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의 기독교 수용

"기독교의 역사"에서 주로 다룰 주제는 기독교인들이 저질러온 죄악들,
예를들어 십자군, 마녀사냥, 이단사냥, 루터와 칼뱅의 망언 사례, 인디언과 인디오 학살 등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조명하고,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공인된 과정, 유대인들의 역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한말의 기독교 수용

조한주 0 2,950 2003.05.06 01:28
한말의 기독교는 주로 미국 선교사들의 활동에 의해 본격적으로 교단조직이 확립되었고, 선교 초기부터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의료활동을 전개하여 서양의학 교육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서울의 배재, 이화, 경신, 정신 등을 비롯하여 전국 전국 주요도시에 사립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보급하고 있었다. 또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출판하여 한글을 가르쳤고, 언론과 출판활동을 통해 서구문화를 소개하는 데 선도적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기독교를 수용했던 개화파 인사들과 기독교계 학교를 통해 배출된 인사들은 독립협회운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자강운동단체를 통해 계몽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기독교의 이러한 활동을 당시 우리 민족이 당면한 역사적 과제와 관련하여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근대화론의 시각에서 기독교계 인사들이 정치와 언론활동을 통해서 근대의식과 자주의식의 발현에 노력하였고, 특히 한글의 재발견을 통해 민족의식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일제의 침략에 직면해서는 항일의식을 조직화하고 민족운동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하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이처럼 기독교를 통한 자주의식과 민족의식 형성이 가능했던 것은 한국에서의 기독교 수용이 초기부터 한국인들의 주체적인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고, 교단이 자립적이고 자주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수용과 우리 민족의 근대화는 그렇게 일면적으로 긍정적인 고리로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문제를 생각할 때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이 당시 기독교단이 선교사들의 영향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거나 자율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국 기독교는 초기부터 압도적으로 미국의 감리교 및 장로교단과 그 선교사들의 영향하에 있었으며, 그로 인해 기독교 선교는 백인우월주의의 기독교문화 및 미국자본주의의 대외팽창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이루어졌다. 특히 한국에서 미국 선교사들간의 선교지역 분할은 서구제국주의의 아프리카 분할을 연상시키는바, 이들은 왕실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한국 관원들에게 군림하였으며, 제국주의 침략과 관련하여 독립협회운동이나 성령부흥운동 등을 통해서 한국에서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를 관철시켜 나가고 있었다.

 또 기독교단이 전개한 여러 분야의 근대화사업은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선교활동의 수단이었다. 따라서 그 내용도 선교본국의 국가이익이나 선교목적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일례로 기독교 계통 학교에서 교육목표는 근대의식이나 민족의식의 확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전파에 있었던 것으로, 교과목도 성서, 교회사, 창가 등이 중요한 과목이었으며 역사, 지리 등의 일반과목도 주로 기독교 교리와 결부된 것이었다. 이처럼 기독교가 교육, 의료, 출판 등을 통해 서구문물을 전파하기도 하고 남녀차별철폐, 조혼 폐지, 축첩 반대 등 봉건적 악습 폐지를 주장하기도 하였지만, 그 목표가 기독교의 선교나 서구 문명의 팽창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는 반제 구국운동으로 발전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국가의식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그들의 선교활동이 부수적으로 가져온 근대문물의 수용에만 초점을 맞춰  그들의 활동 전반을 바로 민족적인 운동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 본질을 호도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인 면에서 보면 오히려 그들의 그런 활동에 의해 한국문화의 정체성이 상실되었고 서구문화에 대한 종속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한편 선교사들은 1901년 정교분리 원칙을 천명하여 기독교인들에게 일체의 정치활동 참여를 금지시켰고, 항일여론과 의병투쟁이 치열하게 고조되고 있던 1907년을 전후해서는 죄의 회개와 성령의 은사를 내걸고 대대적인 신앙 부흥운동을 펴나갔던바, 기독교 운동이 한말의 정치상황 속에서 얼마나 민족적 요구와 부합하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이 운동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 부흥운동은 교회의 비정치화를 기도한 것이었으나 기독교가 신앙적 내면화를 거쳐 자연히 외연화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표면상으로는 비민족적이었으나 내용상으로는 민족교회의 형성과정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1900년대 후반에 부흥운동이 대규모로 전개되면서 선교사들은 기독교도들의 항일운동을 비종교적이라고 단죄함으로써 이들의 반제의식과 항일의식을 마비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가 많은 교인과 조직력을 보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기구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항일운동에 역효과를 초래하였다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된 이 시기 부흥운동은 일제의 침략정책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어 결과적으로 일제의 한국침략에 공헌하였던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기독교의 이러한 반민족적 성격은 1920년대에 더욱 확고해져  일제 침략정책의 테두리 안에서 게몽운동에 주력하면서 일제의 각종 문화운동에 협력하는 경향을 낳았다는 견해가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이처럼 기독교와 민족현실과 민족운동과의 관계에 대해 상반된 견해가 제기되는 가운데 최근 한말 기독교의 성격을 보수와 진보의 양측면으로 나누어 사상적인 차원에서 분석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에 의하면 한국 기독교는 그 도입 초기인 1880년대부터 사회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흐름과 종교적인 문제에만 몰두하였던 흐름으로 나누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1890년대에도 계속되어 우상숭배와 제사를 거부하면서 성령 및 개인윤리를 강조하는 종교운동과, 지방관리들의 가렴주구 등 봉건적 모순에 저항하거나 협성회와 독립협회 활동을 통해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으로 갈라져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1890년대 단계에서는 이러한 양면성이 서로 긴장을 유지하면서 건강성을 갖고 있었으나, 20세기 초 10년간에 기독교는 부흥운동 등에서 보이듯이 죄의 회개와 용서를 강조하는 신앙적 요소만 강조되어,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했던 소수의 개인들을 제외한다면, 전체적으로 탈민족주의화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고 한다.

 베낀 출처: 한국역사연구회, 1996 <<한국역사입문 3 >>, 풀빛, 262-264쪽

 추천할 참고문헌: 李惠錫, 1986 <韓末 美國의 極東政策과 宣敎師의 活動>,  
                          연세대 석사학위논문

                          강돈구, 1994 <한국기독교는 민족주의적이었나>,
                           <<역사비평>> 27

 歷史는 단지 흘러간 과거는 아니다. 기독교의 문제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그리고 지배이데올로기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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