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킨스-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괴상한

도킨스-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괴상한

기록원2 5 3,779 2007.04.20 01:01
안녕하세요?
리처드 도킨스의 2005년 TED 컨퍼런스 강연이 유튜브에 있길래 옮겼습니다.
TED 컨퍼런스는 기술 전문가와 문화인들이 매년 미국 몬트레이에 모여 지식을 공유하는 모임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 강연은 제가 인터넷으로 들어본 그 어떤 강연보다 감동을 먹었던 강연이라
안되는 실력이나마 엉터리로 옮겼습니다. 잘못된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저의 강연제목은
"과학의 세계: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괴상한(Queerer than we can suppose) " 입니다.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괴상한"이란 문구는 위대한 생물학자였던 핼던(J.B.S. Haldane)의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얘기했죠.

"지금 내 마음속에 드는 의문은 이것이다.
우주의 괴상함은 어쩌면 지금 우리의 상상 뿐 아니라, 미래에 상상할 수 있는 수준조차 뛰어넘는 게 아닐까?
천공과 이 지구엔 어떤 철학자도 생각한 적 없는, 또 앞으로도 생각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숨어있지 않을까"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이론의 실험적 정확도가 북미대륙의 너비를 머리카락만큼의 오차로
측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이론은 어떤 의미에서든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예측을 위해 도입된 가정들은 너무나 괴상해서 파인만 본인조차
"당신이 양자이론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양자이론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웃음)

물리학자들은 이 괴상한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상식으론 이해하기 힘든 비유들을 동원하곤 합니다.
오늘 강연한 물리학자 데이빗 도이치(David Deutsch)는 그의 책 "Fabric of Reality"에서
아주 '많은 세계'가 평행하게 존재한다는 양자이론의 가설을 도입했습니다.
아마 이 가설에서 제일 나쁜 점이래야 터무니없는 낭비라는 비난이 고작이겠지요. (^^;;)

그는 무수히 많고 동시에 빠르게 그 수가 불어나는 우주들이 서로 평행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 우주들은 서로의 존재를 정밀한 양자역학적 실험을 통해서나 감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생물학자 루이스 월포트(Lewis Wolpert)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괴상함은 과학이, 기술과는 달리, 상식에 배치된다는 걸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가 한 컵의 물을 마실 때마다 그 중엔
올리버 크롬웰의 방광 속에 있었던 물 분자가 적어도 하나는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웃음)
이건 아주 기초적인 통계적 확률의 문제입니다.
어쨌든 한 컵에 든 물 분자의 수는 온 세상의 컵 혹은 방광의 숫자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으니까요.

물론 제가 든 예는 크롬웰 혹은 방광과는 전혀 특별한 관계가 없습니다.
같은 식으로 여러분이 방금 들이쉰 공기 속엔 키 큰 소철나무 왼편 이구아노돈의 허파를 거쳐나온
질소 원자가 적어도 한 개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모두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괴상한 일들입니다.

무엇을 상상 혹은 가정한다는 게 도데체 무엇일까요? 이런 능력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런 이유를 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상상의 한계'도 가늠할 수 있을까요?
이 우주엔 우리는 불가능하지만 우리보다 지성이 높은 어떤 존재는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신비가 존재할까요?
아니면 이론적으로 그 어떤 존재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신비가 존재할까요?

과학의 역사는 당대엔 이해할 수 없던 창조적인 생각들과
사람들이 세대가 지남에 따라 그 괴상함에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한 때,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도는 대신, 지구가 자전한다는 생각은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거의 혁명적인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도 지구는 가만히 있고 해가 돌고 있는 것처럼 느끼니까요.

이 얘기는 비트겐슈타인이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항상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처럼 느끼는거지?"
친구는 "그거야 당연히...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잖아?!"
비트겐슈타인은 "그럼 만약에 진짜 지구가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어떨까?" 라고 대답했습니다. (웃음)


과학은 ,우리의 감각경험과 달리, 겉보기에 딱딱해보이는 바위나 크리스탈과 같은 물체가
실제로는 거의 '빈 공간'이나 다름없음을 알려줍니다.

