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어록 - 친애하는 버트란드 러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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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님이 정리하셨습니다)

러셀어록 - 친애하는 버트란드 러셀 2

몰러 0 5,385 2005.06.30 21:03

ㅇ 기독교가 좋은 점도 있었고 좋았던 적도 있다고??


(전략) 당신이 그런 맹비난을 받는 부분 중 일부는 당신에게는 시련이었겠지만, 일부는 당신이 어떤 이상한 것을 말씀하셨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확고한 기독교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 중에는 다방면에서 매우 친절하고 관용을 보여주고 타인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공언하신 것은 큰 잘못이 아닐까요? 또 하나는 예배의식을 기독교인이 믿고 있는 독단적 교의라고 생각하신 점입니다. 저는 또한 당신이 종교적인 신념 속에는 진리 따위가 있을 수 없다고 아주 간단하게 그 가능성을 무시해버린 점에 진정으로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중략)

어느 시대보다 더 철저하게 사물을 음미하는 것은 당신들의 시대가 아닐까요?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 결과 발견된 것을 공평하게 판단해보면 이럴 것입니다. 기독교도 두 가지 면에서 진보가 있었습니다.

미신과 불필요한 교의가 다방면에서 뿌리째 뽑혔습니다. 철학적으로도 크나큰 수확이 있었습니다. 부적당한 유신론자의 주장에는 무거운 형벌이 가해졌습니다. 더욱이 어떤 종류의 주의나 주장은 검증을 통해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아퀴나스가 했던 방법이며, 현대의 일원론자들이 새로이 당면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저는 당신의 악의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간과할 수만은 없군요.

당신은 진실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았습니다. 즉, 철학자, 신학자, 역사가에 의한 반세기에 걸친 업적에 관해서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쓰는 이유는 당신이 일반인들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어느 점에서는 당신이 아무도 바라지 않는 오류와 독단으로 이끄는 사람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여왕이 우리 조상의 ‘위대한 신앙심’이라고 말씀하신 그 말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속의 어떤 것은 우리 대부분의 공통의 신앙에 맞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십니까? 만약 당신이 선의로 쓴 이 편지를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아무쪼록 저의 성의를 다한 이 기분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홀스워스 신부님, 보내주신 서한 감사했습니다. (중략)

물론 저는, 극히 소수의 기독교인이 인간적 감정에 충만하여 많은 사람들의 고뇌를 줄이려는 의도를 갖고 영웅적인 생애를 살아온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제가 생각하는 것은, 그러한 사람들까지도 그 활동이 제도로서의 교회의 면목이나 세력에 사로잡히게 되면, 고의가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이로움보다는 해로움을 더 많이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당신과 저 사이에 어쩔 수 없는 상충된 의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교회가 역사를 통하여 마치 자비롭거나 그 창립자의 정신에 존경을 바치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예를 들어 이교도와 마녀들을 화형 시킨 것과 같은 중세의 잔혹한 행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부드러워졌는가를 자문해보면, 자비를 위한 온갖 운동의 주창자는 종교계의 소위 정통파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알 것입니다. 교회는 해부에 반대하여 의학의 진보를 막았습니다. 교회는 지질학 때문에 매우 놀란 나머지 파리대학의 신학부였던 소르본느 대학은, 오늘날 산 중에는 이 세계만큼 오래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주장한 뷔퐁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교회는 영원한 지옥이나 타락이라는 도그마를 완화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통파가 아닌 사람들의 공격에 완전히 굴복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산아제한에 대한 교회의 반대가 성공하게 된다면, 수소폭탄에 의하지 않고는 빈곤과 기아가 인류의 영원한 운명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제가 교회가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에 일부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주장하는 교의가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험적으로는 진리가 유용한지 아니면 오류가 유해한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 서한의 후반부 내용은 지적인 논의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신의 존재에 관한 낡은 논의를 자꾸 새로이 말해봤자 조금도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철학자, 신학자, 역사가에 의한 반세기에 걸친 업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철학자도 많은 학파가 있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틴대제 이후 서양 철학자의 대부분이 기독교의 교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거의 모든 시대에, 그리고 거의 모든 기독교국가에서 제대로 일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생활비를 벌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중략)

제가 이와 같은 모든 것을 독단적으로 말씀드린 이유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말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것들 중에는 물론 이론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당신은 여왕이 말씀한 ‘위대한 신앙심’에 대해서 묻고 계십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그것을 황당무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의 신앙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다음과 같은 신앙도 있습니다. 인간을 산 채로 불에 태우고, 반역자를 교수형에 처하고, 그 내장을 끄집어내고, 그 사체를 네 갈래로 찢고, 범죄수사에 있어서 고문이라는 방법을 써야 하며, 건강한데도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 있는 부랑자는 낙인을 찍어야 한다는 따위의 신앙 말입니다. 저를 이런 신앙 속에서는 도저히 ‘위대한’ 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물론 때때로 누군가가 품은 신앙으로, 이러한 신앙보다 훨씬 좋은 신앙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영국인이 죽인 엘거넌 시드니와, 또 죽이고자 했던 토머스 제퍼슨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말해서 과거에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던 신앙은 잔혹했고 무지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편지를, 가령 견해차는 있을지라도, 저는 조금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95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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