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와 비밀


비유와 비밀

※※※ 0 2,214 2003.09.28 10:34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6년03월05일(화) 02시18분52초 KST
제 목(Title): 비유와 비밀



* elcom님, 저는 그런 일로 마음 상하지 않습니다. *


마가나 누가를 인용했더라면 조용히 넘어갔을까요?

아시다시피 마태의 원전은 몇 가지가 있고 마가 역시 여러가지 원전들이

남아 있지요. 물론 이 원전이라는 용어는 마태나 마가 자신이 스스로 집필한

진짜 원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원전'들 사이에서조차 모순과 불일치는

존재하니까요.


원전들 중 하나는 진짜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진짜'가 어느 원전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수많은 성서학자들이 입씨름을 벌였고 불행히도 그것은 순수한 학술적

또는 신앙적인 차원의 논의를 넘어 수많은 무고한 생명 - 대부분 원전을 해독할

능력조차 없는 순진한 신자들 - 이 멸살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정통파' 교회는

이들의 피바다 위에 서 있지요. (어쩌면 이러한 피비린내나는 아귀다툼이야말로

'신앙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요.)


오늘날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의 진짜 원전이

과연 존재했느냐 하는 것은 알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원전들조차 성립 과정에 긴 시간이 걸렸고 그 와중에 서로간의 참조에 의해

변형되어 어떤 부분은 원전 A가 source인 것을 원전 B에서 변형시겼으며 어떤

부분은 원전 B에 있는 것을 따서 원전 A에 변형된 형태가 남아 있는 등 매우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구절로 돌아가면... 여기에서의 저작 순서는 분명히 마가가 먼저입니다.

누가에서도 마가와 일치하고 있지요. 따라서 대부분의 신약학자들은 마태의

표현을 '변형된 것'으로 봅니다. 실제로 마태의 원전들 중에는 마가에서와 같이

'알지 못하게 하여'라고 씌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관 복음서
                                                      ~~~~~~~~~~~~~~~~
사이의 차이점을 굳이 드러내보일 의도로 인용하지 않는 이상 평행기사의 인용은
~~~~~~~~~~~~~~~~~~~~~~~~~~~~~~~~~~~~~~~~~~~~~~~~~~~~~~~~~~~~~~~~~~~~~~~~~~~
가능한 한 변형되지 않은 것으로 쓰고자 합니다.
~~~~~~~~~~~~~~~~~~~~~~~~~~~~~~~~~~~~~~~~~~~~~

이상의 논의로부터 제가 마태를 인용한 과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납득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로 예상되는 반론 '이사야를 인용했다면 마태

쪽이 옳은 것이 아닌가'라는 논의에 대해 답변하지요.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마태와 마가의 불일치를 이 글에서 강조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러한

불일치로 인해 저는 마태를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만 이 점은 다음 기회에

논의하기로 하지요.)


초기 교회의 중요한 교의 중 하나는 '우리 교단은 비밀(mysteria)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대화를 통해 '숨겨진 신비'와

'비밀의 지혜'를 발견했다고 언급하면서 이것을 모든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온전한 자'들에게만 가르친다고 말합니다.(고린도전서 2:6) 불트만은 이 말을

바울이 비밀 전승(esoteric)을 안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했지만 이것은

바울이 영지주의 교인이었다는 식으로도 해석될 위험성(저의 입장에서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습니다만)을 안고 있으며 Sroggs등 여러 학자들은 여기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초기 교회는 자신들이 하늘나라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것은 위에 zuhwan님께서 인용하신 여러 구절들로부터

명백하므로 다시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이러한 교의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성경의 집필자들은 이사야를 인용하였습니다.

이사야가 왜곡되어 인용된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구약에 대한 지식은 구약학이 치밀하게 정립된 오늘날의 학생들보다 오히려

빈약하고 부정확했습니다. 우선 구약의 언어는 당시의 통용어인 아람어가 아니며

실제로 배우지 못한 이들은 간단한 기도문마저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탈무드에는

'욤 바에폴 하시시 하샤마이엠...'이라는 짤막한 기도를 암기하기 위한 어느 청년의

필사적인 바보짓이 실려 있을 정도입니다.) 율법학자들마저도 구약의 해석을 놓고

의론이 분분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구약의 구절들을 문맥으로부터

떼어내어 필요에 따라 견강부회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는 시대였으니 예수나

복음서 저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마태와 마가의 불일치를

이사야에 묻는 방식의 고증 방법은 그 효용성이 상당히 제한됩니다. 오히려

복음서 저자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집필했는가 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초기 교회가 비밀을 배타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은 정통 교회도

인정합니다. (인정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지요.) 그리고 그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문제의 마태/마가/누가의 구절들입니다. 따라서 블레이크의

입장은 - 적어도 주환님께서 지적하신 논리의 선상에서 볼 때에는 - 오류가

아닙니다. (물론 저의 입장은 블레이크와 다릅니다만 그것은 그야말로 과격한

것이므로 이 보드에 쓸데없는 분란을 초래하고 싶을 때가 오지 않는 이상 공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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