흔히 물질의 구성하는 개별 원자의 핵을 '스포츠 경기장 속의 파리'에 비유합니다.
이 경기장에 한마리, 다음 경기장에 또 한마리 이런 식이죠...
그러므로, 이 단단하고 딱딱한 바위가 실은 텅텅 빈 공간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안에 든 거라곤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나기도 힘든 아주 작은 입자들 뿐이구요.

이런 바위가 어째서 이렇게 단단하고, 또 뚫지 못할 어떤 것으로 보이고 느껴질까요?

진화생물학자의 입장에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뇌가 우리들이 실제로 활동하는 세계의 크기와 속도에 맞게,
이런 세계에서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원자들의 틈새를 돌아다니도록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의 머리는 바위를 거의 빈 공간으로 인식했겠지요.
손으로 만지면 바위가 딱딱하고 뚫지 못할 무엇으로 느껴지는 건
우리의 손과 바위가 서로 섞이고 뚫고 지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딱딱함', '뚫지 못함'과 같은 유용한 개념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 개념들 덕분에 우리는 이 '중간 크기의 세계' 속에서 편리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자세계의 반대쪽 극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우주 공간 속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다닐 필요가 없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거의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겠죠.

저는 '중간 세계'라는 용어를 너무 크지도 또 작지도 않은 척도를 지닌,
우리가 거기에 맞추어 진화해 온 세계를 지칭하는 데 사용하려 합니다.
'중간계'가 아니라 '중간 세계'입니다. (웃음.. 중간계는 아시다시피 반지의 제왕의 세계죠)

우리는 이 '중간 세계'에서 진화한 존재이며, 그 사실이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요소입니다.

우리는 예컨데 토끼와 같은 '중간 세계'적인 대상이 '중간 세계'적인 속도로 움직이다
또 다른 '중간 세계'의 물체인 바위에 부딪혀 넘어지는 광경을 아무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떠 올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 1983년 미국의 정보 사령관이었던 앨버트 스터븐 3세 중장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는 버지니아 알링턴에 있는 그의 사무실 벽을 유심히 바라보다 마침내 결심했습니다.
조금 겁이 났지만, 마침내 이웃 사무실로 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일어나서 책상 뒤로 돌아 나오며 그는 생각했습니다.
원자는 대부분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지? 그래 텅텅 빈 허공이야.
그는 걸어가며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럼 난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지? 당연히 원자야.
발걸음을 빨리하며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벽은 뭘로 구성되어 있지? 역시 원자야!!!.
그럼 난 두 공간을 합치기만 하면 되잖아?!!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벽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16000명 병사들의 사령관이던 그는 계속된 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나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벽 뚫기' 능력이 언젠가 군사 무기가 될 거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런 능력으로 무장한 군대를 누가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 이 이야기는 제가 며칠전 플레이보이 잡지에서 본 내용입니다. (웃음)
그 잡지를 열심히 읽은 이유는 제 글이 그 잡지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웃음)


인간의 자연적인 감각은 '중간 세계'에서 받은 교육의 결과물입니다.

공기 마찰을 무시한다면,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는 동시에 땅에 떨어진다고
갈릴레오가 주장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공기 마찰은 '중간 세계'에서 처음부터 언제나 존재해온 그 무엇이니까요.
우리가 진공의 상태에서 진화했다면, 그런 결과를 당연히 예상했을 겁니다.

박테리아는 열에너지로 움직이는 주변 분자들의 브라운 운동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 것입니다.
하지만 '중간 세계'인인 우리는 그것을 느끼기엔 너무 덩치가 큽니다.

같은 예로, 우리는 주로 중력의 영향을 받으며 살지만, 표면장력에 대해선 거의 무감각합니다.
반면 아주 작은 곤충들에겐 이 두 힘에 대한 감각이 우리와 정반대겠죠.

컴퓨터 공학자 스티브 그랜드(Steve Grand)는, 사진의 왼쪽 인물입니다만,
(오른쪽은 세상을 떠난 더글러스 아담스(Douglas Adams)입니다.)
그의 책 "Creation: Life and How to make it" 에서 우리의 '물질' 집착증을 가볍게 꼬집고 있습니다.

