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불교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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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불교와 예수

무성 0 5,933 2013.05.13 06:34

ㅡ불교와 예수ㅡ
예수의 13세부터 29세까지의 행적은 성경어느 구절에도 한글자도 밝혀져 있지않다 그동안 서양은 수많은 탐헙가 종교학자들 이른바 (알려지지않은 예수의 생애)에 관한 탐구와 연구들이 계속되여 왔고 의문에 쌓인(예수의 17년)을 부단히 밝혀내려고 캐톨릭의 수많은 수도사들 역사학자들이 노력해왔다
그러던중 러시아의 저술가 니콜라스 노도비치는 1887년 인도와 티벹지방을 여행하다가 라닥지방의 수도인 레(Leh),근처 하이미츠(영어 표기로는 히미스:Himis)히미스 사원에서 티벹어로 기록된 예수에 관한 기록을 발견 1894년 불어판으로 <<알려지지않은 예수의 생애ㅡ성(聖) 이사(ISSA)의 일대기>>를 출판한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고 이책은 곧 영어로 번역되었고 속속 독일어,스페인,이태리에서 출판되였다
그후에도 수많은 학자 탐험가들이 인도와 티벹을 방문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불교사원의 고문서들을 목격 번역해서 세상에 내놓았다
여기서 잠시 기독교도들이 절대신으로 부르짖는 예수와 유태교의 민족신 야훼와 여호와의 연관성을 잠시 집고가면서 성서가 만들어지게 되는 당시의 배경을 보고 가겠습니다

약 육천여년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창조주 야훼(YHWH)신을 구세주로 섬기면서 살아오던중 에집트로부터 노예생활 탈출후의 과야에서 고난등 무수한 고통속에서 살아오면서 BC 3세기부터는 그들의 지존자 절대신인 야훼의 이름을 호징하지 못하도록 율법으로 제정되기에 이릅니다

그이유는 고통받는 히브리인들을 구원해주실 절대자 이기에 지나치게 함부로 입으로 부르지 못하게 되자 히브리인들이 구세주라는 간접용어로 히브리어로 "옐루힘"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하게 되였고 후일 예배용어로 구세주라는 말을 "아도나이"로 불르게 되였는데 아도나이의 발음되는 A-o-ai를 절대 지존자 야훼라는 네개의 자음자인 YHWH 사이사이에 끼워서 읽게 될경우 Yehowah 여호와라는 호칭의 대명사가 생기게 된것입니다

이후 인간들의 흥망성쇄의 흐름따라 로마인들이 북아프리카로 부터 북쪽으로 흑해연안을 지나 전유롭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던 시절 가나안땅의 이스라엘 민족들의 지역가지 통치하게 되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사렛 마을의 예수가 나타나서 구세주라고 세상을 구원하실 왕중의왕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예수 추종자들이 많이 생겨나자

유태인들의 민족역사이며 전통 민족 종교에서 보기에는 말도 되지않는 더구나 위대한 절대 구세주를 함부로 합리화해서 야훼신과 동일시하는 것을 인정할수 없었던 유태교의 랍비(유태교의 성직자들)에 의해서 당시 그지역을 지배하던 로마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발을 하여 십자가에 처형되도록 한것입니다 그러나 실재의내용은 로마총독이 유다를 이용하여 예수를 죽이게 된다

근본 이유는 어떻게 인간의 몸을 가진 인간예수가 그들의 위대한 유일신 야훼신과 동격으로 합리화 한다는것을 용납될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후 예수가 죽고 AD50년~AD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때까지 종이가 없던 시절양피지가죽에 예수의 복음이 예수의 제자들에 의하여 양이늘어가면서 약 300년이 넘도록 예수복음의전도로 늘어가는 기독교도들을 위한 교재로 양피지에 필사본으로한 복사에 복사로 수많은 성서의 기록이 늘어가게 됩니다

막강하던 로마제국도 서로마제국 동로마제국으로 양분되면서 동로마 제국이 현제의 터기 지역을 중점으로 수도를 콘스탄티노풀(이스탄불)로 정하면서 막강했던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코스탄틴 대제에 의하여 난립되여있던 양피지 두루마리의 복음들을 한권으로 모아서 만들도록 하는 명령이 떨어지게 됩니다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후 동로마 황제가 대어주는 막대한 자금을 후원받고 성서학자들이 하나의 성서로 합쳐서 만들게 되자니 의견이 분분 할수 밖에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들이 종교인들의 힘을 무시하지 못하고 정치적인 배경의 힘으로 동원하기는 마찬가지 였기에 당시의 북방으로 전유럽을 삼키고 북아프리카등 넓은 지역을 통치하여야 하는 황제로서는 예수 복음서로서 로마 통치의 세력의 구심점으로 삼으려는 야망도 있었던 것입니다

점점 늘어가는 예수 복음의 추종자 들과 또 당시 주변이 아랍 모슬렘 교도들의 난립 또다른 여타 소규모 종교 추종자들 등등 제반 여러 가지의 난제들을 하나의 강력한 종교의 힘도 필요한 때인지라 막대한 자금을 대주었는데 하나로된 성서는 만들어 지지않고 성서 학자들이 미주알 고주알 자신들의 견해가 옳고 다른 견해는 틀렸다는등 의견 대립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본 황제가 강력한 명령과 정해진 기일안에 성서가 하나로 만들어지지않게 된다면 모두 참형을 내린다는 엄한 명령하에 성서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강한 생명을 담보로 한 성서를 정해진 기일안에 만들어지다가 보니 교정이 잘못될 수도있고 예수를 신의 아들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토마스복음 같은 것은 예수 제자중에서 예수의 13~29세까지 의기록을 가장 인간적인 면에서 많이 다루었는데 동로마 황제의 힘의 배경을 등에 업은 성서학자들에 의해서 토마스 복음서는 통째로 빠지게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유로 하여 현제의 성서안에는 예수의 12세이후 13세부터 무수한 인도에서의 종교 철학을 답습하고 최종 10년 동안 히말라야에서 불교(밀교)승려로서 수도하는 기록은 통째로 빠지게 된것을 알수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성서 신구약을 자세히 보면은 예수의 생몰 연대도 루카(누가)복음과 마태우스(마태)복음의 예수 생몰 연대가 50년 차이가 나며 구약성서도 유태교에 있는 히브리어로 된것을 축소하여 만들어지면서 절대적인 신의 계시로 쓰여진것이라는 신비감을 주기위하여 70인이 모두 각각 다른지역에서 다른시간에 쓰여진것을 모아서 하나의 성서로 만들때 보니까 70인의 번역서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더라 한것은 그만큼 신의 절대서라는 믿음을 주기위한 꾸민 말인것입니다

