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불제자였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유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그밖의 수많은 종교들도,
심지어는 종교 아닌 다른 가치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by staire

예수는 불제자였다.

대한민국 0 5,056 2002.08.11 02:09

▷  예수의 잃어버린 생애

Bible에는 예수가 12살 때에는 사원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서른 살 무렵에는 요르단 강가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이의 17년 동안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흔히 예수의 <잃어버린 생애>라고 불리는,  이 17년 동안 예수는 ‘지혜와 정신적 능력을 키워왔다’고 『누가복음』에 쓰여 있을 뿐이다.  예수가 태어날 때 별을 띄우고 동방박사 세 사람이 찾아오는 등 요란한데 비하면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풍습에 의하면 남자 나이 13세면 결혼하는 나이라고 하는데 예수는 그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길래 성경은 이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 동안 예수가 인도에서 구도생활을 했으며 불교의 고승이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1887년  러시아의 역사가이며 고전학자인 니콜라이 노토비치가 인도 북부의 케시미르에 있는 헤미스 사원에서 라마승이 전해준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두 권의 기록서(원본은 서기 2세기 이전의 팔리어로 기록되어 랏사[신들의 장소]근처의 한 사원에 보존되어 있다)의 연구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홀거 케르스텐의 『인도에서 예수의 생애』, 엘리자베스.C.프로펫트의『예수의 잃어버린 세월』, 민희식의『법화경과 신약성서』등의 책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불문학 박사인 민희식 한양대 교수가 신문지상(주간중앙 1986. 10. 26)에 ‘예수는 한때 불교고승이었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을 보면 그 내용을 대충 알 수 있다.  민희식 교수는 84년 펜번역 문학상, 85년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문화훈장 등을 수여받은 바 있는 석학으로서 특정 종교의 신자(信者)가 아닌 학자로서 발표한 내용인 만큼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록들은 그동안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비장(秘藏)된 채 공개되지 않던 것을 민교수가 지난 여름방학을 이용, 입수해 귀국한 것으로  ‘예수가 원효대사와 같은 불교의 고승으로 활약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예수의 불교식 이름은 이사(ISSA). 그는 13세때 유태법에 따라 가장권(家長權)을 갖고 결혼을 해야 할 입장에 처한다. 당시 소년들 가운데 유난히 준수한 ‘이사’를 사위로 삼고 싶어하는 어느 부호의 끈질긴 요구가 있자, 그는 비밀리에 인도 상인을 따라 인도지역으로 떠났다.  이사는 14세 때 아리아인들 속에 정착, 힌두교 거장들에게 베다, 우파니샤드 등을 공부하나, 4성 계급을 주장하는 브라만교에 실망을 느끼고 ‘이사’는 만인의 해탈 가능성과 평등사상을 부르짖는 불교에 매료돼 불교도들 틈에 들어가 부다가야, 녹야원, 베나레스 등지예서 6년간 불교의 교리를 배우며 수도생활을 한다.
‘이사’의 불교공부는 캐시미를 거쳐 라닥크의 레에서 팔리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며, 이어 티벳에서는 그곳 밀교계 고승 멩그스테에게서 기적을 일으키는 비법과 심령치료 비방 등을 집중적으로 익혔다.  불교의 고승인 이사대사(大師)의 이스라엘 귀국은 페르시아를 거쳐 불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29세 때 이루어진다.  이사는 이스라엘로 돌아와 불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간음한 여인의 예)하며 새로운 민중의 희망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렇듯 불교적 연대기에 신라 원효, 혜일대사 등과 같이 이사대사의 자세한 활동기록이 소개돼 있는데 반해, 기독교계 문헌(누가복음)이 다만 ‘그때까지(30세) 예수는 사막에 있었다’고만 막연히 기록되고 있다.
민교수는 “불교측 문헌이 정확한 이유는 순교 당시의 견문기록임에 반해, 기독교측 무헌은 오랜 세월이 경과된 뒤 여러 시기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까닭”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제자들은 기독교 교리의 확립을 위해 예수의 기록을 비교적 정확히 기술한 『토마스(도마)복음서』 등이 지나치게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어 바이블 편집에서 삭제했다는 것.
기독교의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이 불교의 법화경(法華經)의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하는 민교수는 장자궁자(長子窮子)와 기독교의 탕자의 비유 외에도 삼위일체의 삼신불에서의 유래 등 많은 부분을 예로 들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의 뜻인 메시아의 어원은 불교에서 말세중생을 구제하러 올 미래불인 미륵(마하트리아 혹은 메테아)에서 유래했다는 일화를 비롯, 예수에게 세례를 준 요한의 이름은 한역불전(漢譯佛典)의 정반왕(석가모니의 부친)의 서양식 발음(이태리‘조바니’, 프랑스‘장’, 영국‘존’)에서 나왔다는 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이름은 석가의 어머니 마야부인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고 민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 예수 생애의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되찾으려는 노력과 이들 불교적 자료는 한때 리처드 보크가 실제로 인도, 티벳 등을 답사, 다큐멘터리 필름(The Lost years of Jesus)에 담겨진 적도 있다고 한다.  [ 주간중앙 1986. 10. 26 ]