우리는 딱딱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무엇만이 '실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파동이나 진동속에 전파되는 전자기파 같은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 됩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은 파동이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무언가 전파를 중개하는 매질, 즉 에테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우리가 '중간 세계'에서 진화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런 물질이라는 안경을 통해 바라보는 게 편리한 세계 말입니다...
예컨데 빨래통 속의 소용돌이는 어느 한 요소도 제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지만,
우리는 마치 바위와 같은 고정된 물체로 인식합니다.

탄자니아 사막, '오도니아 랭가이'화산의 기슭에 화산재로 이루어진 모래언덕이 있습니다.
'바칸'(barchan)이란 이름으로 부르는 이 언덕은 조금씩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언덕 전체가 일년에 약 17m씩 서쪽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습니다.
움직이면서도 초승달 모양의 언덕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뿔쪽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바람이 모래를 얕은 경사면을 따라 불어 올리면, 급한 경사면 쪽으로 모래가 떨어지면서
초승달의 전체 모양이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것입니다.

스티브 그랜드는, 여러분과 제가 물질보다는 파동에 가까운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권유합니다.
너무 또렷하고 생생해서 소리나 냄새까지 잊혀지지 않는 그런 경험을요..
그건 마치 정말 거기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기억입니다.

잠깐, 당신은 '정말' 그 때 거기에 있었지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걸 기억하겠습니까?
하지만 뒤이어 그의 결정타가 날아 옵니다. "당신은 실제로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신 몸을 이루는 원자들 중 어느 하나도 그 때 그 장소에 있지 않았습니다."

물질들은 끊임없이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동합니다.
그 끝없는 흐름 속에 잠시 동안 뭉친 덩어리가 '당신'이라 부르는 무엇이 된 것 뿐입니다.
기억 속의 그 곳에 있었던 이가 누구든, 지금 '당신'을 이루고 있는 요소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도 머리카락이 곤두서지 않는다면,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십시오.
중요한 얘기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정말 이 세계를 단순한 확신을 가지고 판단하는 게 가능할까요?

뉴트리노에게 지능이 있고, 뉴트리노-크기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면
바위는 정말로 빈 공간에 불과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바위를 뚫고 지나갈 수 없었던 중간-크기의 조상으로부터 뇌를 물려받았습니다.
동물의 뇌는 생존을 위해 무엇을 '현실'이라고 판단할 지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각기 다른 환경에 적응한 종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현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파악하는 '현실'은 아무런 치장없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그것의 모델입니다.
감각 정보에 의해 통제되고 변형된, 그리고 생존에 적합하도록 재구성된 모델입니다.

이 모델은 결국 우리가 어떤 종류의 동물인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날아 다니는 동물의 모델은 걷거나 나무를 오르거나 헤엄치는 동물들의 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원숭이의 뇌는 주로 나무줄기와 등걸로 이루어진 3D 시뮬레이팅용 소프트웨어를 가집니다.
두더쥐의 뇌는 당연히 땅속세계에 대한 정보를 시뮬레이팅하겠지요.
반면 연못의 표면에서만 사는 소금쟁이에겐 3D용 소프트웨어는 필요없을 겁니다.

저는 박쥐들이 귀를 통해 '색깔'을 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쥐가 3차원 세계를 날아 다니며 곤충을 잡기 위해서 필요한 '현실' 모델은
주행성 조류, 예컨데 제비가 같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박쥐는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메아리로 외부 세계의 정보를 받아 들이지만,
제비가 빛을 이용한다는 차이는 그다지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저는, 박쥐가 메아리의 서로 다른 유용한 특징들을 일종의 '이름표',
자신만이 알수있는 이름표를 붙여서 구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특징은 반향하는 물체의 표면에 대한 정보이겠지요. 복슬복슬하거나 부드럽거나 하는 식으로요..
마치 제비나 혹은 우리 인간이 가시광선의 서로 다른 파장들을 구별하기 위해
'빨강' 혹은 '파랑'과 같은 색깔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사실 가시광선의 장파장과 '빨강'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정한 규칙에 불과하지요.