이렇게 동로마 황제의 자금으로 엄한 명령으로 만들어지게 된성서를 자세히 뜯어보면 수정되여야 할 부분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요한계시록과 사도신경으로 일체 따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요한계시록 마지막절에 보면은 이성서에 한글자를 보태거나 한글자라도 빼는자가 나오면은 영원히 천국에 못간다는 영원히 꺼지지않는 불에 태워죽인다 하였으며 사도신경을 되뇌이게하여 무조건 믿게 만드는것 입니다 기독교의 근본은 이해하고 떠져서 아는것이 아니라 믿을수 없는 사실을 믿는것이 축볻이며 신앙의 근본이며 출발인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의 성공회 교회에서는 성서가 만들질때 참고가 되지않은 성서에 들어오지 못한 기록들을 외경이라고 하는데 성공회의 교회에서는 현제 성서외에도 별개로 만들어서 열여섯편의 외경을 예배때마다 별도로 함께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티칸 2층 도서실에는 성서를 편집할당시 들어오지 못한 무수한 외경들이 많이 있는데 언제고 햇빛을보고 일반인들에게도 읽혀지게 될날이 있게 될것입니다

토마스 복음서는 1945년 이집트에서 발견되었는데 상형문자와 희랍문자를 겸용한 고프트어로 쓰여진 것으로 슈아레의 연구에 의해 세상에 밝혀졌다 <<토마스 복음서>>는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기록한것으로써 114항목으로 되여 있는데 그 가운데 한귀절을 이용해보면

[하느님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이다 만일 너희들이 이끄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하늘에 있다고 한다면 새가 너희들 보다 먼져 하느님 나라에 갈것이다
만일 그들이 바다속에 있다고 말한다면 물고기가 너희들 보다 하느님 나라에 먼져 갈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너희들 속에 있다 동시에 너희들 밖에 있다 너희들이 너희들 자신을 안다면 너희들은 아버지인 하느님의 아들이 너희들 자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너희들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면 너희들은 가난한 나라 안에 있고 가난함이란 너희들 자신일 것이다]

하느님이 너희들 속에있고 동시에 밖에 있다는 말은 불교에서의 불성내재론의 표현이고 토마스복음서의 존재는 예수의 사상이 불교사상 그중에서도 불성 내재를 역설한 법화경과 유사한 것을 입증하고 있으며 신약성서의 <탕자의 비유>도 법화경의 유명한 장자궁자의 비유에서 빌려간것이다 그외에고 예수의 기적으로 손꼽는 물위로 걷는것 떡으로 여러사람을 먹이는것도 불교경전의 내용보다 조금 축소된 정도를 볼수 있다

유태교의 토양에서는 이러한 사상이 발생할 여지가 없으므로 불교의 법화경 사상이 실크로드를 거쳐 이스라엘까지 간것으로 생각할수 있고 기독교 신약성서의 수많은 내용이 불교의 법화경에서 옮겨간것은 민희식 교수(한양대학 불문과교수)가 지은 <법화경과 신약성서>라는 책에서 많이 논술되여있다 실제로 로마가 통치하던 시절에도 불교의 법음이 북아프리카 에집트지역까지도 전파된 기록이 있으며 초기 로마 카톨릭에서는 다수의 예수 복음을 믿는 추종자들 사이에서도 불교의 윤회설을 믿는 지도자들이 있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후에 만들어지게 되는 성서의 결집당시 불교의 윤회설을 내세우는 신부들은 동로마 황제의 명으로 사형이 집행 됐으며 사형의 난을 피하려고 일부 성서학자들중 중국으로까지 피신하여간 역사 기록도 있다

예수가 동방의 여러나라를 편력 한것은 엣세네파의 문서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예수에 대한 기록은 초기 로마 교회가 삭제해 버렸던 헷세네파의 책들을 포함한 여러가지 자료를 재구성하여 새로운성경이 만들어져야만 할것이다

현제 라다크 지방의 몇군데 수도원에는 예수에 관한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중 히미스 사원의 두루마리기록은 거의 완벽한 기록이 티벹트어로 남아 있다 이것은 1887년 제정러시아 시절에 니콜라 노토비치가 라다크 레에서 남방 40킬로미터 되는 히미스 사원에서 발견하여 그것을 프랑스어로 번역 1894년에 프랑스어로 출판하였다 당시 <예수의 생애>라는 대작을 쓴프랑스의 에르네스트 르낭은 이 발견물들이 세상에 알려지지못하도록 기존 기독교도들에게 방해와 박해를 당하였다

그후 도울링이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서 <보병궁 복음서>를 서술하였고 복크(Richard Bock)는 티벹의 여러 수도원에서 새로 발견된 기록을 붙여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 후많은 자료가 발견되어 왔으나 너무나 많은 분량이기에 여기에서는 히미스 사원의 기록된 예수에 관한 자료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소게 하고자 한다

예수의 생애는 불교의연대기에 기록된것이 있고 기독교에서 기록된것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기독교 계통의 전기를 가지고 추정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것이 바뀌여져야 할것이다

현제 구약성서나 신약성서도 물론 불교에서 기록한 연대기가 있고 기독교계통에서 기록한 연대기가 있다 다만 그것이 어떻게 다름가하면 불교계통의 연대기는 그 단시 사건이 정확하고 있는 그대로의 기록에 가까우나 기독교 계통의 예수나 그 밖의 기독교에 대한 기록은 예수가 죽고 많은 세월이 흐른다음에 기독교적인 이념에 입각해서 맞추어져 기록되었기에 왜곡되고 잘못된것이 굉장히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기록차이에 대해서 차이점을 알아보자면
자금부터 3000년전에도 인도에는 뛰어난 문화가 있었고 그당시 이스라엘 에집트 심지어는 서양도 인도와는 교류가 있었다 이스라엘,이집트등도 교류가 많았다 최근에도 많은 당사의; 문서들이 발견되고 있지만 그당시 상인, 학자,들이 돌아다니면서 그때 그때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전하고 한것이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 계통의 편찬은 예수가 죽고 나서 후에 제자들이 만든 것이고 거기에서 불교적인 것은 모두 제거를 했다 좋은 예가 초두에 예를 들었던것 같이 토마스 복음서는 부처님의 인간적인 면을 머무많이 설하여져 있기에 동로마 황제의 자금과 후원을 받은 신학자들에의해 만들어지는 신약성서에서는 모두 제거되어 신약의 복음 안에는 토마스 복음서가 들어있지 않게된것이다
[Le tout est sorti de moi Et tout est parvenu a moi
Fendez du bois :je suis la Soulevez la pierre
Et vous me trouverezㅡ la. 토마스 복음서]
번역:모든 것은 나에서 나오고 모든것은 나에게 이른다
나무를 잘라보라 나는 거기에 있다 돌을 들어봐라 나는 거기에 있다.
불교 계통의 연대기에 마오는 예수의 생애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의 기록에는 공통점이 많다 그러나 어떤 점이 다른가?
첫번째 문제점으로 구약성서에서 모세네 대한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은 기원전 1300년의 일로 그 기록은 불교가 생기기 전부터 인도네는 구약성서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것이 다시정리된 불교연대기에 다시나온다

구약성서에서 모세는 인도에서 모사((MOSSA)라고 했는데 거기에 대한 기록이 좀 특이하다 이미 언급한바와 같이 예수의 청소년기의 기록은 기독교에서는 전혀 알지를 못한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는 그저 막연하고도 단순하게 사막에 있다가 30세에 돌아왔다고 되어 있다 성경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예구가 13세부터 30세까지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서 기록한것을 찾아볼수가 없다

