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망친 친일파 개독(55) - 조두남

일제하 기독교인들의 친일행각

한국을 망친 친일파 개독(55) - 조두남

※※※ 0 5,424 2005.03.23 16:17

친일파 조두남 그는 누구인가..

작곡가, 피아노 교육자.

활동분야 : 작곡가, 피아노 교육자
출생지 : 평양
주요수상 : 경상남도문화상, 눌원문화상, MBC창사20주년 가곡공로상
주요저서 : 《선구자》 《그리움》
주요작품 : 《선구자》 《그리움》 《제비》 《접동새》

야후포털사이트에서 조두남이란 인물의 지식검색을 하면.........

趙斗南 1912∼1984

작곡가·피아노 교육자.
평양 출생.
미국인 신부 J. 캐논스에게 6세 때 작곡을 배운 뒤, 1923년 11세 때 가곡 《옛이야기》를 작곡, 작곡가로 데뷔하였다. 청년기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滿洲)에 가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8·15 직후 귀국, 6·25 후에는 마산(馬山)에 정착하여 피아노 교육에 전념하였다.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마산시지부장, 한국음악협회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평소 민족주의적 정서가 가득한 가곡을 많이 작곡하였으며, 1933년 윤해영(尹海榮)의 시에 곡읕 붙인 《선구자》는 한국인의 대표적 애창가곡이다. 작품집으로는 가곡집 《옛이야기(1962)》 《분수(1962)》 《산도화(1970)》 등과 피아노작품집 《환상무곡(1970)》, 음반 《조두남가곡선집(1979)》 등이 있고, 저서로 《선구자(1975)》 《그리움(1982)》 등이 있다.

이렇게 표명돼고있다 그가 왜 친일파인지 알아보자..



조두남이 만주로 간 진짜 이유는...?

조두남은 "평양 숭실학교에서 수학한 뒤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 용정 등지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고 운운하고 있다.
김종화 선생의 회억에 의하면, 조두남은 1942년 겨울 손풍금수로 유랑극단을 따라 신안진으로 왔고 그가 만주에 남게 된 것은 약침쟁이였으므로 의사의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전의 설명대로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라고 한다면 당시 일제의 약침 단속을 피해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독립운동가도 아니며 오히려 건강을 회복한 후 다시 국내로 들어가 친일 가극을 창작해서 공연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연변학자들의 주장>

첫째, 조두남, 윤해영에 대한 김종화 선생의 증언은 믿을 수 있다.
김종화 선생은 중국 조선족음악계 원로이며 저명한 음악가로서 <중국 음악가사전>에 오른 분이다.
한평생을 교육 사업에 종사해 온 그는 1957년 반우파 투쟁 이후 연변사범학교 교단에서 쫓겨나 화룡으로 정배를 갔고 투도중학교에서 퇴직하기까지 평범한 음악교원으로 지냈다.
정치 운동의 모진 세파 속에서 인생을 구겨야만 했던 그로서 해방 전 조두남, 윤해영과의 친분, 그리고 1943년 가을 목단강에서의 동만총성 추계민족예술제, 1944년 녕안에서의 조두남 신작 발표회에 참가하여 반주를 했고 그들과 어울려서 음악 활동을 했다는 것은 광체로운 일이 될 수 없다.
더구나 그 한 단락 역사가 또 다시 문화대혁명이 일어난다면 투쟁감으로 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므로 김종화 선생은 역사를 미화하거나 추화할 추호의 이유가 없다.

둘째 조두남과 윤해영이 1932년 목단강의 어느 여관에서 만났다고 하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
조선에서 목단강으로 가는 길은 도문을 통해야 하고 도문에서 목단강으로 가려면 멀고 높은 깊은 노야령을 넘어야 한다.
지금처럼 기차가 있고 버스가 있으면 몰라도 1932년 당시에는 이 험한 원시림에는 달구지도 겨우 다닐 만한 오솔길이 있었을 뿐이다.
도가선(圖佳線, 도문-목단강-가목사) 철도가 개통된 것은 1935년 7월, 그렇다면 조두남이 어떻게 목단강으로 갔을까?
새처럼 날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료에 의하면 윤해영의 창작은 1937년 이후의 일이다.


