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 네얼굴 (보충자료)

"기독교의 역사"에서 주로 다룰 주제는 기독교인들이 저질러온 죄악들,
예를들어 십자군, 마녀사냥, 이단사냥, 루터와 칼뱅의 망언 사례, 인디언과 인디오 학살 등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조명하고,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공인된 과정, 유대인들의 역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이단의 네얼굴 (보충자료)

오디세이 0 2,933 2002.08.06 12:44


(1) 에비온파
: 초대 그리스도교의 금욕적인 종파. 히브리어로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그리스도교에 속하면서도 유대교의 강조점을 보존하고 과장했다. 팔레스타인을 떠나서 요르단 건너편과 시리아에 정착했으며, 뒤에 소아시아, 이집트, 로마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바실레이데스파
: 바실레이데스가 창시한 영지주의 교파. 바실레이데스는 하드리아누스 및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 치세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3) 발렌티누스파
: 영지주의 유파인 로마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창시했다. 영지주의는 영지 혹은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할 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 이원론적(선신과 악신이 대립해 있다는 믿음) 종교사상으로, 그의 제자들이 세운 발렌티누스 공동체는 2-3세기의 그리스도 신학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했다. 발렌티누스의 초기 사상체계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교인의 구원이 이루어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바울의 신비주의 신학과 비슷했으나, 동방과 서방의 여러 사상들을 흡수하면서 차츰 복잡하게 발전해갔다. 현대 학자들은 그의 교리가 후대의 인간중심적인 그리스도교 영성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강조한다.


(4) 마르키온파
: 2세기에 풍미했던 영지주의의 한 분파. 이 명칭은 소아시아세 사는 마르키온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나왔다. 마르키온은 로마에 와서 영지주의 그리스도교 신자인 케르도의 영향을 받았다. 케르도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정의의 하나님과 신약성서에 나오는 선한 하나님은 다르다고 주장하여, 로마 교회와 불화를 일으켰다. 마르키온은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여 발전, 전파시키다 결국 144년에 이단으로 추방당했지만, 이 운동은 널리 퍼져 나갔다.


(5) 도나투스파
: 북아프리카에 있었던 그리스도교 단체. 그 이름은 지도자 도나투스(355년경 사망)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적으로는 소아시아의 몬타누스파와 노바티아누스파 운동 및 이집트의 멜리티우스파가 생겨난 초대 그리스도교의 전통에 속한다. 교회문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반대했고, 키르쿰켈리오파라 부르는 농민 전사들이 있어서 종말론적인 희망과 결합된 사회 혁명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철저히 종교적이었던 이들의 목표는 참회의 삶과 거기에 뒤따르는 순교였다.


(6) 네스토리우스파
: 에페수스 공의회(431)와 칼케돈 공의회(451)가 네스토리우스와 그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규정한 뒤, 소아시아와 시리아에서 생겨난 그리스도교 소종파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독립성을 강조하여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느슨하게 결합된 두 개의 인격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에는 ‘동방의 교회’ 또는 ‘페르시아 교회’가 대표적인 네스토리우스교파이며, 서양에서는 흔히 이들을 아시리아교도, 또는 네스토리우스교도라고 부른다. 오늘날 약 17만명에 이르는 네스토리우스교도들은 대부분 이라크, 시리아 및 이란에 살고 있다.


(7) 유티케스파
: 콘스탄티노플 동방교회에서 존경받던 대수도원장 유티케스(375 – 454)가 창시했다. 그의 주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의 우월성을 강조한 이단설로 단성론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그는 총대주교 성 키릴루스의 영향을 받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그리스도론 교리를 교육받았으며, 그리스도 안에 하나이 본성만 있다고 주장하여 동방 수도원의 그리스도관을 옹호했다.


(8) 아폴리나리우스파
: 아폴리나리우스(310 – 390) 가 주장한 그리스도 본성에 관한 이단설.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가 그리스도교들에게 고전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자, 아버지와 함께 구약성서는 호메로스와 핀타도스 풍의 시 형식으로, 신약성서는 플라톤의 대화 형식으로 펴냈다. 아리우스주의와 논쟁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 이성적인 인간이 영혼이 존재했음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했다.


(9) 단성론자
: 그리스도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이 있다는 교리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의 본성만 존재한다고 가르친 일군의 학자들. 대표적으로 유티케스는 448년에 그리스도는 성육신한 후 단 하나의 본성만 가졌으며, 따라서 성육신한 그리스도의 인성은 일반 사람의 인간성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가르쳤다. 이후 그를 지지하며 그의 가르침이 알렉산드리아의 성 키릴루스의 정통교리와 일치한다고 주장한 교회에게는 단성론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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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르베투스
: 에스파냐의 신학자, 의사. 비정통 신앙을 가르쳐 프로테스탄트와 로마 카톨릭 교회에게 이단으로 단죄당하고 제네바에서 칼뱅주의자들에게 처형당했다. 세르베투스는 진지한 성서주의와 그리스도 중심적인 세계관을 펼쳤으나, 삼위일체와 세례에 대한 견해에서 이단 혐의를 받고 1553년 샴펠에서 화형당했다. 그를 처형한 사건은 프로텐스탄트 교도들 사이에 이단자에게 사형을 부과하는 문제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장 칼뱅에게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는 이후 근대 유티네리언주의의 창시자 라일리우스 소키누스에게 영향을 끼쳤다.


