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매우 닮은 300만년전의 생물들>>>>

&lt;&lt;&lt;&lt;인간과 매우 닮은 300만년전의 생물들&gt;…

엑스 0 2,605 2003.05.12 08:46
&lt;&lt;&lt;&lt;인간과 매우 닮은 300만년전의 생물들&gt;&gt;&gt;&gt;

460만년 전 자연은 아프리카의 한 초원에서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한 위대한 진화의 실험을 했다.

그리고 그 후로부터 10만 ~ 20만년 전까지 인류를 향한 발걸음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현재의 인류는 그 발자취를 찾기 위해 지금도 헤매고 있다.

화석을 발굴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아무리 화석을 발굴해봐도

아주 운이 좋아야 턱뼈나 치아 일부를 착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많은 인류학자들이 힘들어 하는 점이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반드시 뒤따르는 법이다.

메리 리키가 1972년 라에톨리에서 발견한 발자국 화석과 도날드 요한슨이 1975년에 발견한 루시 화석이 바로 그런 예이다.

특히 루시 화석의 발견은 당시 무명의 인류학과 대학원이었던 도날드 요한슨을 일약 최고의 인류학자로 만들었다.

당시 라에톨리 지역은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이 높은 화산이 분출하고 사바나 지역에 많은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산재가 폭발하고 이 위를 우리의 조상들이 지나감으로써 그 발자국의 흔적을 남겼던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화산이 폭발하여 라에톨리의 자국들을 덮어버리고 그 위에 비가 내렸다.

이 발자국은 정말 운좋게 형성되어 우리 인류의 조상의 단서를 추측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이 화석은 이 발자국의 주인공이 두 발로 걸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뒤인 1974년에 발견된 350만년 전의 루시 화석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요한슨은 그의 저서인 최초의 인간 루시에서 루시의 첫 발견부터 연구 과정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특히 루시의 반출을 위해 당시 내전 중이던 에티오피아 정부의 허가
를 어렵게 받아내었다가

일이 잘못되어 출국일 당일 문화재 불법 반출로 체포되는 줄 알았
다고 적어놓은 부분에서

그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알 수 있다.

루시의 화석은 인류학사 최초로 골반과 무릎의 뼈가 남아있어 가장 중요한 화석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시대는 약 350만 년 전이다. 또 두개골 앞부분은 이미 파손되어 있어 있었지만

턱은 남아 있었다. 턱 역시 인간의 것과 비슷했다.

인류의 진화를 추적학 위해서는 인류만의 특징 그 중에서도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인 직립보행의 여부 판별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생물이 직립하였는지 하지 안하였는지는 직접적인 증거로써 판별하기 위해서는 골반뼈, 무릎뼈, 발뼈가 필요하다.

루시에서는 골반뼈와 무릎뼈가 발견되는 정말 인류학상 보기 드문 대 발견이 이루어졌고

라에톨리의 발자국 화석은 같은 시대에 존재했던 고인류의 발 모양을 추적하는 단서가 되었다.

침팬지와 인간의 발자국 형태를 직접 비교 판단하여 라에톨리의 발자국은 놀랄정도로 인간의 것과 비슷하며

힘의 분배 정도라든지 파인 부분이 거의 일치했던 것이다.

이 발자국의 주인은 3명이며 그 중 한 명은 걷다가 잠간 멈추어서서 왼쪽을 돌아보았던 것도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조상도 다른 동물들이 그랬듯이 항상 위험을 감지하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하다에서 한까번에 발견된 13개체분의 화석도 매우 놀라운 발견이다.

이들은 일시에 재해에 의해 파묻힌 집단인 것 같다.

이 종들과 루시는 수 년간의 연구끝에 모두 같은 종으로 판명되어 오
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로 이름이 부여되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머리는 침팬지와 매우 비슷하나 치아는 인간의 것도 침팬지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치아의 형태는 그 둘의 중간정도의 형태를 하고 있다.

두뇌의 용량도 침팬지보다 통계학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의미있는 결과를 얻을 정도로 더 컸다.