그런 반면 불교에서 의외로 불교 연대기에서는 매우자세하게 예수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만큼 불교연대기는 정확성을 기하고 있다
세번째로 예수의 처형에 대한 문제인데 예수가 로마의 그당시 총독인 빌라도에 의해서 처형당한 것에 대해서 기독교에서는 그것은 유태인들 중에서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배반해서 죽게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연대기에서는 유태인들이 예수를 뛰어난 사람으로 여겼지만 로마의 빌라도 총독이 계획적으로로 예수를 죽였다고 되여있다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이 유다에 관한 것이다 유다가 예수를 배반했다는 것이 기독교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불교 연대기에는 유다는 예수를 배반 한 것이 아니다

빌라도의 책략에 걸려 예수를 밀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독교 계통에는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고 자살했다고 하는데 유다는 자살한것이 아니고 빌라도가 잡아다가 죽인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죽은 후에 죽은지 바로 직후 유태인들의 유월제가 가까워지자 유태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래서 폭동이 날것을 두려워한 빌라도는 무덤을 다른곳으로 옮겼다

불교에서는 예수를 편견없이 있는그대로 하나의 성인으로 한인물의 생애를 그려내는데 기독교 에서는 예수를 신의 아들로 만들어서 하나의 종교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필요했기에 꾸며진 기록들이 많을수 밖에 없다

예스는 왜 13살때 집을나가 멀리 인도 티벹 페르샤의 여행의 길을 떠났는가 ?당시 유태인들의 관습으로는 13살 이상이 되면은 가장으로서 권리를 갖게된다 예수는 머리가 상당히 영리하였고 13세전부터 부유한잡 딸을 둔 집안에서 사위로 맞아드릴려고 떼를지어 몰려 들었고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매우 만족했으나 예수는 타오르는 지식 욕구에 사로 잡혀 결혼을 하여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생을 원치않았다 그러나 주어진 관습대로 고향에 머물다가는 결혼을 하지않고는 피할길이 없는것을 알고는 인도에서 온 상인을 따라서 13세되는 해에 멀리 고향을 떠난 것이였다

이스라엘을 떠난후 인도 테벹 페르샤에서 공부하고 29세때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그때 까지의 사건이 불교 연대기에는 자세히 기록이 되여 있다 신약성서는 30세가 될 때까지 예수는 혼자 사막을 헤맸다든가 그 밖의 황당 무계한 이야기를 통해 예수에 관해 논하고 있다 예수에 대한 모든 기록이 불교연대기에는거의 정확한데 비해서 역설적으로 기독교 에서는 예수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AD325년과 한차례 더하게 되는 니케아 종교회의 당시까지는 당시 신학자들이 예수에 대한 기록을 토마스 복음등 그외의 기록들로서 다알고들 있었지만 강력한 동로마 황제의 후원을 받은 신학자들의 세력으로 예수를 신의 아들로 만드는데 방해 요소가 되는 예수의 13세이후부터 29세까지의 기록이 통채로 빠지게 되기 때문에 토마스전서등 예수의 동방에서의 수학기간 동안의 기록이 빠져진 이후의 성경의 기록만을 보게되는 사람들은 예수에 관한 역사를 일체 알수 없게 된것이다

예수의 처형에 대하여서도 신약 성서에서는 예수를 미워하는 바리세인들 즉 위선자들인 유대인들이 예수를 없애려고 빌라도에게 넘긴 것으로 기록되여 있으나 그러나 예수는 빌라도 자신이 죽이지 않을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사정도 상당히 복잡하였지만 그때 로마에서 큰세력 다툼으로 빌라도를 지지하고 보호해주던 황제(세이아누스황제)가 몰락하고 테베리우스 황제에게 싸움에서 져서 로마에서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따라서 빌라도도 목숨이 위태러워지고 유태인의 반란이 일어나면 자신이 모함을 당하거나 책임추궁으로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황이 당시로서는 유태인들에게 영향력을 줄수 있었던 사람을 없애야만 했던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선(禪)수행을 많이 하고 돌아온 선사(禪師)라고 부르는 수행을 많이 쌓아서 빌라도의 계락적인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는다 간음한여자의 비유나 세금을 내야하는 이유를 묻고 대답하게 하는 등 모든 빌라도의 계락에도 걸려들지않는다 또ㅠ 예수가 29세에 나타난것은 병고치는자로서 예수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였으며 치료하는 방법은 티벹에서 배웠지만 테벹에서는 쓰지않는것인데 스님이 예수에게만 특별히 스도록 허가해준다 예수는 병자들을 고치고 영적으로 많은 사람을 구제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다

빌라도의 책략에 의해 결국은 유다는 예수를 고발하여 사람들이 예수를 잡으러 왔을때 기적이라도 일으켜서 로마사람들을 무찔러 주지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고 또 고문에 못이겨서 유다는 예수가 유다의 왕이라고 했다고 고발을 한다 예수는 그말때문에 죽게 된다 그래도 예수는 유다를 원망하지않고 사랑하고 축복해준다 고발후 유다는 도망치려했으나 빌라도가 바로그날로 그를 교수형에 처해버린다 유대인들이 유월제에 폭동을 일으킬까봐 걱정을 했으므로 빌라도는 일방적으로 예수를 처형했고 유월제가 일어나기전에 예수의 시체를 옮긴것이였다 이것이 부활이라는 사건으로 확대된다

불교의 연대기와 기독교의 기록중 어느쪽을 믿어도 상관은없다 불교는 무엇이 옳으니 이것을 믿어라 이것만이 진실이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한테 강요 할것은 이세상 아무것도 없다 자기가 좋으면 믿게되어있다 어느쪽이 옳고 그른것것이 아니고 우리는 양쪽을 비교해가며 겁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성서학자 쪽에서는 예수 행적 불명 시대에관한 연구에서 예수의 불교연대 기록에 나오는 새로운 사실들을 인정한다는데 있다

예수의 인도기행기록 이나 티벹,특히 오늘날의 캐시미아,라다크지방,그곳은 지금도 불교의마지막 안주지이지만 거기에는 예수에대한 기록이 여러사원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그외에도 기독교 계통의 사해 문서에도 예수가 멀리 따난 것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어디를 갓다는 부분이 없어서이지 갔다는것의 기록은 남아 있다 그러하기에 기독교성서학자들이 스스로 예수의기록을 보고 찾아가기를 안내를 돕고 있는 것이다

