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영생교 관련 추적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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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영생교 관련 추적60분

가로수 4 6,699 2011.06.02 23:01
 다음은 추척60분게시판에 올라온 영생교실종자대책협의회에서 올린 검찰 수사기록입니다

(수사개요)

수원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이경재)는 1984년에서 1992년경까지 사이
사이비종교인 영생교와 관련하여 실종된 10명의 피해자들이 그 교주에
의하여 살해된 사건을 밝혀내고 피해자들을 살해하도록 교사한 영생교
교주 조희성과 교주의 지시로 그 살해에 가담한 전 영생교 간부 김진태
등 4명을 검거하였음.

그에 따라 혐의가 드러난 조희성 등 4명을 살인교사 등 혐의로 구속기
소 하였으며 달아난 나머지 공범 라경옥등 2명을 수배하였음.

현재까지 살해된 피해자들 중 2명의 사체(유골)를 발굴하였고 현재
동일성 여부에 대하여 DNA감정이 진행중에 있음(DNA감정결과 확인됨)

(피의자의 인적사항)

조희성 (남 72세 영생교교주) 구속기소
김진태 (남 66세 전 영생교승사) 구속기소
나경옥 (남 61세 전 영생교승사) 미체포(지명수배)
정영숙 (여 48세 전 영생교신도) 미체포(지명수배)
조성구 (남 54세 전 영생교승사) 구속기소
정광조 (남 44세 전 영생교신도)구속기소
황현수 (남 65세 전 영생교승사)구속기소

(영생교의 실태)

1.영생교의 유래

1931년 김포에서 출생한 교주 조희성은 군 제대후 대서소 사무원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등으로 일하다가 1971년경 서울에서 한국인조목
재라는 회사를 운영하였으나 부도를 내었고 이후 1976년 서울에서
공유물산이라는 회사를 운영하였으나 다시 도산하여 그 과정에서
부정수표단속법위반죄로 실형을 복역하기도함

회산도산이후 도피생활을 하던중 1978.8경 당신 박태선으로 부터
독립하여 별개의 교주처럼 활동하던 홍업비의 수하로 들어가 동인이
운영하던 종교장소인 소위 밀실에서 2년간 생활

그곳에서 유사종교의 운영방법 등을 터득한후 1981년경부터 홍업비로
부터 독립하여 부천시 역곡동에 교회을 내고 젊은시절 박태선 장로교에
입교하여 전도사 생활을 한 경력을 이용하여 자신을 박태선의 후계자라
자칭하면서 (주로 박태선 전도관 출신의)신도들을 모집하기 시작

2.영생교의 교리 등

교주 조희성은 영혼과 육체가 죽거나 늙지 않는 영생의 비법을 알게되었다고 하면서 자신의 몸에 이슬성신이라고 하는 것이 내려 그곳에서나오는 살마광선으로 마귀를 제거할수 있다고 주장

예수나 석가는 모두 마귀이며 자신만이 진정한 하나님이라는것

자신이 풍운의 조화나 태풍의 진로 공산당의 몰락 대통령의 당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 사회현상을 좌우할수있는 전지전능의 구세주임을행세

3.각종 범죄행위의 자행

신도들로 부터 온갖 명목을 붙여 그 재산들을 헌금조로 교부받았으며 심지어는 신도부부를 이혼토록 하여 그 일방이 받은 위자료를 헌금으로 받아간 사례도 있음

설립초기부터 삼천년성 이라는 가게를 열고 신도들에게 물건들을 고가에 강매하였으며 1988년경부터는 삼일실업(이후 근화실업으로 현재해동산업으로 변경)이라는 봉제공장을 세우고 신도들을 고용 월 3만원정도만 지급하고 매일 17시간 이상 근로케 하는 등 현재까지도 엄청난노동력을 착취

1989년경 영생교 신도이던 신** 경북대 교수가 영생교를 탈퇴하려하자 그 수하들을 시켜 동인을 납치한 것을 비롯 조금이라도 교주의 뜻에 반하거나 조직에 반하는 태도를 보일경우 수시로 폭행협박 감금을 일삼아 왔던봐 결국 살인에 까지 이른 것임...