요점은 모델의 특징을 결정짓는 요소는 어떤 환경에 적응하느냐의 문제이지
감각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박쥐와 제비가 사용하는 기관은 다르지만 모델은 같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핼던도 그의 책에서 냄새가 주된 감각기관인 동물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개는 화학식이 거의 같고, 아주 낮은 농도로 희석된 두개의 지방산을 냄새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카프로산과 카프릴산인데요, 두 물질의 차이는 단지 한쌍의 탄소원자가 추가된 것에 불과합니다.
핼던은 개가 이 물질들을 그 분자량에 따라 달라지는 냄새의 '음계'에 따라 구별한다고 추측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피아노의 음을 길고 짧음 혹은 그 음계에 따라 구별하듯이 말입니다.

여기 또 다른 산 카프르산이 있습니다. 앞의 두 물질처럼 탄소 원자 두개가 추가된 것에 불과합니다.
개는 전에 이 물질과 마주친 적이 없더라도, 앞의 두 산과 쉽게 구별해 냅니다.
마치 트럼펫이 전보다 한 음 높은 소리를 내면 우리가 금방 알아차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 개나 코뿔소처럼 냄새에 의존하는 동물들은 냄새의 색깔들에 둘러싸여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박쥐가 소리의 색깔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 똑같이 말입니다.

우리가 그 크기와 속도에 적응하고 진화해 온 이 '중간세계'는 어쩌면
전자기파의 영역 중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극히 좁은 영역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가시광선'이라고 부르는 이 영역의 바깥에 대해선 장님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역 바깥을 들여다보려면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상적인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이 '중간 세계'도
아주 작거나 큰 혹은 빠른 영역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정의된 극히 좁은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비현실적'인 것에 대해서도 같은 가늠자를 대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는 불가능과 동의어이며, 극히 일어나기 힘든 일에는 '기적'이란 단어를 붙입니다.

대리석 조각의 손을 이루는 분자들이 우연의 일치로 같은 순간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조각이 움직이는 '기적'이 일어날 겁니다.
하지만 분자들의 숫자는 아주 많고 그들이 한 방향을 정해 한꺼번에 움직일 수도 없기 때문에
'중간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조각상들은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모든 분자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건이 일어난다면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대리석 조각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너무 작아서 소숫점 아래의 0을 모두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우주의 나이를 다 사용해도 모자랄 지경일 겁니다.

'중간 세계'에서 진화해 온 우리는 이렇게 작은 확률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수명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넓은 공간과, 지질학적 단위의 긴 시간이 만나면
'중간 세계'에서 '불가능'으로 보이던 일이 사실은 '불가피한' 일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행성들의 숫자를 세어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확히 우주에 행성이 몇개나 있는지 잘 모릅니다.
대략 십억x십억x1000~2000 이라고 하더군요.

이 수치를 가지고 생명이 탄생할 가능성에 대해 재미있는 계산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전자기파의 영역에 따라가며 일정한 영역마다 이름을 붙여 구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선 생명은 모든 행성에서 출현할 수 있는 아주 아주 흔한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태양계 하나, 혹은 은하 하나에 하나꼴로 생길 수도 있구요.
그리고 전 우주를 통틀어 오직 한번 발생한 사건일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은 우리 지구일것입니다.
대략 저기 우주 어디선가 개구리가 왕자로 변할 확률과 비슷하겠지요.

하지만 생명의 탄생이란 사건이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이 행성에서만 발생한 거라면,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생각의 영역을 극도로 작은 확률까지 넓혀야만 합니다.
즉 생명을 탄생시킨 화학적 변환의 1/(십억x십억x100) 이란 확률을 가늠해야 하는거죠.

물론 저는 우리가 정말 그 정도 확률까지 내려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우주에 생명은 그 보다는 훨씬 더 흔하게 발생했다고 보니까요.
하지만 그 '흔하다'는 말은 앞의 경우와 비교한 상대적인 개념일 뿐,
사실 우리 입장에선 여전히 너무 드물게 일어난 일이라
우리가 다른 생명체와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슬픈 일이죠...