이에 비해 목 아래부분은 인간과 너무나도 유사하며 직립 보행을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발견 뒤에는 논쟁이 있듯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에 대한 논쟁은 20년간이나 지속되었고

왜 두발로 걷게 되었는가도 논란의 여지로 남았다.

이에 대해 확실한 답은 없고 다만 가설만이 난무할 뿐이다.


&lt;&lt;&lt;&lt;인류 진화의 경로&gt;&gt;&gt;&gt;

지금까지 발견된 고인류의 화석은 다음과 같다.(1999년 기준, 괄호안은 최초 발견자)

&lt;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gt;

1.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레이몬드 다트)
2.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보스투스(로보트 브룸)
3.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브리안 패터슨)
4.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도널드 요한슨, 톰 그레이)
5.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바헬그하자리(미셸 브르넷)
6.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티오피쿠스(리처드 리키, 알렌 워커)
7.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루이스 리키, 메리 리키)

&lt;호모 속&gt;
1. 호모 루돌펜시스(리처드 리키)
2. 호모 하빌리스(루이스 리키, 조나던 리키)
3. 호모 에렉투스(유진 듀보아)
4. 호모 에르가스터(리처드 리키)
5.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근대 유럽의 노동자들)
6.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근대 유럽의 노동자들)
7. 호모 사피엔스(현생인류)

이것을 가지고 인류으 진화도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이 문제야 말로 인류학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이자 핵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은 없다.

화석은 꼬리표를 달고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옷을 보면 바로 옷인 것을 알지만 그 옷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꼬리표를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화석은 그 자체로는 진화했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나와있지 않다는 점에서 옷과 비슷하다.

하지만 화석이 옷과 다른 점은 화석에 대한 세부적인 것을 알려줄 꼬리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인류 진화 경로에 대한 가설로 20세기 초반에 브레이스와 울포프의 단일 경로설이라는 것이 있었다.

단일 경로설은 현재 거의 사장된 가설이다.

이 가설은 둘 이상의 종이 사이좋게 문화를 공유할 수 없으므로 경쟁에 의해 이전 단계의 종은 멸망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류의 진화 경로는 새로운 종이 진화되면서 그 이전의 종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멸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단일종 가설이 참이라면

같은 시기의 화석들을 모두 종내의 변이로 보아야 하는데

이것은 많은 화석이 발굴되어 가면서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반해 요한슨과 화이트 등은 침팬지와 인간의 공통 조상이 분기한 이후

초기 인류 진화 계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나타나서 상당 기간을 지난 뒤

그 중 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호모 계열로 진화해 결국 우리 인간에
이르렀고

그 외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계열은 우리와 점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다가 멸종했다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이 의견에는 대다수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특히 요한슨과 화이트는 호모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마지막 공동 조상을 루시로 유명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고 가정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인류의 진화는 루시를 정점으로 하던 시기가 있었던 것이 된다.

물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정점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꽤 많은 학자들이 확신하지 않고 있으며

복수 진화 계통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다.

중요한 것은 요한슨을 포함한 대부분의 인류학자의 의견에 의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간의 직접 조상으로써의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특이할 만한 점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지금까지의 발견 결과로 볼 때

이 종은 당시 다른 호미니드(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를 통틀어 이르는 말) 종이 없이 혼자 존재했던 호미니드였던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루이스 리키와 메리 리키 부부, 그들의 아들 리처드 리키, 조나던 리키 등 리키 가족 일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인류의 직접 조상이 아니라 진화상의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인류와 침팬지의 공통조상이 있듯이 호모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공통조상이 있고

그 공통 조상의 기간이 매우 짧았으며 호모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곧 갈라져 각자의 길을 갔다는 것이다.

리키 가족은 그 어떤 경우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인류의 직접 조상 계열에서는 제외시켜놓았다.