히미스사원의 두루마리 문서에 의하면 예수는 팔리어 산스크릿트어에 능통했다고 되어있고 많은 동료 수도자들중에 너무나도 뛰어나서 예수가 고향으로 돌아갈때 많은 기적의 행적을 하게끔 이적행위를 지도해준 그절고승의 기록에도 예수를 신의 아들이라고 해고 손색이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불교에서 큰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단계를 10단계로 나누는 것과 51지우로 나누는 단계로 나누는 것이 있는데 히미스 사원의 기록으로 볼대 예수의스승 스님이 예수가 고향으로 가서 목매한 자신의 고향 중생들에게 이진리의 말씀을 전허러가겠다고 할때에 예수를 보고 너는 이제 3지위에 들러가 있는 정도이니 마지막 해탈을 얻으려면 10지위를 지나는 수행을 통하여야 하니 떠나지말라고 말리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나 예수의 끈질긴 고향행의 고집으로 스승이 떠나도록 허락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첫번째 두루마리에 있는 예수의 호칭을 '이사'라고 되여 있는 것을 알수 있는데 예수를 이사로 부르는것은 예수의 고양언어 히므리언어로 그대로 발음되여지는것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사의 죽음에대한 기록도 첫번째기록에 나오녀 두번째 두루마리에서는 모사(모세)의 기록이 나오며 세번째 두루마리에서도 모사에대한기록이 상세하게 여기에서는 모세가 유태인이 아니다 이집트인의 파라오의 서자출신이기에 머리가 독똑한 모세는 서자로서 와이 될수 없음을 알고 노예인 이스라엘인 노예들을 이끌고 가나안 당으로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려는 계회을 했다는 것이다

네번째 양피지 두루말이에서는 이사(예수)의 탄생 그리고 성장에 대해서 기록되어있다 예수는 2사람이 있었다 그러기에 4복음서에도 그 연대가 다르다 그것은 서구의 도서관 비밀문헌에도 보면은 예수가 두명이라는것이 증명된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예수의 생몰연대가 50십년차이가 나오는 것을 볼수가 있다 현제 모든 기독교도들이 보고있는 신약 누가와 마태복음을 잘 살펴보면 알수가 있다 이름이 같은 다른 두사람인데 성서를 만들때에 학자들이 동로마 황제의 시간 독촉에 쫓기면서 혼동하여 요즘으로 표현을 빌리자면 교정이 잘못 되여진것 같다

그다음 네번째 두루마리에서 나오는 13살 예수를 사위를 삼으려고 여자를둔 색시집들 에서의 쟁탈전 기록이 상세히 나오며 그로 인하여 인도로 도망하지 않으면 않될 사정까지 상세히 나오는 것을 알수 있다 다섯번째 두루말이 기록을 보면은 14살의 이사(예수)가 아리아인들 가운데 정착하여 수도생활을 한다 부다가야에서 얼마 내려가지않은 힌두교 사원에서 예수가 베다경전을 연구하게 된다 그리고 베나레스(부처님이 최초에 5명제자를 만난곳으로 사르나트에서 10킬로미터 밖에 안된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부처님이 6년고행을 했던것을 본을 따서 6년동안 고행을 하게된다

왜 예수는 브라흐만에 대하여 불만을 갖게 되는가? 예수는 공부하면서 바라문교가 어떻게 해서 출현하는가를 연구한다 아리아 인이 인도에 왔을때 그들은 식량이 부족 하였고 원주민을 지배해야 했기 때문에 소수자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무력을 신탁의 카스트제도를 만든것과 소수의 아리아 인들이 다수의 수드라를 지배하기 위하여 만든 바라문의 철저한 윤회 사상을 비판하고 바라문교의 교리를 떠나 불교로 돌아온다 그리고 히미스 사원에 이사의 기록이 탄생부터 기록되여지는 것 그사원에서 이사를 지도하던 주지스님으로 부터 예수는 고향에서 몇년만에 고향 사람들을 제도하고 히미스 사원으로 돌아와서 더욱 큰도를 이룰것으로 지시를 받았기에 히미스 사원에서 불제자로서 수도를 하면서도 그절의 큰스님으로 부터 각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음을 알수가 있다

즉 예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지상에서 계급제도를 타파하기 시작한다 6번째 두루마리 에서는 예수와 바라문과의 대립 논쟁이 자세히 기록 되어 있다 일곱번째 두루마리에도 이논쟁은 계속되어 있고 여덟번째 두루 마리에는 예수가 위험해서 바라문을 피해 북쪽으로 가면서 불교 신자들에 의해서 구출을 받게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불교에서 자기의 마지막 안주지를 찾는다 불교를 연구하고 법화경을 줄줄 외웠다 기독교는 예수가 창시한것이 아니고 후에 제자들에 특히 사도 바울이 만들었지만 기독교 바탕이 되는 삼위일체나 그 밖의 중요한 사상이 법화경에서 나오게 된다

그다음 두루마리에는 예수가 불교를 연구하는 과정이 나오고 팔이어나 산스크릿트어를 예수가 빨리 통달하고 불교의 경전을 통독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경전을 예수가 얼마나 빨리 이해 했는가에 대한 놀랄만한 기록이 나와 있다 9번째 두루마리에는 예수가 불교에 감화를 받은후 자기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동기에대한 기록이다 9번째 두루마리에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페르시아에 들려 짜라스트라교도와 대화하고 그들과 논쟁하면서 몇번씩을 죽을 뻔한 기록이 나와 있다

예수가 여러해를 외국에 있다가 돌아왔을때 고향인 이스라엘 사람들중 집안 친척되는 사람들은 그에게 상당히 냉담했다 17년이나넘도록 고향을 등졌다가 돌아온 아들이 집밖에서 들어오라는 어머니 마리아나 동생누이들에게 누가 진정한 내형제이며 자녀인가 나의 진정한 형제자매의 연을 맺고 싶으면 모두 나를따라 집을 버리고 나오라고 하는 대목은 현제의 기독교도들이 보고있는 누가복음에도 자세히 나와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하면은 바로 예수가 티벹의 인정받는 승려로서 고향을 돌아왔기에 어머니 마리아의 부름에도 개의치않고 동생들보고 모두 집을 떠나 자신을 의지하고 따르라는 아주 전형적인 불교 승려로서의 행동이였다 이런면도 성서가 결집당시 시간에 좇기어 섬세하게 교정이 되지못한 부분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집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높은 차원으로 알르켜줄겸 예수는 법화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실감하고 '탕자의 비유'를 법화경의 내용보다 알기쉽게 간추린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는 그 대문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열한번째는 이스라엘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기 때문에 빌라도가 첩자를보내서 '이사'에 대해서 조사하는것 그리고 '이사(예수)'를 체포하기위해서 여러가지 모략을 쓰고 예수가 선문답을 통해 그것을 벗어나는일에 기록이 나온다

12번째 두루마리에도 빌라도와 첩자들에 의한 음모가 나온다 13번째는 유대인 사제와 빌라도의 대결이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 사제는 예수를 받들고 살리려고 대결이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 사제는 예수를 받들고 살리려고 노력하고 빌라도는 죽일려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힘이 없어서 빌라도가 죽일려는 계획을 따르게되는 비장한 기록이 나온다

열다섯번째 두루마리에는 예수의 처형을 굉장히 애처롭게 그리고있다 그리고도 그후 무덤을 왜옮겼는가 이런것에 대한 것이 기록 되어있다 여기에서 볼수 있듯이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관계없이 예수에대한 기록은 불교연대기 쪽이 정확하다는것을 알 수 있다