다시 묻겠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괴상한"이란 문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 괴상함은 원래부터 그 어떤 상상의 영역도 넘어선 그 무엇일까요?
아니면 단지 '중간 세계'의 제자인 우리가 갖고 있는 한계에 불과할까요?

만약 후자가 맞다면, 우리가 훈련과 연습을 통해 이 '중간 세계'의 한계를 깨뜨리고
그 괴상함을 가늠할 수 있는 주관적 판단과 수학적 기술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저 아주 크고, 아주 작고, 아주 빠른 세계의 신비 말입니다..

솔직히 저는 그 대답이 어느 쪽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아주 어릴때부터 훈련시킨다면,
예를 들어 가상현실을 담은 컴퓨터 게임을 통해 양자역학의 이상한 세계에 익숙해지게 하거나,
혹은 로렌츠 수축을 재현하는 게임으로 사물을 파동으로 파악하는 게 낯설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중간 세계'라는 아이디어를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는 관점에 적용하고 싶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인간을 기계론적 관점에서 연구합니다.
뇌세포나 호르몬을 조사함으로써 우리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또 서로 다르다는 것의 의미는 신경해부학적으로, 혹은 생리학적으로 다르다는 게 되구요.

하지만 이런 기계적 관점은 일관되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관점을 일관되게 적용한다면,
예컨데 유아 살해범과 같은 범죄자에 대해 '이 개체는 불량이군. 고쳐야겠어'라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우리들 중 그런 기계적 관점에 가장 충실한 사람조차, 아마 제가 되겠지만,
그 범죄자에 대해 사정없이 욕을 하고 감옥에 넣는것도 아깝다고 외칠 것입니다.
혹은 더 나아가, 복수를 꾀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마 반복되는 보복의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겠죠.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보듯이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연구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우리 인간을 차나 컴퓨터처럼 정교하고 복잡한 기계와 같은 존재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코미디언 배즐 폴티(Basil Fawlty)처럼 행동합니다.
여러분은 그가 말을 듣지 않는 자기 차를 어떻게 벌주었는지 기억하실 겁니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차와 같은 사물까지도 마음을 가진 인간처럼 취급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우리가 '사회적 관계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숭이가 숲속에, 두더쥐가 땅속에, 소금쟁이가 표면장력이 지배하는 세계에 사는 것 처럼요..
우리는 이 '중간 세계' 중에서 사회적 관계의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존재입니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관계를 맺는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맞추는 능력을 키워 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때부터 뛰어난 심리학자입니다.

인간을 기계처럼 취급하는 게 과학적 혹은 철학적 관점에선 타당할지 모르지만
현실 세계에서 자기 동료가 무엇을 할 지 짐작하는 데는 적당하지 않은 방법입니다.

적절한 경제학적 모델은 인간을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자로 간주합니다.
이 행위자는 동시에 희노애락의 모든 감정을 지니고 잘못도 저지르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대상을 인간처럼 인식하고, 목적이나 마음을 지닌 것처럼 묘사하는 방식은
동료 인간들과 살아가기에 참으로 유용하고 성공적인 '현실' 모델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물이나 자연 현상처럼 맞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조차
이 모델을 적용하려 시도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미디언 배즐 폴티가 말을 안 듣는다면 자기 차를 몽둥이로 때리거나,
혹은 몇백만의 사람들이 이 우주를 바라보며 망상에 빠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웃음)


만약 우리 우주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괴상하다면,
그건 자연선택이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만 상상하도록 교육했기 때문일까요?
우리의 뇌가 가진 능력과 확장성으로 훈련을 통해서 이 '진화의 감옥'을 탈출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 어떤 철학도, 신과 같은 능력을 발달시킨 존재조차도 꿈꿀 수 없는 그런 신비가
우리 우주 안에 존재할까요?

감사합니다.


Comments

찬우님 2007.04.20 01:07
아 너무 길군요 ㅎㅎ 내일은 일찍와서 읽어봐야겠습니다.. 흥미있는 내용같군요 ㅎㅎ
항하水 2007.04.20 02:11
어렵네요!

