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깨달은 예수 그리스도 (3)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유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그밖의 수많은 종교들도,
심지어는 종교 아닌 다른 가치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by staire

내가 깨달은 예수 그리스도 (3)

신생왕 3 5,363 2006.06.04 04:02

내가 깨달은 예수 그리스도

 

3

 

김이석장로는 나의 막역한 친구입니다.

1980년대 초, 청량리 대왕코너에서 행상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온 친구입니다.

그 무렵 대왕코너를 자주 다닌 사람은 그를 알겠지요.

무허가 행상에 대한 단속이 심했던 시절, 그의 부부는 댓살박이 딸을 손수레에 태우고 매일 대왕코너 입구에서 행상을 했지요.

 

장사에 열중하다보면 단속반이 오는 줄도 모르다가 물건 모조리 빼앗기고 벌금을 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댓살박이 어린아이가 이곳저곳 둘러보다 “엄마 순사온다”하면 부인은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단속반 떳답니다. 도망갑시다.”

그러면 주위에서 행상을 하던 사람들이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 도망을 한답니다.

그들이 다 도망을 할 때까지 이 친구부부는 어린 아이를 앞세우고 단속반의 앞길을 가로막거나 다리가랑이를 붙잡고 실랑이를 하지요.

그래서 맨날 경찰서에 끌려가게 되는데 경찰서 안에서 아이까지 셋이서 악을 버럭버럭 쓰는겁니다.

“당신들이 먹여 살리세요. 장사 못하게 할려면 멱여살려야 할 것 아녀?”

허구헌날 그 난리니 단속반이 지겨워서 그냥 그 일대는 못 본체하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대왕코너에서 나섰지요.

김이석을 불러서 회유를 합니다.

근사한 매점을 차려 행상하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 조건으로 주변에서 행상하는 잡상인들을 모조리 없애달라는 거였지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남의 밥줄 끊어야 되겠느냐”며 거절해버리고 행상들의 권익을 위해 나름대로 투쟁하며 열심히 살았지요.

그 후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 안정적인 장사를 하게 됐을 때 ‘금싸라기’라던 행상자리는 주변에서 제일 어렵던 행상인에게 무료로 넘겨주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한만큼 교회에 봉사도 열심히 했고 헌금도 많이 내는 등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해서 장로가 되었지요.

 

그런 그가 미국 동부지방으로 이민 와서 내가 사는 곳에서 두어시간 거리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지요.

아주 후진 골목에서 조그마한 동양식품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낡은 간판에는 “동양식품 도매, 산매”라고 큼지막하게 새겨 있었습니다.

무척 바빠야 할 퇴근시간인데도 안에는 한 젊은 남자가 서성이고 있을 뿐입니다.

“어서 오세요. 장로님 손님 오셨습니다.”

그도 손님이었던지 주인을 소리쳐 부르자 뒤에서 김이석이가 어정어정 걸어 나옵니다.

“누구신지? 어, 너 광선이지? 어떻게 찾았나?”

너무 오랜만에 만났지만 엊그제 헤어진 사이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간판 보고 네가 장론줄 알았다.”

“간판하고 장로하고 뭔 상관인데?”

“쌀 몇 부대 놓고 동양식품 도매냐?

하기사 물고기 두 마리에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 먹였다고 뻥치는 것 보다야 낫다만.”

“이런 썩을 놈이 목사님 앞에서 못할 소리가 없네. 간판을 내가 썼냐? 그렇게 써진 것을 샀지.

목사님, 못들은 척 하세요. 이 자식이 이런 놈이요.”

내가 가게에 들어섰을 때 안쪽을 향해 장로님을 부른 손님은 바로 그가 미국 와서 다닌 교회의 목사였습니다.

이자식 저자식 하면서 껄껄거리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싱긋 웃으며 한 쪽으로 비켜섭니다.

“장로가 아니었으면 그런 간판 지우고 장사한다.”

 

그는 얼마 후 가게를 정리하고 다른 지방으로 이사했습니다.

새로 정착한 도시에서 교회 집사라는 한 변호사를 사귀게 됐답니다.

그 변호사와 동업으로 쾌 잘 나가는 식당을 운영하게 됐다고 좋아했지요.

아주머니의 음식솜씨가 좋았고 이 친구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아주 색다른 메뉴를 개발한 게 히트를 쳐서 불경기임에도 개점 일년이 못되어 대형식당 매출액을 능가하는 매상을 올렸고 웨이트레스를 써달라는 청탁이 줄줄이 서는데 형편이 어려운 고학생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 도시에 살고 있는 다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이석이가 쪽박을 찼다는 겁니다.

 

사연인즉 동업하는 변호사가 가게를 빼앗고 맨몸으로 내 쫓은 형국이라는 거지요.

