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창 3. 위세 당당한 친일 거물 목사

"기독교의 역사"에서 주로 다룰 주제는 기독교인들이 저질러온 죄악들,
예를들어 십자군, 마녀사냥, 이단사냥, 루터와 칼뱅의 망언 사례, 인디언과 인디오 학살 등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조명하고,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공인된 과정, 유대인들의 역사 등 다채로운 주제를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김길창 3. 위세 당당한 친일 거물 목사

발견 0 2,974 2002.09.17 18:49

그는 1924년 목사안수를 받은 후 거창읍교회, 부산 영도교회 등에 전임하였다. 그
러면서 교계 연합사업에도 참여하였다.

이 연합사업의 참여도 그의 공명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음은 다음과 같은 자서전의 자술에서도 입증된다.
"나의 영도교회 생활에 이렇다할 큰 보람의 업적은 없어도 격리된 섬의식의 열등감을 없애기 위하여 거의 날마다 청년사업 내지는 연합사업을 위해 뭍을 찾아 활동을 전개하였다."는 것이다.

어떠튼 그의 이러한 열심이 인정을 받았던지 장감 연합공의회의 파송을 받아 1929년부터 1932년까지 동경 유학생교회를 맡게 되었다.

4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 와서는 잠깐 밀양읍교회를 맡았지만,
"아무래도 이곳 군소재지가 나의 큰 꿈을 성취하기에는 너무나도 협소하므로 큰 도시로 진출할 기회만을 기다리며 기도"하였다고 그는 자술하고 있다.

그러다가 1933년 12월부터 부산 항서교회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는 그후 이 교회를 기반으로 활동하다가 1968년 이 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그는 1933-1934년에 조선기독교연합회 회장을 맡기도 하였으며, 장로교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한 1938년 제27회 총회에서는 부회장으로서 각 노회 대표들을 이끌고 평양신사에 참배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일제에 '순응'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앞에서 인용한 반민특위의 기소의견서에 의하면
"피의자 김길창은 목사로서 적치(敵治) 소화 16년(1941) 이래 해방까지 내로는 항서교회에서 신사참배 추진, 황민화운동, 민족정신 말살을 추진하고 외로는 조선기독교와 일본전시 기독교와의 지도이념 합치에 중심적 역할을 했으며 일본 목사 가가와(賀川豊彦)와 도미다(富田滿) 등의 안내역이 되어 한국기독교인에 황민화운동의 추진단체의 수뇌 간부로서 활약하고, 소위 신사참배 문제가 대두된 이후는 경남교구장으로서 적극적으로 신사참배를 주창하고 이에 반대하는 목사 교인을 혹은 일본경찰과 결탁하여 탄압케 하였으니......본 법 제4조 11항에 해당되므로 기소함이 가하다고 사료함."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한익동 목사가 반민특위에서
"본인은 30여년 전부터 기독교 노회 내에서 동 총대 급 동역자요 교역의 친우 중 1인으로서 김길창의 행위를 자이 진술합니다. 김길창은 교회 목사일 뿐만 아니라 총회원 노회 다년 회장 학교 책임자 기타 일체 생활의 광범하야 활동이 전조선 또는 중국 일본 방면으로 활약한 사람이오니 본인과 같은 미미한 존재의 목사로서는 행위가 여하한 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도들에게 신사참배하라는 총독부 지시가 있을 적에도 솔선적으로 신도들에게 추진 공작을 하뒶고 보통인보다 배 이상의 활동을 하는 자이오니 일본시 관공리 주로 고등계 형사 주임들과 교제가 빈번하였으니 이면에서 공작은 여하하였는지 미지이오나 신사참배 반대한 목사와 남녀 신도들이 구금당하였으니 김길창의 밀고 소치의 행위인가도 능히 추찰(推察)됩니다. 본인은 어느 날 조용한 좌석에서 김길창에게 대하야 일제에 너무 아부치 말고 경찰과 과도히 친근하지 말라는 충고를 하였더니 답 왈(答曰) 경찰을 배척하면 사업도 못하고 앞으로 살아나갈 수가 없어서 여차한 행위를 하노라고 한 사실이 있습니다. 김길창은 우리나라 민족의식은 배치한 자요 일제시국인식을 솔선하야 일체 왜정의 국가의식을 솔선 지도한 자로서 황민화의 다대한 역할을 하였고 경찰과 친밀한 연락을 하였으니 민족의 반역행위가 막대하오니 반민법으로 의하야 당연히 벌이 있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진술한 것도 김길창의 일제 말기의 행각을 잘 말해주고 있다.