(주요 살해사건 내역)

1.피해자 김재규(1984.1.경)
*가담자:김진태
*1983년경부터 영생교에서 분리한 삼천년성교(교주 이현석)가계속하여 영생교 신도들을 포섭하여 빼내어 가자 이에 대하여 극도의 증오감을 갖던중 삼천년성교의 전도대원인 피해자 김재규가 영생교 신도 들에게 접근하다 발각되자 3개월 이상 감금하였다가 결국 살해

2.피해자 신운철(1985.4.경)
*가담인:지성용.등...
*신운철은 영생교 신자였다가 위 삼천년성교 와 접촉하고 있던자로서 교주 조희성의 설교태이프 등 몇가지 자료들을 삼천년성교에 제공한 사실이 발각되자 동인을 납치하여 살해.
*당시 삼천년성교의 적극적인 신도 포섭책 때문에 영생교 로서는 극도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던 시점이었으며 위피해자가 전한 자료들을 기초로 영생교에 대한 공격수단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크게 분개하였던 것으로 확인됨.

3.피해자 안경렬(1987.2.경)
*가담인:지성룡.라경옥.김진태.
*피해자 안경렬은 밀실 생활당시 조희성과 함께 기거하면서 오히려
조희성에게 교리등을 설파한자로 처음 행동을 같이 했던 조희성 으
로 부터 독립하여 따로이 예배집회를 가지며 영생교를 비판하자 영
생교 창설이전 자신의 사생활 등 에대하여 거의 유일하게 알고 있
는 동인이 자신의 신격화에 장에가 된다고 판단 결국 살해.
*피해자 안경렬이 납치되는 과정에서 함께 납치된 피해자 김철순의
경우 영생교와 무관한 인물이었음에도 범행 은폐를 위하여 함께
살해.

4.피해인:지성용 (1990.여름경.)
*가담자: 라경옥.김진태.
*피해자는 원래 조희성의 경호역할을 하면서 위와 같이
조희성의 지시에 따라 수차례 살해사건을 주도하던 자인바 이후
조희성에게 각종 경비 명목으로 자주돈을 요구하면서부터 서로
감정이 악화되기시작 이미 너무많은 범죄사실에 연루된 피해자가
그사실을 폭로할 가능성에 대하여 위험을 느끼고 결국 살해.
*자신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였음에도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자
무참히 살해한예
.
5.피해자 김종웅 (1990.6.경)
*가담자:라경옥.김진태.조성구.정연숙
*피해자 김종웅은 1989년경부터 영생교 신재단 건축공사 본부장직
을 담당하던자로 위 직책에서 해임되면서부터 조희성에 대한 강한
배신감으로 자주 술을 마신채 행패를 부리고 조희성을 비방하였을
뿐아니라 주변인 들에게 영생교에서의 탈퇴를 종용하는 등 조희성
에 반하는 행동을 하자 결국 살해.
*당시 김종웅은 상당한 재산가로 동인을 살해한후 열성신도이던
동인의 처를 통해 그재산을 헌금받을 의도도 있던 것으로 파악됨.

6.피해자 양해금 (1990.9.경)
*가담자: 라경옥.김진태.조성구.정연숙
*피해자 양금해는 영생교 창설시부터 조희성과 함께 하였던 신도
1호로 불린 자로 1985년경부터 스스로 종파를 창설하고 영생교
신도를을 포섭 빼내어 가는 사태가 발생하자 여러차례 납치 협박
후 결국 살해

7.패해자 박차선 (1990.9.경)

*가담자:라경옥,김진태,조성구,정연숙

*피해자 박차선은 위 양해금의 추종자로 당시 조희성의 지시로 양해금
과 접촉한 영생도 신도들을 집단 감금하였을시 함께 감금되었다가
가족들이 신고로 경찰들이 피해자의 소재를 추적하자 사건전말을
은폐하기 위해 결국 살해

8.패해자 이영구 (1990.11경)

*가담자:라경옥,김진태,정연숙

*피해자 이영구는 영생교 승리제단 총무과에 근무하면서 주로 회계 등
업무에 종사하던 자로 재정적인 문제와 관련된 내부비리에 자주 접하면서 조희성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시작 가족들과 함께 영생교를 탈퇴
하고 조희성 등을 비난하는 활동을 하자 비리사실의 발각을 막기
위해 살해