원시기독교의 최초의 역사는 병치료 활동의 역사이며 그것은 병 그 자체에대한 투쟁이라기보다 유대사회가 병에 대하여 강조해온 의미와 투쟁이며 결과적으로는 '지배의역학'과의 투쟁이다 마태,마가,누가복음에 나오는 115가지의 병치료의 이야기는 그대로 초기기독교가 차지하는 치료활동의 비중이압도적으로 중요하다는것을 나타내고 있다기독교 성립의 초기에는 구원이 예수에의한 예수의 이름에의한 치료라는 사실과 뗄수 없는 것이다 병치료가 유태인의 사회에서 지배의 원리나 차별의 이데올로기의 가장 전투적인 투쟁형태였던 것이다

구약의 욥기에의하면 저주받은 병때문에 마을에서 쫓겨난 인간은 사막의 죽음의계곡에서 여생을 마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욥기:15~28 죽음의 계곡은 무덤이였고 그것은 지하의 구멍을 통하여 어두운 물속 명계(冥界)와 직결되어 있다고 믿어온것이다 구약의 레위기에는 저주받은 병 더렵혀진병의 진단에 필요한 병의 징후가 상세하게 열거되어 있다 고대 유대인들은 이러한 일련의 의료행위ㅡ검진ㅡ진단
ㅡ치료ㅡ격리 사화복귀의 권한 모두 유대 최고 법원을 통하여 사제의손에 맡겨져왔다 사제는 임상의 처럼 이권한을 행사한 것이다

예수는 이러한 사회에 등장하여<신의저주>라는 이름의 끔찍스러운 감옥에 갇혀 있는 병자로부터 그 부당하게 강제된 의미를 제거하기위하여 그의 활동을 시작한것이다 예수가 치료해준 병자가운데는 악령에 사로잡힌자 장님 문둥병자가 주로 중심이 됐다 이러한 불치의병의 근원에는 더럽힘과 죄강;ㅆ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한것이 유대사회의 확고한 신앙이였다 이러한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관념상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힘이된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놀라운이요 기적이였던것이다

복음서나 사도행전에는 병고치는 이야기가 많은데 바울의 편지에는 그런것이 없다 바울은 베드로와 더불어 초기 기독교사를 통해 예수의 후계자로 지목된 사람으로 베드로가 유대인기독교에 머물러 그 영향이 사라진데 비해서 바울은 헬레니즘의 세계에 진출하여 이윽고 희랍 로마의 세계속에 기독교를 확립하기 위한 초석이 되였다 니케아 종교회의후 성경이 하나로 결집이 될때 바울의 편지가 13통이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신학자들의 의도적인 뜻으로 예수가 병자를 치료하는 기록이 하나도 없게 삭제되여 있음을 알수가 있다 당시 신학자 들로서는 치료자 예수를 무시 하는데 큰 저항을 느껴오지 않은것은 사실일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예수가 뭔지 알수 없는 팔리어나 산스크릿트어로서 주문을 외우거나 진흙을 침으로 반죽하여 장님의 눈에 칠하였던가 테벹의 밀교에서 간작 되어있는 주술과 유사한 것을 사용한 기술이 나오는데 그자체가 예수를 신의 아들로 만느는데 저해요소가 되는 불교를 수학한 더구나 테벹의 승려들 밑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예수의 기록을 넣을수가 없었기 때문이였다

예수는 전도활동 초기에 석가와 마찬가지로 병을 고치는의사로서 출발하였던 것이다 그뿐만아니라 최초의 기독교회는 예수를 구원이 바로 병치료라고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사로서 받아들인것이다
사실 불교도 고매한 철학이기 전에 병을 고치는 의사가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 불교 이전에도 병을 고치기 위한 주술과 같은 것은 많이 있었지만 불교가 여기에 대해서 승리를 거둔것은 병이 낳으면 불교의 힘에의한 것이며 설사 인간이 죽는다해도 극락정토가 마련되어 있어 그곳에 가게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리라 병이 낫거나 죽거나에 불교는 효력을 갖게된다

그것은 현세와 내세의 양쪽에서 구제의 힘을 뻗칠수 있는 종교의 장점을 지니고 있는데 기독교의 경우도 병을 고치는 신앙이면서 또한 죽은 후의 구제라는것 그것은 죽음과 부활이라는 예수 자신의 실천이 그것을 나타내고 있지만 죽거나 살거나 양쪽에 다 구제가 가능한 불교적인 특징을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다 구약성서의 여호와의신은 노여움과 저주의신이다 사람을 저주하면 문둥병자로 만들어 버리다 동시에 여호와는 병을 고치는 신인것이다

결국 예수는 여호와는 다른 것이다 인간이 병든 모습은 토지가 병지가 병든 보습 즉 문둥병자는 사막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변자를 고친다는 것은 사막이 녹지로 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약에서도 신이 사막에 들어가 악령을 쫓으면 사막은 옥토가 된다 그리고 문둥병자도 병이 낫는다 이러한 환상이 고대 유대인네게 있어다는 것은 예수의 병치료를 단순한 의료행위의 수준만이 아니고 인류 구제라는 사상적 기반에 두고 이 문제를 다루어야만 할것이다

1945년 이집트의 나즈 함만디(Naj Hammandi)의 마을 언덕에서 단지에든 그노시스(Gnosis)의 문헌이 발견되었다 단지에는 복음서묵시록,서신,비밀문서등 42권으로 그 어느 것이나 신약성서의 아포크리파(apocrypha, 외전)에 속하는 것으로 그대부분이 그노시스파의 교의를 담고있는 교전이다

그중에서 토마스복음서는 토마스가 마태복음 이하에 나오는 사도로 예수와 대화를 나누고 예수의 부활을 의심한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상 기독교는 바울에 의해서 성립 되었으며 신약성서의 성립연대는 고린도서가 기원 50년 데살로니카서가 51년,로마서가55년,골로새서가 57년,빌립보서가 57년,마가복음이 70년,누가복음이 80년,마태복음이 90년,에베소서가 100년,디도서가 110년,유다서가 110년,디모데서가 150년이다

이처럼 신약성서의 성립 과정을 볼때 각기 양피지 두루마리 필사본으로 여러부 복사 되여 오면서 확립되는 과정에서도 심한논쟁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이렇게 교재로서 한권으로 모아지는 현제의 성서의 기본형이 될때에도 엄청난 논쟁으로 동로마 황제의 강력한 감독 지시가 있었는데도 의견이 분분 하였었는데 초기에야 오죽 하였겠는가

디도서에서는 유태인의 신화주의가 공격당하고 디모데 전서에서는 신화나 신의 계보에 대한 논쟁이 공격 당하고 디도서에서도 어리석은 논의나 율법에대한 논쟁을 피하라는 공방전이 있었다 바울의 열열한 적극적인 활동이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그노시스파처럼 단순한 신비주의 사상으로 머물렀을것이다

