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편집자 서문

버트란드러셀의 글 모음입니다.
(몰러님이 정리하셨습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편집자 서문

분석가 0 4,340 2002.08.04 01:29
편집자 서문
버트란드 러셀은 일평생 다작한 문필가였으며 소책자, 여러 정기 간행물들에 실린 기고문 중에도 뛰어난 것이 많다. 이 점은 특히 종교에 관한 그의 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중 많은 것들이 일부 합리주의자 그룹 외에는 알려지지 못했다. 편집자는 이 책에서 종교에 관한 이러한 에세이를 비롯해 <자유와 대학>, <우리의 성 윤리>같은, 지금도 여전히 큰 관심사가 되고 있는 글들을 엮어 보았다.

러셀은 논리나 인식론 같은 순수하게 추상적인 주제들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명성이 높지만, 도덕과 종교 면에서도 그가 위대한 이단자에 속했다는 점 역시 장차 중요하게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그가 순수하게 기술적인 의미의 철학자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늘 종교들이 각기 나름의 대답을 제시해 온 근본적인 의문들- 다시 말해,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선한 삶의 성격에 관한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문제들을 그는 초지일관 예리함과 재치, 감탄할 만한 어법으로 다루면서 그의 여타 저작들을 유명하게 만들었으며 그 번뜩이는 문체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다. 이러한 특징들이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을, 자유사상가의 견해 표명 가운데 흄이나 볼테르 시대 이후 가장 감동적이고도 우아한 것으로 만드는 것 같다.

버트란드 러셀의 종교에 관한 책은 어느 시대에든 출간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오늘날 종교의 부활을 노린 운동이 온갖 교묘한 현대식 선전 기법을 동원해 자행되고 있는 것을 목도하는 우리로서는 비신자의 주장을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특히 바람직하게 느껴진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는 이곳 저곳 어느 구석에서라도, 높거나 낮거나 중간 그 어느 수준에서나, 무차별적으로 종교적 선전의 폭격을 받아왔다. <라이프>지는 아예 다음과 같은 편집 방향을 잡아 두고 있다.

'독단적 유물론자들과 근본주의자들을 제외하면, 진화론과 기독교 신앙 사이의 전쟁은 종결된지 오래이며 우주나 생명, 혹은 인간이 순수하게 우연에 의해 진화되어 왔다는 견해에 대해 ... 과학 자체도 자신있게 확인해 주지 못하고 있다.'

유달리 점잖은 대접을 받는 종교 옹호론자의 한 사람인 토인비 교수는, "우리는 세속적 근거에서 공산주의자의 도전에 맞설 수 없다."고 말한다.

노르만 빈센트 필, 몽시뇨르 쉰, 기타 종교적 정신병학 교수들은 수백만 명이 보는 컬럼에서, 베스트셀러에서, 매주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는 라디오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신앙의 축복을 찬양해댄다. 당적을 막론하고 정치인들도, 지난 날 공직을 두고 다투기 전까지는 전혀 신앙인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교회에 충실히 나간다고 주장하면서 박식한 강연을 할 대마다 빠지지 않고 신을 들먹인다. 우수한 몇몇 대학 강의실을 제외하면 이러한 문제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종교세력의 공격이 대규모 선전에만 국한되지 않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비종교주의자적 관점을 단호하게 역설하고 있는 본서와 같은 책이야말로 무엇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미국의 경우 종교세력의 공격은 헌법에 명시된 교회와 국가의 분리 원칙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는 무수한 형태의 시도들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러한 많은 시도들이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이러한 혼란스러운 경향을 내버려 둘 경우 기존 종교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류 시민으로 만들어 버릴 소지가 충분히 있음을 보여 주는 두세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몇 달 전 하원 산하의 한 위원회에서는, '신에 대한 충성'은 최고의 통치 서비스에 필수적 조건이라고 하는 놀라운 주장을 결의안에 포함시켰다. 이 입법가들이 공식적으로 주장한 바로는 '행정부 내 혹은 산하의 어떤 지위에 있는 어떤 사람의 서비스든, 반드시 신에 대한 신앙을 그 특징으로서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의안이 아직 입법화된 것은 아니지만 거센 반대 운동이 일지 않는 한 조만간 법률화될 수도 있다. '우리는 신을 믿는다.'는 주장을 미국의 국가적 표어로 만들고자 하는 또다른 결의안도 이미 상하 양원을 통과해 법률이 되어 있다. 이와 유사한 움직임들에 대해 솔직하게 비판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ㅇ 중 하나인 뉴욕 대학의 조지 악스텔 교수는 한 상원위원회 앞에서 행한 증언에서, 이러한 움직임들은 교회-국가 분리의 원칙에 대한 '작지만 중대한 침식' 행위라고 적절히 표현한 바가 있다.

