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어록(인기없는 에세이들 中에서) 7

러셀 어록(인기없는 에세이들 中에서) 7

몰러 0 4,055 2002.08.14 06:28
○ 사랑에 대한 이해

그리스도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했으며 ‘누가 네 이웃인가?’라는 질문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었다. 만약 이 비유를 그리스도의 말을 직접 들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 같이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사마리아인의 자리에 독일인이나 일본인을 넣어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그런 식의 이해를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이해는 그들이 자신들의 종교설립자의 가르침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을 관찰해 보면 그들이 사랑하는 이웃의 범위는 같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을 때가 많다. 어떨 때는 신앙적 ‘사마리아인’은 물론이고 같은 동료를 헐뜯을 때도 있다.



○ 당혹스러운 죄의 개념

나는 죄라는 개념이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분명 나의 ‘죄 많은’ 성격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만약 ‘죄가 불필요한 괴로움을 야기시키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죄는 역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영국 상원에서 고통스럽고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법률안이 제출된 적이 있다. 그런 경우 의사의 동의와 함께 환자의 동의도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엔 환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그러나 영국의 공식적인 ‘죄 전문가’인 캔터베리 대주교는 그러한 견해가 잘못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환자의 동의는 안락사가 곧 자살이 되고, 자살은 죄이기 때문이다.

상원은 대주교의 권위에 눌려 그 법률안을 기각했다. 따라서 대주교를 -그리고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을- 기쁘게 하려고 암 환자는 담당의사나 간호원이 살인을 범할 만큼 인간적이지 않는 한은 몇 개월 동안 완전히 불필요한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다. 나는 신이 그런 고통을 보면서 즐거워할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 또 그렇게 터무니없이 잔인한 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런 신은 숭배할 가치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들은 단지 내가 얼마나 깊이 도덕적 타락(기독교적 관념으로 정의된 타락)에 빠졌는가를 증명해 줄뿐이다.

불치병, 불구 같은 질병들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고전적인(이때는 고리타분하다는 말의 고상한 표현이다) 관념은 신의 징계, 또는 시험이라는 것이다. 이때에 신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에 대한 견해는 정해지지 않았다. 사실 후천적인 질병에 한할 때 이런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선천성 불치병이나 불구 즉, 유전병이나 부모의 잘못으로 인하여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들이다. 도대체 이 아이들에 대한 신의 의도는 무엇인가? 불가에서는 전생의 업이라는 말로 변명을 할 수나 있다. 하지만 기독교의 신은 어떤 변명조차도 할 수 없다.

부모의 죄일까? 부모에게 간접적인 고통 즉,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주기 위해 아무 죄 없는 아이가 고통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하긴 악마와의 유흥을 위해 욥의 가족과 하인들이 몰살되어도 수수방관한 신이니 다운증후군 따위를 앓는 아이는 별일이 아닐 게다. 최소한 목숨이 붙어 있으니 말이다.

그럼 선천성 질병도 원죄의 고통인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신은 더 이상 공평하지 못하다. 나중에 천국으로 보상한다고? 만약 그렇다면 나는 신이 왜 그 아이로 하여금 자신을 숭배할 기회를 주지 않는지 그 이유가 더 아리송하다.




○ 무지가 낳은 인간의 야만

우리가 지금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견해들을 잘 검토해보면 열의 아홉은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것을 핍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의학에서는 최초로 마취법이 개발되었을 때 그것은 신의 뜻을 훼손하기 위한 의도를 가진 사악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또 정신병은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고 악마가 머물지 못하도록 환자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치료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견해에 따라 정신병자들은 수년 동안 조직적이고 고의적인 야만성에 시달려야만 했다. 나는 옳지 못한 의학적 치료법이 환자에게 바람직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의학에 있어서 불합리한 견해는 과거의 것만이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소위 기도원에서는 육체에서 악마를 몰아내기 위한 치료법으로서 구타가 활용되고 있으며, 안수기도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도원을 취재한 기자의 결론은 잘못되었다. 사망자는 기도원 직원들이 그를 과잉체벌 했기 때문이 아니라, ‘치료’를 받던 중에 죽은 것이다.

만약 몸 속에 귀신이 든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인간의 생명보다는 귀신의 맷집이 더 강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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