처음 동업할 때 변호사가 돈을 내고 이석이네가 운영을 맡는 것으로 했는데 이것저것 들어가는 것이 많다보니 이석이도 가진 재산을 몽땅 털어넣은 모양인데 서류상 증거를 만들어놓지 않았다는 거지요.

친절하게 대해주는 신실한 집사인데다가 변호사니까 모든 것을 알아서 잘 해주리라 믿고 동업서류도 확인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여 매주 한사람 임금만 받아오다가 년말결산을 하여 이익금에 대한 지분을 달라고 요구하니까 남는 게 없어 지분을 줄게 없다, 운영을 잘못했으니 그냥 나가달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투자한 돈이나 빼달라고 하자 서류를 만들어 왔는데 영어를 전혀 해독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영업처에서 융자해주는 것으로 하고 매월 얼마씩 몇 년에 거처 원리금을 상환하는 것으로 꾸며가지고 내밀면서 돈 내준다는 증서이니 서명하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몇몇 변호사들을 찾아 의논했지만 돈을 투자했다는 아무런 증서를 받아두지 않았기 때문에 찾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변호사까지 된 지능으로 계획적으로 선량한 사람 껍질을 벗겨먹은 거지요.

아주머니는 화병까지 앓고 몰골이 말이 아니라면서 내게는 알려야하지 않겠나 싶어 전화한다는 거였습니다.

이석이가 소시민으로 살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같은 처지의 이웃들을 도와가며 자기희생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 그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그를 사기쳐먹은 변호사 역사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기행각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가르치고 전도하는 이들은 그를 영접하면 (믿으면) 변화를 받아 새사람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믿는 사람을 변화시켜주는 능력이 있는 인격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말은 그를 구세주로 믿는다, 즉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여 인정한다는 뜻이지요.

바이불에 보면 믿는다는 것을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합니다.

그냥 마음으로 믿는 것이 그 한 형태인데 그렇게 해서 의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의 형태는 입으로 시인하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기독교교리 해석상으로는 의인이 되는 것과 구원에 이르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다만 마음으로만 믿는다면 자기가 의인이 됐다, 구원을 받은 자다 즉 새롭게 태어난 자라는 사실을 이웃에게 알게 할 도리가 없지요.

새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해서 머리에 뿔이 솟는다거나 등에 날개가 돋아나는 등의 형태의 변화를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웃사람에게 자기가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반드시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때문에 최소한 매 일요일마다 노래와 기도로 그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기독(예수)교인들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기독(예수)교인들은 자기들끼리 서로를 성도라고 호칭하고 있지요?

그러면 내 친구 김이석은 그렇게 매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노라 고백하는 신앙으로 변화되어 자기에게 던져지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에게 가해질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같은 처지에 놓인 이웃을 보호하며 열심히 의인다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의 껍질을 벗겨먹은 그 집사인 변호사는 왜 의인으로 변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아주 사악한 강도가 됐을까요?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거의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목사들의 신도 강간이나 부정부패 패악질은 또 왜 그럴까요?

그들은 마음으로 (진심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만 거짓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구차한 변명일랑 하지 맙시다.

바이불에는 예수의 입을 빌려 믿지 않고는 자기 이름을 부를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던가요?

인격체라면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대답할 수 있어야 하고 다가가서 패악한 행위를 못하도록 간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를 변화시킬 능력이나 누구의 행위를 간섭할 수 있는 인격체가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체, 누구든 성도로 변화시키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가르치는 것은 그렇게 해서 만만한 김이석장로같은 이를 사기쳐먹기 딱 좋은 얼간이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해야겠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누가 아니라 무엇 즉 사기와 공갈협박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도구를 가지지 않았어도 사기꾼은 이웃을 사기치고 등쳐먹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도구는 공갈 협박 사기 행위를 훨씬 수월하게 해준다는 말입니다.

무허가 행상을 하던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석이와 그의 부인은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친구들이 아닙니다.

그 사기꾼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쉽게 껍질이 벗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목사들에게 강간당한 여성들도 그렇고 장로들에게 사기 당한 사람들도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변화되어 새사람이 된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얼간이가 되어 쉽게 당한 것이지요.

Comments

회색영혼 2006.06.16 02:18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참 마음이 답답해지는군요. 그너므 변호사는 어디서 또, 사기치고 있을까요?
한돌 2006.07.09 16:55
'종교는 마약이다' 와 상통하는것이...

'얼간이'가 된다는 것이지요....

왜?

이성을 소멸당하기 때문에....
괴 강 성 2006.07.12 16:57
예수 믿는다고 하면 일단은 선량한 사람으로 봐주는 사회구조 가 문제 입니다.
물론 예수를 사기수단 으로 이용해 먹는 먹사가 가장 큰 사회악 이지만.
예수 들먹이면 무조건 믿어주는 인간들 도 문제는 있다고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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