9.피해자 전영광(1992.2경)

*가담자:라경옥,김진태,정연숙

*피해자 전영광은 1990년경부터 영생교 홍보신문인 승리신문의 편집국
장으로 있던 자로 당시 영생교에 판매하던 게르마늄도자기의 대리점을
개설하였다가 조희성의 비협조로 큰 소해를 보면서 반감을 갖기시작
직책상 많은 비리내용의 제보를 접하게 되자 이후 조희성을 반대하는
활동을 하던중 살해당함

*전영광의 경우 당시 종교문제연구소장이던 탁명환과 협조하면서
영생교 비난 전단을 뿌리고 피해사례를 수집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조희성에 반대하는 활동을 한바 있음

(사건의 특징)

1범행동기상의 특징

*영생교 자체가 박태선의 전도관이나 홍업비의 밀실 등을 모방하여
출발한 후 그곳 신도들을 끌어모은 것에 불과하므로 영생교 내부에서는
늘 이런한 조희성의 방법을 다시 모방하여 새로운 종파를 창설하고 내부
신도들을 빼내어 갈 위험이 상존하고 있었음

*삼천년성교의 이현석이나 양해금이 그 대표적이라 할수 있으며 초기
에 벌어졌던 살인사건들은 이러한 분파 활동과 관련된 조직의 붕괴를
막고자 하는 자구책적인 성격이 있었음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어느정동 영생교의 기반이 구축된 이후에는
초창기 조희성을 협조한 세력들이 이미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변하여
이를 제거할 필요성이 생겼던바 지성룡에 대한 살인이 그 대표적임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 이전까지 벌어졌던 수많은 납치 감금 폭행
살해사건들이 아무런 처벌도 없이 모두 암매장 처리 되었다는데 자신감
을 갖고 더욱 조희성 자신의 신격화에 몰두하면서 별다른 죄의식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무자비한 정신상태에 이르렀던것으로 판단되며
이영구 전영광 등에 대한 살인이 그 대표적임

2.범행 방법상의 특징

*철저하게 자신의 신복에게 지시하여 범행을 총지휘토록 하였으며(초기
에는 지성룡 이후에는 라경옥이 그 역활을 담당)범행가담자도 극히 제한적으로 활용하여 (약10회에 이르는 살인사건중 김진태 조성구 정연숙
등 가담자가 소수였음)

*범행을 교사할 시에는 주저하고있던 피의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하여 **는 대마귀다 **는 누구와 붙어먹은 나쁜넘 등으로 살해대상자에 대하여 증오심을 갖도록 세뇌

*때문에 피의자 김진태의 경우 검거직후 까지도 피해자들에 대하여
외곡된 인식을 하고 있었음

*범행장소는 거의 일정하다 주로 피의자들이 기거하던 외진 지하방(김
재규 지성룡 김종웅등)이거나 야산에 주차된 차량안 (박차선 이영구등)
으로 현장검증시 확인한 결과 비명소리가 나도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음습하고 밀폐된 장소들 이었음

*범행방법은 주로 준비된 노끈으로 목을 조여 살해하는 방법이 사용되었으나 일부의 경우에는 망치로 머리를 구타하고 그래도 피해자가 사망
하지 않자 다시 목을 조여 살해하는 잔인한 사례들도 있었음(지성룡,김종웅등)
3.사체의 암매장

*범행후에는 공통적으로 반드신 사체를 암매장 하였음

*살해후 사체는 주로 대형 플라스틱통에 넣어 운반한후 야산에 구덩이를 파고 그안에 묻어 처리하였으며 항상 피해자의 의류를 비롯한 모든
유류품은 따로이 소각하여 피해자의 신원이 파악될수 있는 단서를
사전에 제거하는 치밀한 형태를 보여줌

*암매장 장소는 주로 범행후 피의자들끼리 상의하여 결정하였으나
일부는 범행이전 미리 구덩이까지 파놓고 준비를 한 사례도 있었음(양해금 박차선의 경우)

4.범행 가담자들에 대한 은닉

*살해에 가담한 피의자들에 대하여는 전국적인 영생교 조직을 총 동원하여 교주 조희성의 지시아래 조직적인 은닉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됨

