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의 추석과 아프리카

[기고]한국의 추석과 아프리카

엑스 0 4,615 2002.06.15 22:26


[기고]한국의 추석과 아프리카

한국 사람들이 국토를 가로질러 전통적인 명절을 지내는 ‘추석’이 지났다. 한국인에겐 1년 중 달력에서 가장 중요하고 대단한 날짜다. 한국인에게 추석은 국가적 축제일 뿐만 아니라, 가족과 만나 조상을 기억하는 계기다. 한국인들은 기독교,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라마단 단식일을 생각하는 것보다 추석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국인에겐 역시 다른 무엇보다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종교적인 믿음은 한국 관습과 전통을 부정하지 않는 한, 그 뒤에 온다. 예컨대 한국인 기독교, 이슬람교 신자들은 자신의 종교가 한국의 문화적 가치를 거스를 경우,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 어떤 종교적인 세례명을 주건간에, 조상이 주신 한국이름을 완전히 버리고 외국이름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금기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도 사회활동을 하면서 외국 세례명을 쓰지 않는다. 세례명은 어디까지나 신앙의 상징일 뿐이다.

추석 명절 동안 한국인들은 종교와 무관하게 조상의 묘소를 찾고, 차례를 지낸다. 묘석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감사한 뒤, 조상님께 가족의 번영을 기원한다. 정부도 국민들이 성묘를 할 수 있도록 추석을 전후한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가족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차례 지내는 데 이의를 제기해선 안 된다. 한국인에게 추석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보다 훨씬 소중하고 중요한 행사고, 개인적인 종교야 어쨌든 조상에게 감사하고 가족들과 축제를 즐기는 문화적 관습이 더 중요하다. 한국에서 ‘한국적 금기’를 이길 수 있는 외래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인이 아직도 조상을 숭배하는 문화적 관습과 제례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내 고향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기독교 등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에 지켜오던 조상 숭배 관습이 사라져버렸다.

백인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자들과 더불어 아프리카에 온 뒤, 아프리카 전통 신앙과 풍습을 말살해 버렸다. 아프리카 전통은 ‘원시적’이라고, ‘꼴불견’이라고 몰아붙였다. 아프리카 전통문화를 파괴한 것은 제국주의와 기독교였다.

그러나 미국의 유명한 대학교수들인 제라드 렌스키, 패트릭 놀란, 진 렌스키가 공저한 사회인류학 저서 ‘인간사회(Human Societies)’를 보면, 기독교 등 몇몇 세계종교가 아프리카의 산업발전을 저해한 주요 요소 중 하나라고 나온다. 예컨대, 산아제한을 없애 아프리카 대륙에 인구 폭발을 일으켰다.

이 책이 옳다면, 과연 아프리카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세월 그래왔듯 외래 종교에 맹목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아니면 과거의 전통을 새롭게 돌아봐야 하는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서양이 강요한 편견을 버리고, 아프리카 전통을 재조명하고 전통 신앙을 새롭게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자기 조상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외래 종교의 신을 숭배할 수 있는가. 이것이 아프리카의 고민이고, 모순이다.

최근 미국, 브라질, 쿠바, 도미니카 등 세계 각지에서 부두교 등 흑인문화 재조명 운동이 활발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아프리카 문화가 아메리카 대륙에 역수입돼서 꽃피우고 있다.

기독교가 오기 전까지는 아프리카 사람들도 동남아나 동북아 유교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조상을 숭배했다.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신흥공업국들은 전통을 지키면서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다. 백인 선교사들 말에 따라 ‘원시 신앙’을 내던진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산업화가 요원하다. 오히려 조상들 때보다 훨씬 빈곤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 국민이 귀성전쟁을 치르며 민족적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는 아시아를 볼 때, 아프리카는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존 에시비/ 한국외국어대 교수·케냐인 )

09/15(금) 02:51 입력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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