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도덕적 문제

(예수의) 도덕적 문제

분석가 0 4,624 2002.08.03 16:09
이제 도덕적 문제로 넘어가보자. 내가 볼 때 예수의 도덕적 성격에는 대단히 중대한 결함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그가 지옥을 믿었다는 점이다. 나는 누구든 진정으로 깊은 자비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원한 형벌 따위를 믿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음서에 그려진 대로라면 예수는 분명히 영원한 형벌을 믿었으며, 자신의 설교에 귀 기울이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보복적인 분노를 터뜨리는 대목이 수차례 발견된다. 이러한 태도는 평범한 설교자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것도 아니지만 훌륭한 존재가 그랬다는 것은 어쩐지 그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에게서는 그러한 태도를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자기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매우 부드럽고 점잖았음을 보게 되는데 내 생각에도 격분하는 것보다는 그 쪽이 훨씬 성자다운 태도가 아닐까 싶다. 아마도 여러분은 소크라테스가 죽어가면서 한 말이라든지, 자기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늘 했던 말들을 기억하실 것이다.

여러분은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보게 된다. '너희, 뱀의 무리,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찌 지옥의 저주를 면하겠느냐?' 예수가 자신의 설교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한 말인데, 내가 볼 때는 결코 좋은 어조가 아니다. 복음서에는 지옥을 언급하는 이런 말이 대단히 많다. 성령을 거역한 죄악에 대하여 언급한 유명한 구절도 있다. '누구든 성령을 욕되게 말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용서받지 못 하리라.' 이 구절은 이 세상에 말할 수 없이 많은 불행을 가져왔다.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니 모두 성령에 대해 죄를 지은 것 같아 모두들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하겠구나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진실로 자비로운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면 결코 그와 같은 공포를 이 세상에 심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인자가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그의 왕국에서 거역하는 자와 부정하는 자를 모두 거두어 불가마에 던져버리리니, 거기서 통곡하고 이를 갈게 되리라.'
통곡하고 이를 간다는 대목을 예수는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예수가 통곡하고 이를 가는 장면을 떠올리며 어떤 쾌감을 느낀 건 아닌가 의심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처럼 자주 언급될 리가 없다.

다음으로 여러분은 양과 염소에 관한 대목을 기억할 것이다. 재림이 일어날 때 양과 염소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얘기하면서 예수는 염소들을 이렇게 말한다.

'너 저주받은 자여, 내게서 떠나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계속해서 '이들은 영원한 불 속에 사라지게 하라.'고 한다. 이어 다시 이렇게 말한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속에 들어 가는 것보다는 불구의 몸으로 영원한 생명에 들어 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이 얘기 역시 예수는 계속해서 되풀이한다. 나는 죄에 대한 형벌로서 지옥불로 다스려야 한다는 이 모든 교리가 잔인한 교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세상에 잔인성을 심고, 대를 잇는 잔인한 고문에 정당성을 부여한 교리다. 그렇게 된 원인을 따져 볼 때, 복음서 기자들이 묘사한 대로라면 분명 복음서의 예수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성은 다소 덜하지만 그밖에 다른 예들도 있다. 이를테면 가다렌(Gadarene) 지방의 돼지떼에 대한 대목에서는 정말로 무자비하게도 마귀를 돼지들 속에 들어가게 하여, 온 돼지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 속으로 빠져버린다. 여기서 여러분은 예수가 전능자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그저 조용히 그 마귀들을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귀들을 돼지들 속에 들여보냈다.

이번에는 들을 때마다 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무화과 나무에 관한 희한한 얘기가 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얘기지만 그 내막은 다음과 같다.

"시장기를 느낀 예수가 멀리 서 있는 이파리 무성한 무화과를 보고 먹을 것이 있을까 하고 그리로 갔다. 무화과 나무에 가보니 아직 열매 맺을 때가 되지 않아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예수가 나무에게 이르기를 '지금부터 영원히 아무도 네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하니... 베드로가 예수에게 말하기를 '주여, 주께서 저주하신 저 무화과 나무를 보소서, 시들어 버렸나이다.'고 하였다."

참으로 이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무화과가 열릴 철도 아닌데 나무를 탓하다니 말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예수가 지혜로 보나 도덕성으로 보나 역사에 기록된 다른 사람들 만큼의 위치에 있다고 볼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석가나 소크라테스를 예수 위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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