토마스복음서는 신약 디모데서와 같은시기에 기록된 것임이 밝혀졌다 4세기초 니케아 종교회의(325년)기독교의 과격파 즉동로마 황제의 비호를 받은쪽에 의해서 예수가 신의 외아들 이라는 것이 조작되고 기원367년 신학 논쟁때 아시나시우스가 토마스복음서를 이단의서로 간주하고 불태워 버렸으나 이미 그전부터 모든 양피지의 두루마리 복음서들은 근300년가까이 교재로 활용되면서 모든 신약 복음서들이 필사본으로 다량 복사되고 있었기에 토마스복음서가 20세기에 들어와서 재발견될수 있었던 것이다

현제 바티칸교화청 2층독서실에는 니케아종교회의 전부터 모아졌던 신약복음서복사본들과 하나의 성서로 모아진후 성서에 의견대림이나 과격파들의 힘에의해서 들어오지 못하였던 많은 외경들이 상당한 숫자의 외경들이 많이 있다 1947년 "사해문서"가 발견됨으로서 기독교에대한 많은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의 여류성서학자 에렌페젤(Elaine Pagel)은 "나즈함만디(Naj Hammandi문서)"를 연구하고 1981년에"그노시스복음서"를 발표하여 세상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책에서 그녀는 그리스도(Christ){힌두교의신 크리스티나(Krishna)} 의 부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녀의 기록에의하면 기독교는 삶과죽음의 싸이클(cycle)을 반전시킨 종교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대한 동경을 부르짖는 다른종교의 싸이클과는 반대로 현실적으로 죽은 인간이 살아났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후 정통파 기독교에서는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후 묻혔고 죽은지 삼일후에 살아났다는 믿음을 일관하여 갖고 있으나 그것을 문자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붓다를 진리의 체현자로 생각하고 있다 더 쉽게 말하면 붓다란 진리 자체인것이다 그리고 우주의 중심에 우주불(宇宙佛)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우주의 중심에있는 부처인동시에 우주그자체가 부처라는 것이다 이 우주불은 유태교에서 말하는 야훼=여호와 기독교도들이 한글로 번역한 하느님,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알라신과 매우 유사한것이다 이러한 우주불을 현실의 불교에서는 비로자나불 즉 산스크릿트어로 바이로챠나붓다를 하자어로 음역하여 비로자나불이라고 부른다

이비로쟈나불은 침묵의 붓다이기때문에 설법을 하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비로자나불은 우주자체 즉 우주불이기 때문에 우주의 언어밖에 쓰지않으며 우주어의 설법이 우리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침묵을 지키는것이다
허지만 비로자나불은 수많은 석가모니불같은 헤아릴수 없는 부처를 방출하여 우주의도처로 설법을 하라고 파견한다 비로자나란 "태양"이란 뜻으로 사방에 광선을 비추듯 수많은 석가불을 과거로부터 수억천만의 헤아리기도 힘든 부처를 방출하여 파견하고 있는것이다

바로 지리산의 화엄사의 대적광전에 가보면은 중앙에 비로쟈나부처님 좌측에 석가모니부처님 우츧에 노사나부처님 세분이 앉자계신것이 바로 이러한 우주자체 법신불인 비로쟈나부처님과 영겁의 세월을두고 끝없이 출현하는 석가모니불같은 무수한 부처님의 화신불이 분신하여 우리인간 세계에 불교의 개조인 석가모니인것이다 그래서 응화신이라고 하는 인간의모습으로 화현하신 석가모니를 통하여 인간의 언어를 가지고 불교의 가르침을 아는것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기독교의 사고방식과 근본적으로 같은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밀교에서는 비로자나불에 해당되는 우주불을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 부른다 비로자나가 태양이라는 뜻이므로 그 뜻은 같고 붓다와 여래도 같은 의미이므로 같은 것이지만 전통적으로 명칭만 달라진것이다

그런데 현교의 비로자나불은 침묵의 붓다이지만 밀교의 대일여래는 스스로 설법을 하는 웅변의 붓다이다 다만 대일여래의 설법은 우주어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들어도 무슨 말인자 알지를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르침을 밀교라고 부른다 대일여래가 말하는 우주어는 일종의 상장언어이다 밥하늘에 반짝이는별,꽃의속삭임,흐르는물소리,새들의 지저귐이 바로 대일여래의 언어인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닦으면 대일여래의 설법을 알아들을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밀교는 석가불의 매개없이 직접 우주불의 설법을 듣는 불교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하느님이 사랑의 신인데 비해 불교의 붓다는 진리의 붓다이다 기독교에서는 신과 인간사이에 큰 단절이 있어 단절을 메우기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위에 다시군림한것이다 그러나 불교에 있어서는 붓다와 인간 사이에 아무런 단절도 없다 붓다와 인간 사이에는 무한한 거리가 있지만 인간은 붓다를 향하여 한걸은 한걸은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이 붓다가 되기위한 가르침이 불교인것이다

필립 슈아레의 주장에의하면 기독교는 유태교가 부르짖는 메시아 즉 구세주에게 권위를 부여한 점과 기독교가 전파될무렵 지중해세계를 지배한 희랍철학과 맞추려한 점때문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지금 이 곳이 아닌 다른곳에 있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인간의 정신작용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미래,희망 속에서 욕망을 통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이란 우리가 더 질문할 수 있고 답할 수 있고 연기할수 있는 시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당장 자기몸에 위험이 닦쳐오면 인간은 생각할 여유도없이 행동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행동만이 인간을 구할수 있다 붓다와 예수는 깨달은것이다

성직자들은 인간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가도록 하기 위해 미레에 인간이 많은 욕망을 충족시키기를 바란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를 닦지 않고 모든 노력을 외부생활에 기울인다면 영원히 하느님의나라에는 가지못할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관리자인 성직자들은 역설적으로 종교의 적(賊)이 되기 쉬운 것이다 예수가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외치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성장이란 갈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괴로운 투쟁을 통하여 내면의 통일이 이루어진다 예수는 고대 유태교의 엣세네파의 신비주의 공동체에서 매우 초자연적인 훈련을 받았다 그것은 악마와의 투쟁을 위한 훈련이다
붓다가 니련선하 강변의 보리수나무아레에서 악마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는 동시에 완전한 절대적 존재가 되고 악마는 다시 붓다를 유혹할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마태복음에도 악마는 예수의 곁을 떠나 다시는 예수를 유혹하는 일이 없게 된다

초기 기독교 형성에 있어서 예수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서 치료신(神)으로 활약하였으며 유태인들이 사회에서 축출한 신의 저주를받은 문둥병자나 정신병자들을 치료해줌으로서 붓다의 자비를 실천하였으나 이 점을 바울은 매우 싫어하여 그러한 기록을 없애려 했던것이다 예수는 티벹에 가서 많은 영험을 익혔으며 후세에 밀교로서 발달하게 되는 예수의 영험은 토마스복음서 와도 관계가 있다

예수가 밀교에 발리 접근할수 있었던 것은 인도에 도착하여 힌두의 베다 찬가를 중심으로 기도 주문 제식등을 연마하였고 의례 교훈 서사시 등의집대성인 메다를 본질적으로 파고들어 공부한여/ㅅ다는 기록이 말해 준다
베다는 기독교에 있어서 성경이나 이슬람교의 코란처럼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인간에 의해서 성립된것이 아니고 수백년에걸쳐서 긴세월을 구전으로 전승된 민죽의지혜의 결정이다