그 중에도 이 부분은 어디선가 들은 법문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 물질들은 끊임없이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동합니다.
그 끝없는 흐름 속에 잠시동안 뭉친 덩어리가
"당신"이라 부르는 무엇이 된 것 뿐입니다.)

내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항하水 2007.04.20 23:41
시간이 있어서 천천히 읽어 보았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가능성에 대한 언급입니다.
과학으로 이런 사유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학문이라는 것이 깊이 들어가면
다 연결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우리의 존재가 더 무한한 영역으로 넓혀질 수 있는데
자연선택에 의한 학습과 경험으로 지금의 제한된 능력의
우리가 존재한다.
우리의 뇌가 가진 능력의 확장으로 "진화의 감옥"을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집니다.

이 것은 사담입니다만 제 남편하고 神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우리는 애초에 신의 모습이였는데 지금의 우리는 신으로 부터
멀리와 있고 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의 신은 범신론의, 아니면 완벽한 어떤 것을 의미함)

도킨슨이 얘기한 무한한 영역의 우리가 신의 모습이고 '중간 세계'에
갇혀서 제한된 능력으로 진화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아닐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재수 2007.04.20 13:48
잘 읽었습니다..

기록원님 께서 올려주시는 자료가 이곳에 오시는 많은 분들의 소양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 주리라 믿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sync 2007.04.20 17:26
기록원 = 기록원2 이십니까? ^^;
정말 매번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귀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코멘트하신
"어떤 목사의 강연이 이보다 장엄하고 또 마음을 보글보글(?)거리게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이거 완전 공감됩니다!
도킨스와같은 지성인의 빈틈없는 논리 전개는
추리소설을 읽을때와 같은 흥분을 느끼게 하는군요.
이같은 사람들은 단지 1+1 = 2 와같은
지극히 "맞는말" 을 할 뿐인데.. 어떻게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는걸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8 하나님, 예수에게 큰 신세를 지다 댓글+1 기록원 2007.03.11 3577
17 하나님, 악한 일들을 허락하시다. 댓글+3 기록원 2007.03.10 3851
16 진화론/창조론: 50초 요약 댓글+3 기록원 2007.02.28 3781
15 [디스커버리 채널] 예수 무덤 댓글+3 기록원 2007.03.23 4443
14 타이슨-바보같은 설계자 댓글+11 기록원 2007.03.14 4774
13 무지를 전도하는 미국 기독교인들 댓글+3 기록원 2007.04.06 3748
12 콜린 맥긴-존재의 목적/도덕의 기초 : 무신론자의 생각 댓글+4 기록원 2007.04.04 3617
11 댄 데넷-진화론 이해하기 댓글+6 기록원 2007.04.02 3758
10 수년 전 댄 데넷의 한국 방문 인터뷰 기사 댓글+1 자호 2007.04.02 2659
9 샘 해리스-두개의 강연 댓글+4 기록원 2007.03.30 4394
8 도킨스- BBC 인터뷰 댓글+9 기록원 2007.03.28 4203
7 [자막합친영상] 대니얼 데닛 인터뷰 (기록원님이 남겨주신 영상) 댓글+4 NoNoGod 2007.04.06 3347
6 [중복영상+자료] 사막잡신을 믿지 않는 바보들의 행진 + 네이처지 통계 자료 댓글+3 NoNoGod 2007.03.31 4665
5 아래 영월소나무님 동영상입니다~~ 댓글+10 NoNoGod 2007.03.31 4625
4 [펌] 외국 코미디언들도 이렇게 개독을 까는데.... 댓글+7 NoNoGod 2007.03.23 7076
3 [자막합친영상] 리처드 도킨스 BBC 인터뷰 (기록원님이 남겨주신 영상) 댓글+8 NoNoGod 2007.04.06 3820
2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 댓글+5 자호 2007.04.06 4880
1 스파게티교 관련 추가자료 댓글+1 time 2007.04.06 3379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114 명
  • 오늘 방문자 3,353 명
  • 어제 방문자 4,522 명
  • 최대 방문자 5,411 명
  • 전체 방문자 1,557,807 명
  • 전체 게시물 14,417 개
  • 전체 댓글수 38,042 개
  • 전체 회원수 1,668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