셋째, 조두남의 회억에 의하면 <용정의 노래>는 1932년경에 창작되어 용정은 물론 전 만주에서 불려져 나라 잃은 백성들의 가슴을 불태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정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조두남이 한때 음악 활동을 했던 신안진, 목단강, 녕안현 일대에서도 그 노래가 불려진 적이 없다.
연변에서 <선구자>노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는 1985년 이후의 일이다.
1986년 어느 한 한국인이 최용린 교수에게 연변에서의 <선구자>에 대해 문의해왔었는데 전혀 알 수가 없는 일이라 연변대학 박규찬 총장을 만나서 물었더니 그 역시 그런 편지를 받았다면서 용정에서 나서 자랐지만 듣도 못한 소리라는 대답이었다.
오늘까지 용정 태생이며 당시를 학생으로 살아온 사람들 중 생존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모두가 똑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권철 교수는 신안진과 20리 떨어진 고장에서 나서 자랐고 최용린 교수의 고향 마을도 흑룡강 목단강 일대이지만 두 분 모두 <선구자>의 곡조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 박장길 시인이 신안진에 다녀왔는데 그 마을에서 나서 늙어온 82세 노인의 말을 빈다면 해방 후에 그도 가수로 노래도 불렀는데 <선구자>를 불러주자 처음 듣는 생소한 곡이라고 하더란다.
<선구자>의 전신인 <용정의 노래>는 1944년 녕안 신작 발표회에서 불려졌을 뿐으로 전혀 보급되지 못한 노래라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넷째, 조두남이 <선구자>를 통해 독립운동가로 미화해버린 윤해영은 녕안현협화회 선전과 간부였고 친일 시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시 중에서 <낙토만주>, <척토기>, <오랑캐고개>, <만주아리랑>, <아리랑만주>는 적나라한 친일 시이다.
동시대 재만 조선인 시인들 중에서 그처럼 노골적으로 친일을 구가한 사람은 없고 일제의 검열을 통해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도 없다.
그의 <낙토만주>는 당시 만주국 여성회의 선정곡으로 전국에 보급되었고 <아리랑 만주>는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응모에서 단연 일등상을 수여받은 작품이다.


다섯째, <선구자>의 창작 경위에 대한 조두남의 말은 신빙성이 없다.
우선 그는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선구자>가 없다면 오늘처럼 조두남이 부상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미국에 다녀온 사람은 모두가 박사이고 만주에 다녀온 사람은 모두가 독립군이라는 한국의 유행어를 조두남에게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여섯째, <선구자>는 친일 가곡일 가능성이 있다.
이 노래가 1944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것 때문에 그 의혹은 커진다.
왜냐하면 1937년부터 해방될 때까지 쓴 윤해영의 시 속에서의 '선구자'는 일제의 만주 침략에 앞장에 선 친일파를 가리킨 것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선구자>의 곡조는 박태준의 <님과 함께>(1922년 창작)와 비교하면 16소절 중 13소절이 같다.
조두남이 박태준에게서 음악 공부를 한 적이 있음을 감안할 때 <님과 함께>의 곡을 따다가 그대로 윤해영의 가사에 붙인 것일 수도 있다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오마이뉴스)출저

마산시의회, '조두남 기념관' 변경 조례 부결 파문

23일 본회의서 10 : 17로 부결... 시민단체 "실로 경악 금치 못할 일"


ⓒ2004 오마이뉴스 윤성효


자치단체와 시민위원회가 친일혐의를 받은 조두남씨의 이름을 딴 음악관을 '마산음악관'으로 변경하려하자 시의회가 관련 조례 개정안을 부결해 파문이 일고 있다.

마산시의회는 23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조두남 기념관 설치와 운영조례'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이 조례 개정안은 음악관 명칭을 '마산음악관'으로 하고, 용도도 조두남만 기리지 않고 마산 출신의 음악가를 함께 기리는 것으로 바꾸었다.

마산시가 이같은 조례 개정안을 내게 된 데는 "친일 혐의 음악가를 기리는 기념관은 부당하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마산시는 지난해 조두남이 활동한 중국 연변 현지 조사를 거치고, 시민위원회를 두어 명칭 변경문제를 결정짓도록 했다. 각계 대표와 전문가로 구성된 시민위원회가 명칭 변경 등의 결정을 내리자 마산시는 기념관 입구와 도로변의 안내문을 '조두남기념관'에서 '마산음악관'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런데 마산시의회가 개정안을 부결해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23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찬반 토론 끝에 표결이 붙여졌는데, 27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0표, 반대 17표가 나왔다. 표결에 앞서 찬반토론에서 반대 의원들이 밝힌 이유는 시와 시민위원회가 시의회를 무시했다는 것.

정상철 의원은 "의회의 결정없이 시민위원회가 구성되고 명칭이 바뀐 것은 의회를 무시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시민단체가 떠들어서 결정된 것 아니냐"면서 "시민위원회도 일부 입맛에 맞는 위원들로 구성된 것"이라 주장했다.

또한 김승현 의원은 "의회를 무시하는 사태에 대해 이대로는 안된다"면서 "조두남기념관 만들자고 정한 예산을 마산음악관에 쓰는 것은 예산전용"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지난해 중국 연변 현지조사에 참여했던 황일두 의원은 찬성입장을 피력했다. 황 의원은 "조두남 선생의 자서전 2집을 보면 1932년 이후의 행적이 없다"면서 "조사과정에서 윤해영과의 관계가 밝혀졌고, 조사 4일째 유족과 밤새워 대책을 의논했으며, 유족들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고 밝히며 '조두남 기념관'을 '마산 기념관'으로 변경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마산시 관계자는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되었기에 본회의에서도 통과될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당장에 예산 집행은 어렵게 되었고, 다음 회기에 개정안을 다시 올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 "경악을 금치 못할 일"

마산시의회에서 관련 조례 개정안을 부결시키자 지난해부터 명칭 변경을 요구했던 열린사회희망연대는 24일 시의회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단체 관계자들은 지난 해 8월 '조두남기념관' 개관식에 반대하며 황철곤 마산시장을 향해 밀가루를 던져 형사처벌까지 받기도 했다.