베다는 제례의식고관련하여 발전해 왔으며 여러 민족이 섞인 인도의 통치에 무력보다 문화의 중요성을 느낀 아리안계 종옥은 문화의중심에 종교를 둔것이었다
베다는 한가지가 아니라 리그베다(Rig Veda),사마베다(Sama Veda),야주르베다(Yajur Veda),아타르바베타(Atharvada)의 4가지가 있고 처음의세가지가 찬가,가요,제사의 집대성으로 그권위를 지녀온데비해 아타르바 베다는 재앙,주술에 관한 집대성으로 당초에는 베다의 지위가 부여되지 않았으나 후에 그 내용이 정비되어 베다의 위치를차자하게되고 제식의례 전반을 통활하는 기도제관 브라만에 속하게 된 것이다

예수가 인도에처음으로 들어와서 자연히 힌두의 베다를 알게되고 밀교의 아타르바 제다도 접하게 되면서 불교가 성하게된 사회적배경 권력을 남용한 바라문계급이 쇠퇴하고 왕족이 새로운 권력을 장악한 접과 상인계급의 권리가 신장되면서 불교는 성립시에 부유한 상인들을 지지자로 가졌고 베다에 기반을 둔 제사만능주의에 재한 자유사상이 일어남을 무력으로 배경으로 한 왕족의 권력장악이 배후의 힘이되었고 인도를 휩쓴 불교는 부다의 입멸후 100년이지나자 불교는 성립시기에 있어서는 성직자를 위한 것이였기 때문에 서민생활에 침투하지못하고 당시 바라문의 권위에 비판적이였던 왕족과 대도시의 상인에게 받아들여졌으나 인도에 정착한 농민에게 침투하지 못한것은 후에 인도에 있어서 불교쇠퇴의 원인이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도 본토에서는 불교가 쇠퇴하고 밀교를 바탕으로하는 티벹불교쪼으로가지 섭렵하게되는 예수는 인도 북부와 티벳에서 많은 주술을 익히면서 유태교와 다소 공통점을 가진 밀교에 큰 관심을 가지게되고 연구를 하게된것이다 내일여래의존재를 최고의 원리로 하였을때 밀교승려들은 석가와 갈라진것이며 예수는 부처님이 설한 인간이 벗어날수 없는 생오병사나 윤회전생의 관념도 모든것이 마와 신의 대림에서 오는 것이며 종교는 여기서 벗어날수 없다고 생각한것이다 따라서 열반에 이르기위한 해탈은 마나 신이 없는 세계에서의 지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붓다는 평소에 설한것과는 달리 말년에 인간의 정신이 다시마와 신의 개념에 얽매이는 날이 온다는것을 불교 초기부터 예언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주술신으로서 예수에대한 서적이나 치료신으로서 예수에 대한 서적이 많이 나오는 것도 예수의 불교 연구의 정점이 밀교에 이르렀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가 될것이다 특히 인도에 처음 들어와서 불교를 공부하기전인 힌두교의 바라문의 베다를 6년동안이나 철저하게 바라문교를 연구한 예수에 있어서는 불교자체가지닌 바라문교의특성에 끌려간것이며 후에 짜라트스트라교나 희랍의 사상이 가미되어 예수의 독특한 사상이 형성된것이다

본래 기독교는 "성서는 믿는것이지 이해하거나 설명할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해온것도 성서가 고시하는 것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고 예수가 신의 지배 라 부르고 원시 기독교교단이 부활의 그리스도라고 칭한 사실의 근거도 예수 자신의 밀교에 대한 연구와 관련이 있으므로 여기에 대한 새로운 연구는 바람직한 일이다

토마스복음서는 기독교 복음서 가운데 가장 불교사상이 생생하게 나타나있는 복음서일뿐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복음서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무엇과 같으냐?"고 물었을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정의의 천사와같다 고 대답하였다 베드로는 청교도이며 도덕가로 자기의부덕에 대한 죄악감에 시달려 왔기 대문에 예수님을 도덕적으로 완전한 순결성의 산징인 정의의 천사라고 말한것이다 마태는 예수님이 이해를 초월한 인간이라고 말했다 마태는 덕보다는 지식을 탐구한 것이며 그점에있어 베드로보다는 더 과학적이다 마태는 지식,원칙,이론체계,철학을 추구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에는 생명이 없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의 원하는 바에따라 예수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것이다

예수님은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깨달음을 얻은것이다 도덕이나 지식은 인간의 창조물이지만 이세상의 모든 사물의실상은 도덕이나 지식을 초뤌한다 베드로는 도덕
의 기초를 이루고 마태는 기독교신학의 기초를 세웠다 따라서 기독교는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도덕성과 신에 대한 이론으로 매듭짓게 된것이다

토마ㅣ스복음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를 이해하지못한점을 지적한 유일한 복음서이다 동시에 불교사상의진수를 전하는 복음서이다 인도에서 예수님이 설교한 내용을 하나만 소게하여보자
"어떤 사람이 메마르고 단단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땅을 갈아도 겨우 먹고 살 정도의 곡식밖에 생산되지 않았다 어느날 한 광부가 농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농사짓느라고 황금의 산을 밟기만하고 있습니다'이 바위밑을 파면 보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농부가 바위를 제거해보니 깊은 땅속에서 금광이 나욌다 "
이것은 토마스 복음서에서 나오는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마음속에 있다는 불성내재론의 멋진 비유이다.

토마스복음서에는 부처님의 씨앗의비유 말씀이 그대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나오며 여기에서 생명의 실상에 대한 언급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가 하느님 아버지인 여호와신과의 계약에 입각한 유목민족의 토지획득을 위한 이야기라면 신약성서는 여기에 대립되는 대지의 신의 결혼과 축제 즉 발르신의 부활과 기적에 얽힌 니야기가 중심이된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 동양의 신화만으로는 신약의 예수님의 부활이나 기적 병치료 또는 처녀수태이야기의 사상적 배경이 약하므로 불경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

희랍어가 사용되던 시대에 옥시린코스(oxyrhynchus)의 이름으로 알려져있던 이집트의 한도시에서 3개의 희랍어 파피루스 단편이 발견되어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한 단편은 제3기에 기원하여 예수에게 귀속되는 단독의말을 15개 내지 16개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는 말씀하셨다"는 도입정식 이외에는 어떠한 관련도 없이 도입되었다 이 언어 속에는 정전복음서(正典福音書)에 있어서 예수에게 귀속된 말과 아주 유사한 것과 병행문을 이루는 보통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다

한 두개의 말은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 후대에 이르러 찬미가의 주제가 되어있다 아음과 같은 말이 그렇다 <두 사람이>있는 곳에는 <그 사람들과 함께> 신이 함께 계신다 혼자 있는 곳에서는 <내가 말해두지만> 내가 그 사람과 함께 있다 "돌을 들추어봐라 그러면 거기서 나를 발견할 것이다 나무를 쪼개봐라 그러면 거기에 내가 있다 "(1897년네 발견된 옥시린코스 파피루스 1)