(2) 바울파
: 7세기 중반에 아르메니아에서 출발한 이원론적인 그리스도교 분파. 마르키온주의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았따. 바울파이 창시자는 아르메니아인 콘스탄티누스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는 당시 비잔티움 제국의 아시아 지역에서 세력을 얻고 있던 마니교에 대해 현저하게 그리스도교적 성격을 부여했다. 이 분파는 곧 제국 내에서 광범한 정치적, 군사적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668년에서 696년까지 콘스탄티누스 3세와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반란 진압을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원정대를 보냈다. 콘스탄티누스(실바누스)는 타살당했고, 그의 후계자인 시므온(티투스)은 산 채로 화형당했다.


(3) 보고밀파
: 10-15세기에 발칸 제국에서 융성했던 이원론적인 종파. 이 종파는 특히 바울파로부터 받아들인 이원론적인 신마니쿄 교리와 지역적인 슬라브 민족의 운동이 혼합되어 10세기 중반에 불가리아에서 생겨났다. 보고밀파라는 이름은 이 종파의 창시자인 보고밀 사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원론적인 우주관에 기초를 둔 보고밀파의 중심 교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를 마귀가 만든 것이라고 보아 성육신을 부정하고 물질을 은혜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그리스도교적 사상을 거부했다.


(4) 알비주아파
: 12-13세기 프랑스 남부에서 발생한 카타르파의 이단 분파. 이들이 알비주아파라는 이름을 가진 때는 12세기 말쯤으로 추측되지만, 이 운동의 중심지는 알비보다는 툴루즈와 주변 지역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역로를 따라 이 지역들에 파고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이 이단 분파는 원래 동유럽에서 왔으며, 항상 트라케의 보고밀파와 관계를 유지했다. 이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대립하여 반 성직적 태도를 취하며 당시 성직자들의 부패를 끊임없이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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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왈도파
: 12세기 프랑스에서 발생한 그리스도교 운동의 구성원들을 말한다. 가난하고 소박한 삶을 유지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노력했다. 이 운동을 시작한 유명한 인물 왈도는 라틴어 성서가 아닌 다른 성서를 사용하는가 하면 7성사 가운데 일부와 연옥 개념을 배척함으로써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에서 이탈했다. 이들의 견해는 단순화한 성서주의, 엄격한 도덕, 당시 교회의 부패상에 대한 비판에 근거했다. 이들의 운동은 급속히 스페인, 프랑스 북부, 플랑드르, 독일, 이탈리아 남부, 심지어 폴란드와 헝가리까지 퍼져나갔다. 로마 교황청은 적극적인 박해와 처형을 감행하여 이들을 단죄했다.


(2) 셰이커교
: 천년왕국설을 믿는 독신주의자들의 단체. 셰이커교는 처음에 과격한 영국 퀘이커교도들의 작은 분파에서 시작되었다. 세이켜교의 교리를 공식적으로 작성한 사람은 맨체스터에 사는 문맹 직조공 엔 리이다. 그녀는 일련의 계시를 받은 뒤 자신을 하나님의 양성 가운데 하나인 여성이자 두 번째로 성육신한 그리스도로 여겼으며, 독신주의를자기 종파의 기본 신조로 삼았다. 1774년 앤 리는 미국에 천년왕국 교회를 세우라는 새로운 계시를 받고 여덟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 큰 호응을 얻어냈다. 셰이커교도들은 반전론자들이고 기괴한 신앙을 가진 자들이라는 오해를 받아 핍박을 받기도 했으나, 모범 농장과 잘 정돈되고 번창하는 공동체를 가꾸어 나감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셰이커고도들의 춤과 노래는 순수한 민속예술의 하나이며, 그들의 집회소, 헛간, 인공구조물 등에 나타난 간결미, 기능주의, 정직한 장인정신 등은 오랫동안 미국 디자인계에 영향을 끼쳤다.


(3) 보헤미아 형제단
: 15세기 중반에 보헤미아에서 후스파의 영적 이성주의에 영감을 받아 생겨난 종교단체, 성서를 신앙의 유일한 규준으로 삼으면서, 소박하고 겸손한 비폭력의 삶을 추구했다. 화체설을 부인하기는 했지만, 성찬을 인정했으며 찬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4) 퀘이커파
:  17세기 중반 영국과 식민지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그리스도교 집단. 이들은 신조, 성직자, 또는 기성교회가 지니고 있는 그 밖의 다른 형식 없이도 신을 직접 내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집회를 가질 때 ‘내면의 빛’ 또는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신성’을 조용히 기다리는 순서를 가지며, 특히 사회 개혁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세기 영국 청교도 운동의 극좌파에 해당한다.


(5) 재세례파
: 16세기 종교개혁의 급진파 혹은 좌파 운동에 참가했던 집단, 재세례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성인세례이다. 이 운동의 1세대 개종자들은 세례를 두 번 받았는데, 그 당시의 법에 따르면 재세례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였다. 재세례파 자신들은 세례를 두 번 받는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받은 유아 세례를 신성모독적인 의식으로 보고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죄와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성인 세례를 받는 것만이 진정한 세례라고 보았다.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울리히 츠빙글리의 견해를 따른 그들은 그리스도교도들의 무력 사용에 반대했으며, 시민 선서를 하는 것도 거부했다. 이런 신앙 때문에 수천 명의 재세례파들이 죽음을 당했다. 재세례파들은 중세 교회의 개혁을 목표로 삼지 않았으며, 초대 교회의 제도와 정신을 복원하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6) 알룸브라도파
: 알룸브라도파는 16,7 세기 에스파냐 신비주의 운동의 추종자들이다. 인간의 영혼은 어느 정도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니의 환상을 볼 수 있으며, 성령과 직접 교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영혼은 그 이상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없는 것이므로 예배에 참석하고, 선한 일을 하고, 외적인 종교 생활 규범들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룸브라도파는 개혁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예수회에서 파생되었으며, 자신들이 받은 환상과 계시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을 하다가 심한 박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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