김만일 목사도
"아무러튼 김길창은 대한국 민족의식은 망각한 자이요 왜정에 적극 추종하야 황민화에 다대한 공로자이요 일본국 충신이라 대한민국의 반동자라 천벌이 있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진술하였고, 심지어는 당시 고등계 형사를 지낸 장세권도 증인 신문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 하였다.

"문(조사관 심륜): 기 당시 증인의 직업은 여하.

답(증인 장세권): 부산 경찰서 고등계 형사로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문: 증인의 형사 근무 시 교회 예배 시에 입회한 사실이 있는가.

답: 본인과 동직자 왜인 2명이 교대로 상황 조사하기 위하여 입회 청견(聽見)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배 시에는 의례히 일본 국민의례에 준하야 황국신민 서사낭독 묵도 궁성요배 기타 행사를 김길창 지시 혹은 선창으로서 진행하던 것을 청견하였습니다.

문: 김길창의 설교 시 입회한 사실이 있으며 기 내용은 여하.

답: 설교 시 신사참배는 일본국민 된 도리로서 국가의식으로 아(我) 교회 신도들도 신사참배를 시행하자고 주창하였습니다.

문: 그러면 당시 김길창은 증인에게 친교하자는 동기가 없던가.

답: 당시 김길창은 목사 중에도 제 1인자인 거물목사라 경찰계에도 소위 간부들과 연락이 빈번하였으며 교제가 심하였으니 위세가 당당하야 본인같은 말직형사들에게는 조석간에 인사정도이고 접대도 소홀하였습니다.

문: 그러면 친밀하던 경찰 간부는 누구였던가.

답: 본인이 아는 자로서는 당시 도 고등계 주임 하라다(原田,왜인)와 부산서 고등계 주임 아라이(荒井,왜인)였는데 하판락,강락중이와도 친하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문: 교제가 심하였다는 증거가 있는가.

답: 본인이 형사 근무 시 어느 날 공무로서 김길창 본가를 찾아가니 김길창은 작야(昨夜)에도 하라다 도 고등계 주임이 왔었다 하는 말을 직접들은 사실도 있고 더구나 김길창이 경찰에 출두할 시에도 형사들에게는 인사말도 없이 위세가 당당하게도 직접 아라이 주임을 찾으며 아라이 주임역시 김길창에 대한 태도는 마치 귀빈들이나 상관에게 대하는 환영을 하였고 별석을 이용하야 장시 요담한 사실도 빈번하였으며 대단히 친밀하였습니다.

문: 김길창은 애국자 또는 신사참배 반대한 신자들을 밀고 투옥케 하였다는데.

답: 김길창은 경찰간부들과 연락이 빈번하였으니 말직형사인 본인으로서는 연락하고 밀담하던 내용을 직접 듣지 못하야 미지이오나 기 당시 국내에서 신사참배 반대자로서 목사 남녀 신도들 다수가 투옥당한 사실은 들었습니다.

문: 기 당시 김길창 행위에 대한 사회의 여론과 기독교회의 동향은 여하

답: 당시 왜인 교회 수반인물로서 가라기(唐木)라는 목사와 김길창 관계는 완전히 의견이 합치되어 왜인들에 대한 인기도 절정하였으며 결과는 내선일체에 완전 표현이었으며 일본국가를 위한 충실한 목사라는 사회여론이 있었습니다."


결국 김길창 목사 본인도 이런 사실을 부인하고 증인들도 후에 진술을 번복하여 신사참배 반대자를 밀고하였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입증하지 못하고, 반민특위에 피체된지 3개월 만인 1949년 6월 기소유예로 풀려났지만, 일제 하에서 그런 소문이 세간에 돌 정도로 일인들과 밀접한 접촉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에는 일체 이런 부분에 대한 해명이나 언급이 없다.
다만 이 시기에 해당하는 서술에서 일제의 학정과 종교탄압상만 몇 가지 열거하면서

"시대가 왜정하의 착취적인 피해를 입던 때이니 성도들의 생활이 넉넉할 리가 없다.
비단 경제적인 생활의 가난뿐은 아니었다.
종교적이며 사상적인 탄압이 더 큰 생활의 위축을 가져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종교인들은 이들의 건국신(建國神)인 [아마데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를 모시는 신사참배와 가정마다 [가미다나]라는 천조대신의 위패를 모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수주일(聖守主日)을 방해하기 위하여 주일이면 보국대에 동원 지시하고 찬송가도 압수하여 황국신민의 사상고취에 영향을 끼칠만한 가사는 모조리 검은 잉크로 지워서 되돌려 주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압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판국에서도 나는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교회 발전을 위해 목숨을 내걸고 노력해 왔다."

고 기술하고 있다.



* 오디세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2-09-1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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