*피의자 김진태의 경우 1989년경부터 도피생활을 시작하여 부산 대구 등지로 이동하면서 그곳 영생교 조직을 통해 매월 생활비를 지급받았던
것으로 드러 났으며 현재 도피중인 라경옥등도 같은 방법으로 은닉되어
온것으로 파악됨

*그러나 이들의 도피생활은 최저생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월20-30만원 정도 지급)비참한 실정 이었으며 범행후에도 호의회식하였던 피의자 조희성과 비교하면 극단적인 대비를 이름

*이러한 것이 결국 김지태 정광조가 조희성을 협박하는 내용의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하는 원인이 됨

(수사경위)

1.수사의 진행

*2003년 7월경 위와같이 김진태와 정광조가 제작한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하면서 부터 내사 개시

*1992년에서 1995년 사이 서울지검강력부에서 수사한 영생교관련 수사
기록들과 유족들이 제기 하였던 진정사건기록들을 검토한 결과 위 비디오 내에서 김진태가 자술 하는 내용들과 대부분 부합함을 확인하고 동인의 진술내용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

*8월13일 피의자 김진태와 정광조를 검거하였을 당시 처음에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였으나 범행을 자백한 이후부터는 적극적으로 수사에협조

*이들은 모두 이미 영생교측으로부터의 신변위협을 느끼고 주거지를
자주 이동하기까지 하였으며 심지어 정광조의 경우 검거당시 영생교의
행동대원이 아닌 검찰청 수사관임을 알고 오히려 안도할 정도였음

*피의자 조희성의 경우 항상 청년신도 4-5명을 대동하고 활동하였으므로 검거방법을 놓고 고심하던중 동인이 부산으로 이동하기 위해 항공편을 예약 하였다는 정보를 입수 출국장 내에서는 다른 경홍요원이 없다는 점을 이용 검거 하였음

*조희성과 정광조 김진태 및 일부 유족들의 대질조사들을 마쳤으며
9월1일 조희성을 비롯한 피의자 4명을 살인교사등 혐으로 최종기소

(오늘도 실종자 및 피해자 가족들은 진실을 위해서 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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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그이름 2011.06.03 16:10

사건의 핵심...

님이 앞에서 살해해서 암매장했다는 것은 모두 조작된 것이었습니다...(아래 참고)
*1차 사건이 헌금사기로 7년동안 옥중살이했고..
*2차 사건이 정광조 김진태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1심에서 사형으로 판결되었으나 2차에서 무죄로 판결받은 것입니다..


언론과 검찰이 합세하여 벌인 계산된 해프닝, <조작된 유골발굴>

 1996년 12월 12일 한국의 전 일간지와 방송이 일제히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 승리제단(이하 본제단)>을 <사이비 이단의 집단>, <살인 및 광란의 집단>이라고 크게 보도하였다. 국내 굴지의 D지는 1면 거의 전면을 본제단 사건(실은 사건이라 말할 것도 아니다)으로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서 7개 면에 박스기사 등으로 비중을 두어 나누어 실었다.

조희성님은 1994년 1월 11일 체포되셔서 재판을 받으시고 옥고를 치르고 계셨다. 그런 와중에 또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들의 오보(誤報)에 오도(誤導)된 국민들은 조희성님과 본제단을 욕하고 저주하며 침을 뱉았다. 도대체 영생교단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행하는지도 전혀 모르면서 말이다.

이미 옥고를 치르고 계셨던 때에 다시 검찰이 얼토당토 않는 보도자료를 내고 유골발굴 쇼를 벌인 데는 저의가 있었다. 조희성님께서 형을 마치고 출소하실 때가 되자 검찰은 다시 죄를 씌워 계속 잡아두기로 한 것이었다. 어떻게든 출소를 막아서 인류의 구세주이신 조희성님을 옥사하게 하려는 계산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똑같은 죄명으로 두 번 재판 받는 전대미문의, 한국법조역사상 영원한 오욕의 역사가 될 대 사건을 전개한 것이었다.

                                                  

검찰로써는 조희성님을 꼭 살인자로 몰아야만 했다.