헌법이 금한다고 명시하는 부분들에 종교를 주입하려는 시도는 비단 연방 법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눈에 띄는 예로 뉴욕 시의 경우를 들 수 있다. 1955년, 교육위원회 산하 감독 위원회에서는 '감독관 및 교사들을 위한 지침서'에서, '공립 학교들은 우리나라가 종교 국가라는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고 신에 대한 믿음을 고무시키며 한발 더 나아가 자연법 및 도덕률의 궁극적 원천은 신이라는 것을 밝혀두는 바이다.'고 불쑥 명시한 선언문을 준비했다. 만일 이 선언문이 채택되었더라면 뉴욕 시의 교육 과정 가운데 종교의 침략을 모면할 수 있는 과목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과학이나 수학 같은 명백하게 비종교적 학문에 대한 교육조차 종교적 색채를 띤 채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 선언문에서는 이렇게 밝혔다.

'과학자들과 수학자들은 우주를 논리적이고 질서 정연하며 예측 가능한 곳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늘의 그 광대함과 웅장함, 인간 심신의 경이로움, 자연의 아름다움, 광합성 작용의 신비, 우주의 수학적 구조, 혹은 무한의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결국 신의 작품 앞에 고개 숙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늘은 신의 손으로 빚은 작품임을 생각할 때이다.". '

더 나아가 '산업 미술'과 같은 순수한 학과목조차 그대로 두지 않았다. 감독위원회의 철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산업 미술에서 변함없이 이용되는 물질들의 고유 속성과 전기 작용, 금속과 곡물 성분, 목재의 아름다움에서 관찰되는 경이로움은 자연 세계의 계획성과 질서에 대한, 그리고 지고한 능력의 경이로운 작업에 대한 사색을 불러 일으킨다.'

이 보고서가 발표되자 민간 단체는 물론 보다 자유로운 몇몇 종교 단체들로부터 엄청난 분노가 터져 나오는 바람에 교육위원회는 이것을 채택할 수 없었다. 결국 가장 심한 반대에 부딪힌 구절들을 손질한 수정문이 곧이어 채택되었다. 그러나 그 수정 문안조차도, 비종교인이라면 눈살을 지푸릴 만한 종교적 언어들 투성이여서 그것의 합헌성을 두고 법정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종교업자들의 침해 행위들에 대해 지금까지 별다른 반대 여론이 일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의 종교는 유순하고 관대하며, 박해는 과거지사라고 보는 시각이 널리 퍼진 것이 그 한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스러운 착각이다. 물론 종교계 지도자들 가운데는 자유와 관용의 진정한 옹호자들도 많고 더 나아가 교회와 국가의 분리 원칙을 굳게 믿는 이들도 많기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할 수만 있다면 예전처럼 박해를 가하고자 하고 그것이 가능할 경우 기꺼이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영제국의 상황은 다소 다르다. 이 나라에는 국교회가 존재하고, 모든 국립 학교에서 종교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인가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성향은 훨씬 더 관대해서, 공직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비신자라는 사실을 별 주저 없이 공개하곤 한다. 그러나 영국에서도 종교를 옹호하는 저속한 선전이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보다 공격적인 종교 집단들은 자유 사상가들이 견해를 발표하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베버리지 리포트는 BBC 방송에 대해, 합리주의자 대표들의 견해도 듣게 해주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BBC는 공식적으로는 이 권고를 받아들였으나 실행하기 위한 아무런 후속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종교를 배제한 도덕'을 다룬 마가렛 나이트 여사의 토크쇼는 중요한 화제에 관한 비신자들의 견해를 알리려는 극히 소수의 시도들 가운데 하나였다. 나이트 여사의 토크쇼가 각종 편협주의자들 측의 격렬한 분노를 야기하자 이에 놀란 BBC는 예전처럼 종교업자들에 아첨하는 자세로 되돌아갔다. 버트란드 러셀이 뉴욕 시립대 철학과 교수로 부임하려 하자 끝까지 방해하여 결국 좌초시킨 것도 바로 이러한 세력들이다.
.......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이 작업을 격려해 주셨던 러셀 본인에게도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변함 없이 이어진 그의 깊은 관심이야말로 큰 자극이 되었다.

                                                                  1956년10월, 뉴욕시에서
                                                                                 폴 에드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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