리키 가족이 이렇게 주장하는 주요 근거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인간을 비롯한 호모 계열의 종들과 너무나도 닮았지만

역시 호모로 직접 진화하기에는 그 차이도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차이로 볼때 100만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호모로 직접 진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리키의 주장을 입증할 화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리키의 주장이 맞다면 약 300 ~ 400만년 전의 원시적인 호모 화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화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인류 진화의 갈래에서 또다른 가장 중요한 화석으로 여겨지는 호모 에르가스터 종에 속하는

1470이라는 화석이 있다. 발견자는 리처드 리키이다.

리키는 그 화석이 300만년전의 것일 것을 기대하면서

따라서 같은 시기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고 하여 그의 주장의 중요한 근거를 얻게 될 것을 기대했다.

리키의 주장에 반대하는 도날드 요한슨은 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을 그의 저서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조금의 힌트라도 얻고자 이 문제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쓰라는 문제를 기말고사에 낼 정도였다.

즉 1470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그 화석의 발견된 정황만을 이야기하면서

같은 시기에 다른 모든 화석이 다 원시적인데 하나의 화석은 매우 발달된 형태이다. 이 화석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한 마디로 1470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나중에 1470이 200만년을 넘을 수 없으며

대략 180만년 전의 화석이라는 것으로 최종 판정이 나면서 막을
내렸다.

이 에피소드는 인류의 가계도를 그리기가 얼마나 힘이 든가를 말하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리키가 발견한 1470은 리키의 주장을 입증시키지 못한 채 리키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여전히 리키의 주장도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는 하지만 리키의 주장을 입증할 화석은 여전히 없다.

하지만 리키는 그 화석이 언젠가는 발견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또 진화 가지상 호모 하빌리스 & 호모 에르가스터와 호모 사피엔스를 이어주는 존재로 호모 에렉투스가 상정되어 있다.

이 의견은 역시 대다수의 인류학자가 인정하고 있다.

동시대의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르가스터를 같은 종으로 보아야 할 것이가 다른 종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도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 둘은 해부학적으로는 상당히 비슷하나 크기가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통계학적으로도 이 두 크기는 종내 변이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현재는 두 종으로 따로 보는 것으로 결정이 났고 하빌리스와 에르가스터로 각각의 이름이 부여되었다.

이 의견도 대다수의 학자가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리키 가족 일가는

호모 하빌리스 & 에르가스터와 호모 사피엔스를 이어주는 존재로써의 호모 에렉투스를 진화의 곁가지로 제쳐놓았다.

그리고 호모 에렉투스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아프리카를 떠난 최초의 고 인류라는 것에 있다.

호모 에렉투스 화석은 진출 지역에 따라 자바원인, 북경원인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호모 또 다른 종인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일명 하이델베르크인이라고도 불리며 유럽으로 진출한 호모 에렉투스가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는 화석 자체가 워낙 파편이라서 자세한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란 바로 우리들 자신이며 여기에 5만년전의 크로마뇽인이 포함된다.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그러면서도 호모 사피엔스 쪽 시대에 더 많이 걸쳐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있다.

이 화석의 인류 진화상에서의 위치는 인류학 사상 가장 논란이 많았던 화석으로 기록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이 우리와 같은 종이냐 아니냐? 아니라면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멸망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가장 핵심 문제인 종판별 문제는 1997년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의 DNA 검사 결과

네안데르탈인이 우리와 다른 종이라는 결론으로 끝났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은 분명 인간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너무나도 우리와 닮은 생물이 된다.

아마 네안데르탈인을 면도를 시키고 양복을 입혀서 뉴욕 시내 한복판에 갖다 놓아도

사람들은 좀 특이하게 생긴 사람이라는 생각만을 가질 뿐일 것이라고 많은 인류학자들이 말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종 판별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끊임없이 남아있다.

그들은 어떻게 우리보다도 더 크고 발달되었다고 생각되는 뇌를 가지게 되었으며

강건한 체격을 가진 그들이 갑자기 왜 그리도 빨리 전멸했는가에 많은 학자들이 주안점을 맞추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분명 뛰어난 존재였다.

그들은 사람을 매장하고 장례를 치루었으며 훌륭한 연모를 사용하였다.

이번엔 호모 사피엔스 즉 우리들 자신이 어떻게 이 세상에 출현하였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3가지 가설이 있다.