그리고 예수가 이렇게 동양으로 구도의 여행을 다닌 사실은 리바이 도우링이라는 목사가 천상 영계의 기록방법인 아카샤(akasha)라는, 우주심(宇宙心)에 의해서만 전달되는 기록(아카식 레코드)을 그대로 베껴 썼다는 제3의 복음서 『보병궁 복음서』에도 나와 있다.  
1884년 미국에서 출생하여 18세에 목사가 되었고, 20세에 종군목사(종군목사)로 남북전쟁이 끝날 때까지 목사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천재적인 목사 리바이 도우링(1911. 69세 사망)이 쓴 『보병궁 복음서』(성약성서)에는 4대 공관복음서의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출생과 세례요한의 어린 시절, 예수의 어린 시절 등 4대복음서에 나타나지 않은 부분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보병궁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가 인도에 가게 된 동기는 인도의 오릿사주의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의 제례에 참석했다가 총명한 예수를 보고 인도로 데려간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 당시 예수는 12살이었고,  인도의 쟈간나스 사원에 승려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인도의 최고가는 명의(名醫) 우도라카의 제자가 되어 자연의 법칙을 배우고 치료법을 배우며 베다 및 불경을 공부한다. 그러나 인간의 절대평등을 주장하던 예수는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승려들의 정죄에 걸려, 죽음을 피해 라마스의 도움으로 네팔로 피신하였다.  그 뒤 성인 피자빠찌의 소개로 밀교(密敎)의 대성자인 멩그스테에게 찾아가서 제자가 된다.  여기서 이 절에 소장되어 있던 수많은 고전(古典)의 필사본을 그의 도움을 받아 직접 읽었으며 이 곳을 떠날 때 광명의 부처라는 찬사를 받은 예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길에 24년 전에 자신을 찾아준 동방박사 3인의 마기교 승려를 찾아 뵈었다.    이윽고 요단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온 예수는 어머니의 애정어린 환대를 받지만 다른 가족들로부터는 환대를 받지 못한다.   어머니 마리아와 여동생 미리암에게만 지난 날 구도의 과정에서 겪었던 사연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희랍으로 떠났다. 희랍의 교사 중에서 아폴로라는 성자와 함께 교사들을 가르치며 희랍의 정신세계를 들었다.  
25세에 다시 이집트 조안에 가서 ‘헬리오폴리스’(해의 도시)로 가서 성자들의 모임인 형제단이라는 신전에 입회하기를 원하여 허락을 받았다.  여기서 6단계의 시험을 진실과 용기로 극복하고 거룩한 스승의 제자가 되어 애굽 밀교의 비밀, 생사의 문제, 또한 태양계 바깥의 비밀을 배웠다.  그리고 사자의 방에서 일을 마친 뒤에 ‘보랏빛 방’에서 일곱 번째의 시험을 이겨내어 ‘그리스도’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상이  보병궁 복음서 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한 것인데 인도에서의 행적 등 학자들의 연구내용과 많이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찌보면 왜 우리가 그런 의심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정도로 불교승려들과 예수의 대사에는 같은 점이 너무나도 많다. 무언가 알듯 말듯한, 흡사 하늘에 뜬 구름을 잡는 듯한 말들...  풀어보면 아무것도 아닌것이 같은 말을 돌리고 돌려 괸히 무언가 있어보이려는 수작...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당시 예수는 분명 피나는 수련을 ㅌㅇ해 무언가 깨닫기는 한 모양인데.. 문제는 지금에 와서 한마디로 뭣도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그를 쫒아 같은 행세를 하려든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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