이 단체는 성명에서 "개정안을 부결한 것은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며 "그동안 마산시가 수많은 논란과 사건, 그리고 진실을 가려내고자 하는 조사와 심의과정을 거치면서 사실상 마산시민들의 찬반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고 수렴된 결과"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시의회가 이를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은 오지 하나로 조두남과 윤해영의 친일행위를 뒤집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며, 그마저도 검증되고 공인되었을 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시 의회를 비판했다. 이 단체는 "애초 조두남기념관이 문제가 된 것은 조두남과 선구자의 작사자 윤해영의 친일행위 때문"이라며 "만일 기념관 명칭변경과정에서 마산시가 시의회를 무시했다면 그건 이 사건과 별도로 따져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2004/04/24 오후 7:02
ⓒ 2004 OhmyNews





마산시의 '역사 왜곡' 친일파를 독립투사로


김주완 기자 / wan@dominilbo.com


조두남기념관 전시 학계 반발

마산시가 시민단체와 물리적 충돌까지 빚으며 개관을 강행했던 ‘조두남기념관’의 전시물들이 이미 사실로 입증된 역사마저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조두남 선생의 친일의혹 규명과 별도로 기념관의 구성과 내용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개관된 조두남기념관은 마산시 신포동 구항 근린공원에 대지 3550평, 건축면적 64평 규모로 10억4000여 만원의 예산으로 건립돼 선생의 생전 유품과 악보·서적 등을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시설물과 전시물의 모든 주제가 친일작가로 밝혀진 윤해영 작시의 가곡 <선구자>에 맞춰져 있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윤해영의 반민족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윤해영은 누구인가 3면>

기념관에는 <선구자>의 가사에 나오는 ‘일송정’의 정자와 소나무는 물론 ‘용두레’ 우물 모형이 그대로 재현돼 있으며, 심지어 전시 내용에서는 친일파 윤해영을 ‘독립운동가’로 둔갑시켜놓고 있다. 1933년 조두남 선생의 일생을 소개하는 전시내용에 “만주에 거처하던중 독립운동을 하던 윤해영씨가 찾아와 <용정의 노래>라는 세 절의 시(현 1절에 해당)를 내놓고 용정땅에서의 독립운동이야기를 들려줌. 해방을 맞아 <용정의 노래> 2,3절 가운데 일부를 고쳐 윤해영처럼 높푸른 기상을 가진 독립투사를 일컫는 <선구자>로 제목을 바꾸어 작곡함”이라고 기록해놓은 것.

또 선생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글에서도 작사자 윤해영이 독립투사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역시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물에서도 ‘독립투사 윤해영’이라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기념관의 이같은 역사왜곡은 조두남 선생이 수상집 <그리움>(1982)에서 스스로 윤해영을 독립운동가로 암시한 내용을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전시한 데서 비롯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윤해영은 ‘선구자를 작사하고 홀연히 사라진 신비의 인물’로만 알려져 왔다.

전시내용에 등재…전시물도 <선구자>일색

학계인사들, "한마디로 넌센스…조두남도 고증안된 인물"

그러나 90년 연변대 조선어학과 권철 교수가 그의 친일행각을 밝혀냈고, 이어 91년 인천대 오양호(국어국문학) 교수도 <1940년대 시의식 고찰-윤해영과 만주체험의 두 반응>이라는 논문에서 윤해영이 의심할 바 없는 친일작가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마산시의 조두남기념관 개관소식을 전해들은 오 교수는 “아직도 조두남의 거짓말에 의해 윤해영을 독립투사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라며 “전국적으로 여론화시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흥분했다.

오 교수는 특히 조두남기념관 자체에 대해서도 “조두남 역시 역사의 고증은 물론 학계의 조명도 안된 사람인데, 마산시가 기념관을 세웠다는 건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분개했다.

오 교수는 93년 김영삼 정권 출범직후 ‘친일작가의 시를 개작한 <선구자>를 정부의 공식행사에서 연주해선 안된다’는 기고문을 <동아일보>에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실제로 임정선열 5위 영결제전때 조가로 선정됐다가 독립운동 유관단체의 격렬한 반발로 취소되기도 했다.

또 성균관대 김삼웅 겸임교수(전 대한매일 주간)도 그해 광복절 <한겨레신문> 칼럼을 통해 “윤해영의 친일행적을 모르고 있을 때는 <선구자>를 감동적으로 부르고 들었으나 이제 밝혀진 이상 앞으로 그럴 수는 없다”며 일침을 놓았다.

99년 <대한매일>에 ‘친일의 군상’을 연재하면서 이 문제를 다뤘던 역사연구자 정운현씨(오마이뉴스 편집국장)도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의 음악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아직도 공식석상에선 그의 전력을 들어 바그너의 곡 연주를 금하고 있다”며 “과연 바그너의 명성이 조두남이나 윤해영보다 못해서 그렇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조두남 선생의 사위인 김상오씨와 제자 장인화씨는 “윤해영씨가 친일인사라는 걸 조두남 선생은 몰랐을 것”이라며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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