하나의 단편(1903년에 발견된 옥시린코스 파피루스 654)속에 이롸 같은 말의 집성에 대한 서문이 분명하게 보존되어 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포함되어있다
"이것은 예수가 말씀하셨다 생명을 주는 언어이다 그는 살아계시다 그리고 토마스와 그 10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는 그들에게 말했다 누구나 이 말을 듣는 자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말이 계속된다 "예수는 말씀하셨다 찾는자는 끝까지 찾아야한다 그리고 발견했을 때 그는 놀랄것이다 그는 놀라서 나라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얻은후에 휴식할 것이다

이러한 말의 몇 가지는 초기 기독교의 저자들에 의해서 개별적으로 인용되어 그들의 시대네 유포되어 있는 여러가지 서적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모든 말과함께 100개 정도의 말이 [토마스복음서] 라는 제목이 붙은 채 코프토 사본으로써 확인되었다.

이것은 다음에 인용한 서문과 나라에 대한 말로 시작된다
이 코프토어 문서는 1945년경 이집트 나그 하마드(혹소르에서 약 북쪽으로 60마일)부근에서 다행이도 우연히 발견된13권의 가죽으로 장정한 파피루스 사본에 포함되어 있는 49개의 문서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코프토 문서는 어느 그노시스적 공동체의 서고에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은 희랍어의 원문에서 번역된 것이다

제 4세기의 사본인 코프토어의 [토마스 복음서]는 희랍어 본문에서 번역되어 있다 그 희랍어 본문은 3개의 옥시린코스 파피루스1(645,655)에 속해 있는 희랍어 본문과 매우 유사하지만 똑같ㅇ은 것은 아니다 이 희랍어 본문의 집대성이 이루어진 장소는 시리아아고 하는 증거가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집트에서 전해지는 사이에 그노시스적 색체를 띄게 된것이다

로마의 교부(敎父) 히토리누스(3세기초)에 의하면 나하슈라고 불리우는 그노시스 그룹이 [토마스 복음서]라는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그것은 거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책일것이다
1959년에 처음으로 출간된 코프토어의 역 은 사실상 완한전한 것으로 다음114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살아있는 부이신 예수가 말씀하시고 토마스가 기록한 비밀의 말이다
<살아계신 분 예수>는 아마 <항상 살아계신 예수>를 의미한다
비교적인 가르침 또는 그노시스를 제시하는 것은 그노시스적인 여러 복음서의 일반적 형식이다 그 비의적 가르침또는 그노시스는 예수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소생된 후 그 선택된 제자들에게 나타나닜는 동안에 그들에게 준 것으로써 그러한 복음서 속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토마스복음서]안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많은 말도 실제로는 같은 종류의 것이다 아마 편집자가 비빌로 간주한것은 언어 자체가 아니고 [토마스복음서]를 근원으로 삼은 한 그룹에 있어서의 그 말에 대한 해석이었다 대루모,유다,토마스,라는 3중의 이름으로 말할것 같으면 대루모는 쌍둥이를 의미하는 희랍어로 요한 복음서에서는 토마스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 토마스는 쌍둥이를 의미하는 아람어(toma)이다 시리아의 기독교 전승에서는 그는 12제자에 속해 있었다 그는 <이스카리아우데가 아닌 유다>와 동일시 된다 오래된 시리아어 여러 복음서에 있어서는 요한 복음서 14:22절의 질문은 유다 토마스가 주로 한 것이라고 한다

ㅡ<본문 의 말씀 1 >

그리고 그는 말하였다 "누구나 이 말의 해석을 발견하는 자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말의 표면적 의미가 아니고 말의 보다 깊은 해석을 전수받은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나타내 주는 소문의 인상은 이것으로 확실해진다 이말은 요한복음서 8:51과 닮아있다 예수는 거기서 "누구나 나의 말을 지킨다면 그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언명(言明)은 그의 질문자들에 의해서 취금되며 (누구나 나의 말을 지킨다면 그 사람은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는 형식으로 되풀이 되고 있다(52절).그러나 "나의 말을 지킨다"는 말은 근본적으로 "나의 계율을 지킨다"를 의미하며 <그 해석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ㅡ 제 4복음서에 있어서의 의도는 본질적으로 윤리적이며 한편 [토마스 복음서]레 있어서의 의도는 주로 지적이다
ㅡ<말씀 ㅡ2 >ㅡ

예수는 말씀하셨다."찾는자는 찾아낼 때까지 찾아야 할것이다 찾았을때 그는 당황할 것이다 당황할때 그는 놀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천지 만물을 지배 하게 될것이다."

코프토어의 표현으로는 이미 번역을 재현한 옥시린코스 파피루스645의 2의 희람어 표현과는 좀 다르다 알렉산드리아의 크리멘스는 헤브르인 복음서에서도 실제로 같은 말을 인용하고 있다.

ㅡ<말씀 3>ㅡ

예수는 말씀 하셨다 "(A)너희들을 현혹하는 자들이 오나라 '천국은 하늘에 있다'라고 너희들에게 말한다면 하늘의 새가 너희들 보다 먼져 거기에 갈것이다 그들이 그것은 바다에 있다고 말한다면 불고기가 너희들보다 먼져 천국에 갈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너희드,ㄹ 마음속에 있다 그리고 밖에도 있다 그러나 그 나라는 너희들 마음속에 있다 그리고 밖에도 있다 "(B)"너희들이 자기 자신을 안다면 알게될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아버지릐 자식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자기자신을 모른다면 너희들은 빈곤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 자신이 빈곤한것이다,"

이것은 누가복음서 17:21의 확장인 것처럼 느껴진다
"신의 나라는 보이는 징조를 가지고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또 사람들은 '보아라 거기에있다!'또는 '저기에 있다!'라고 말하지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아라 신의 나라는 너희들(또는 노희들 내부에)있기 때문이다.'그러나 [토마스복음서]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으로써 <신>을 사용하는것을 피하고 있다 (말씀100의 주를 참고).나라는 여기서는 매외에 존재하는 것에 관한 참된 지식에 있다 '오! 보이지않는 세계여! 우리들은 그대를본다'로 시작한다.프랑시스 돔손의 시 신의나라는 옥시린코스 파피루스 654의 3에 유래하는 이러한 언어의 희랍어 본문에 기반을 두고있다

ㅡ< 말씀 4 >ㅡ

예수는 말씀 하셨다 "해는 넘치고 노인은 생명의 장소에 있어서 생후7일째된 어린아이에게 묻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살게 될것이다 수많은 최초의 자는 최후가 되고 그리고 그들은 단독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의 요점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어린애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존성서의 말과 유사하다 "누구나 어린애처럼 신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거기에 들어갈 수가 없다."(마가복음10:15)
"수많은 최초의 자는 최후가 될것이다."라는 말 뒤에 희랍어 원문(옥시린코스 파피루스 654의4)에응 "그리고 마지막 자는 최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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