전한 존재는 분명히 있고 우리로 하여금 완전한 개념들을 생각할 수 있게
> 해줍니다. 그 존재야말로 '신'이 아닌지요?


첫째, 우리가 개념적으로 '완전'이 무엇인지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보장은

아무데도 없네. 완전의 개념 자체의 완전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이후의 자네의

논리는 사상누각이라네.

둘째, 완전의 개념이 곧 완전한 존재의 증거일 수는 없네. 망상적인 개념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이 그 망상 속의 온갖 대상들의 존재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째, '완전한 존재는 분명히 있고 우리로 하여금 완전한 개념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줍니다.'라는 자네의 논법은 명백히 '결론으로부터의 증명'일세. 아직 쌍방이

합의하지 않은 내용을 이용하여 논증해서는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첫째 문제일세. 여기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제 2, 제 3의

문제점은 논할 가치도 없다네.


>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존재란 속성이 없는 신이라면
> 이미 '더할 수 없는 완벽한 존재'라는 정의에 어긋납니다. 즉 완전한 신이란
> 개념으로나 실제로도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죠.


솔직이 이 부분의 논의에 대해서는 실망을 금할 수 없네. 이것은 성 안셀무스의

신의 존재 증명과 한 치도 다르지 않으며 이러한 논리의 오류는 칸트 이전에 이미

지적되어 폐기된 지 오래인 논법일세. (신학자 겸 철학자 코플스턴은 이 논법을

tautology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20세기에 이런 착각을 반복하는 사람은 - 적어도

논리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 한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네. )


반박 1 : '완전함'의 개념이 '존재함'을 함축하고 있다는 대전제에 동의할 수 없네.

완전함의 개념이 '부재함'을 함축하지 못하는 마땅한 이유가 없기 때문일세.

신학자들은 '존재가 부재보다 우월하므로 존재와 부재를 겸할 수 없는 한 완벽한

대상은 존재를 택한다'라고 전통적으로 설명해 왔으나 이러한 변명은 세 가지

약점을 안고 있네. 첫째, 존재가 부재보다 우월하다는 명제에 아무런 근거가 없고

둘째, 완전한 대상이 '존재와 부재를 겸할 수 없다'는 불완전성을 보이고 있으며

세째, 이러한 논법은 서두에 설명한 '비교적 완벽에 가까운' 완전성에 대한 논의로

환원됨으로써 절대적 완전성의 논의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네. 속된 말로 '부재할

재주도 없는 신은 완전하지 않다'는 반박이 가능하다네.


반박 2 : 이 명제는 삼단논법의 형태를 갖추고 있네. 즉,

          대전제 : 어떤 대상 G는 완전하다.

          소전제 : 완전한 대상은 존재하는 대상이다.

          결  론 : 그러므로 어떤 대상 G는 존재한다.

안셀무스는 대상 G 대신에 '신'이란 표현을 썼지만... 여기에서 대전제인 '어떤

대상 G는 완전하다'는 대전제를 부정하면 전체 논리가 무너진다네. 즉, 신이 완전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신이 존재한다고 믿을 이유가 없지.


반박 3 : 논리의 군더더기를 쳐내고 핵심만 남기면 이 명제는 이렇게 변한다네.

'존재하는 어떤 대상은 존재한다.' 즉, '완전함'이라는 개념 중에 실제로 '증명'에

도움이 되는 '존재성'만을 남기는 것일세. 이러한 단순화가 이 명제를 더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어줄 뿐 변질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코플스턴은 이런

과정을 거쳐 안셀무스의 신의 존재증명은 tautology이므로 당연히 참이라고

생각했네. 그러나 '존재하는 어떤 대상은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그 대상이 관찰

가능할 때에만 성립하네. 사유의 대상에 대해 이 명제를 적용할 수 없음을 러셀이

예증한 바 있네. '존재하는 둥근 네모꼴은 존재한다'라는 엉터리 명제가 tautology

인가? 'staire의 손바닥 위에 존재하는 주먹만한 금덩어리는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참이라고 생각하는가? 즉, 기본적인 명제인 '존재하는 어떤 대상은 존재한다'라는

틀에서 '어떤'이라는 modifier에 따라 이 명제는 참일 수도 있고 참이 아닐 수도

있다네. 이러한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미 눈치챘겠지만) 반박 2가 설명해주고

있다네.


...... 따라서 '신은 완벽한 존재이므로 존재한다'는 자네의 논변은 한갓 오류에

불과하다고 감히 선언할 수 있지.


* 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자네의 논법이 내부적인 모순에 의해 전혀 신의

 존재성을 옹호하지 못한다는 지적일세. 반박은 환영하지만 핀트 안 맞는 반박은

 사절하겠네. *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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