&lt;1. 촛대형 가설&gt;

이 가설은 현생인류의 기원은 호모 사피엔스의 이주와는 관련이 없으며

호모 에렉투스가 각 지역으로 진출한 후 독립적으로 각각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류의 인종적 차이는 매우 오래전의 것이 된다.

과거 네안데르탈인의 종판정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이 가설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은 유럽과 중근동에서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 진화의 산물로써 이른 시기의 현생인류라고 생각되었다.

&lt;2. 노아의 방주 가설&gt;

현생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로 단 한종에서 출발하였고 그 기원지는 아프리카이며

세계로 퍼져 그 지역에 분포하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을 포함하여 다른 종의 호미니드를 몰아내고 멸종시킨 뒤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종적 차이는 아주 최근에 일어난 것이다.

&lt;3. 변형된 촛대형 가설&gt;

촛대형 가설을 약간 변형시킨 것으로 독립적으로 탄생한 현생 인류가
진화과정은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유전자를 교환했다는 가설이다.

따라서 각 지역 별 현생인류의 특징은 적지 않게 희석되었다.

이 세가지 가설에 대한 논제는 항상 인류학계의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현대의 학문은 모든 학문이 독자적으로만 설 수 없으며

다른 학문과 연계 및 상호 의존해서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보여주는 시대이다.

인류학도 과거와 같이 화석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갔으며 분자 생물학과 생화학적으로 인류 진화도를 추적하는 연구가 함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 분자 생물학과 생화학은 요한슨도 리키도 또 다른 해부학자나 인류학자도 지지하지 않는 새로운 훌륭한 인류학자가 아닐 수 없다.

레베케 칸이 이끄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팀은 전세계 147명의 여성의 미토콘드리아 핵산을 분석하였다.

같은 조상으로부터 분기되어 세월이 흐르면 흐른 만큼 유전자의 차이도 크다.

그리고 인종에 따른 유전자의 차이를 조사해 보면 최초의 인간을 추측할 수 있다.

DNA 중에서도 미토콘드리아가 독자적으로 지닌 DNA는 인류진화 과정을 파악하는데 가장 적절한 유전자라고 여겨지고 있다.

다른 DNA와는 달리 유전자가 어머니의 난자를 통해서만 아이에게 전해지고 아버지의 유전자는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대를 지남에 따라 변화가 다른 DNA보다는 빠르기 때문에 유전자끼리 비교해보기 쉽다.

연구팀은 현대인의 조상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인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조사해 보았다.

DNA의 변화율과 인종간 DNA의 차이를 토대로 추정한 결과

이들은 현대인의 첫번째 조상은 약 20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한 사람의 여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결과는 단일 기원설을 매우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촛대형 가설을 완전히 사장시키기에는 여전히 이른 감이 있다.

이제 이것은 우리가 계속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lt;&lt;&lt;&lt;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과 없는 것&gt;&gt;&gt;&gt;

침팬지와의 공동 조상에서 분기된 이 후 우리 조상들은 직립보행을 했으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에렉
투스로 넘어오면소

성적 차이는 없어지고 두뇌가 커져간다는 것, 치아의 특성이 우리 인류에 비슷해진다는 것등은 우리가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호모가 되지 못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어떻게 멸종에 이르렀는가하는 문제와 네안데르탈인이 왜 그렇게 빨리 멸종했는가 하는 문제를 필두로

최초로 도구를 쓴 사람은 어느 단계인가?

언어를 가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무엇을 먹었는가?

등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여전히 너무나도 많다.

인류의 진화는 여전히 신비에 묻혀있다.





"우리가 어떤 동물인가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푸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 문제를 풀기위해서는 사고와 감정과 문화를 가진 우리가 어떻게 원시적인 생물로 부터 탄생될 수 있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 질문은 우리 자신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냥 단순한 호기심으로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이다." &lt;인류학자 리처드 리키&gt;
 

<br><br>[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7-29 12:44:10 창조잡설 비판(으)로 부터 이동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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