헌금횡령 따위는 그들에겐 시시한 죄명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며 종교적 증오심으로 꽉 찬 검찰이 1천만 기독교인들의
묵시적인 지지를 받고, 김영삼 대통령과 같은 교회에 나가면서 그의 특별지시조차 받았으니, 비뚤어진 영웅심과 그릇된 사명감으로 가슴이 벅찼을 것이다.

그는 매스컴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막강한 검찰력으로 매스컴을 동원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계산대로 되어 12월 12일 본제단은 전국의 매스컴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맞았던 것이다.

나중 오보를 했음을 시인하고 2번의 정정보도를 해준 D지의 사회부장이 들려준 바에 의하면 이미 교주가 구속된 상태라서 언론이 새삼 보도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우니 새로운 다른 사건과 함께 엮는 것이 유리하다 생각하여 6개월 전부터
수사하고 있었던 아가동산사건을 영생교단과 함께 터트려서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검찰 측에서 트릭을 썼다는 것이었다.

격암유록은 ‘正道令 出現하니 是是非非紛紛’이라고 했다. 진짜니 가짜니 하고 온 세상이 어지러울 정도로 시비가 붙을
것을 예언하였던 바 1994년 개띠 해에 개같은 세상을 뒤집기 위하여 옥고를 치르게 되심 또한 적었다.

12.12 오보가 있은 후 12.12사태의 주역들이 모조리 옥에 붙들려 가기 시작하였다. 별의 이름을 가지신 정도령 조희성님께서 옥고를 치르시는 마당에 12.12의 별(장성)들이 옥고를 치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늘의 순행이치는 이토록
치밀하여 한치의 오차도 없었던 것이다.*

가로수 2011.06.03 18:48

사건의 핵심?
1심에서 살인교사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2심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살인교사 부분 무죄를 받고, 범인은익죄로 2년 복역 중 사망~

수많은 범죄 중 증거불충분 죄 하나 무죄 받았다고 모든 죄가 없어지나요?

위키백과에 나온 내용을 붙여 드리죠.
영생교의 설립목적

영생교를 설립한 조희성은 인류의 원수인 사망권세 잡은 마귀를 꺽어 이긴 후 어떠한 종류의 마귀라도 박멸소탕할 수 있는 권능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마귀를 죽여 없애는 무기를 이슬성신(감로), 이슬성신(감로)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존재를 유불선 제경전에서 구세주(성경), 생미륵불(불경), 정도령(격암유록을 비롯한 민족 예언서)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니 조희성은 성경과 불경, 격암유록 등의 예언서에 기록된 구세주(정도령, 생미륵불)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희성은 모든 종교에서 기다리던 구세주(정도령, 생미륵불)이며 유불선 경전의 목적이 영생에 있는 바 자신이 터득하게 된 '사람 몸이 죽지 않는 법(영생학)'을 인생들에게 설하여 누구든지 쉽게 배워 인류가 모두 영생의 존재(하나님, 부처님, 신)가 되는 지상천국의 건설을 목적으로 설립된 종교단체이다.

[편집] 영생교의 범죄행각

[편집] 납치폭행

영생교 승리제단은 1989년 5월 9일에 한 때 1988년 10월 30일 승리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을 정도로 열성신도였던 신진규 경북대 공법학과 교수가 영생교를 그만두자 20일동안 감금, 폭행하였다[1][2].

[편집] 경관 감금 및 폭행

1992년 9월 28일에 경찰관 3명은 영생교의 종말론 유포와 헌금부정사건을 수사하려하였다. 그러나 영생교 신도들은 교주를 연행하려던 경찰관 3명을 폭행하고 그 중 1명은 3시간 여만에 풀어주었던 사실이 드러났다[3][4].

[편집] 살인 및 유골 발굴

[편집] 사건이 알려진 경위

1994년 1월 12일에 교주 조희성이 서울지검에 사기, 횡령, 경관 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5] 13일에는 국제종교문제연구소와 피해자 가족들은 영생교에 의해 납치 또는 실종된 사람이 15명에 달한다며 수사를 요구하였다. [6] 이에 따라 검찰은 수사를 진행하였으며 같은 해 2월 20일에는 영생교의 행동대 3명을 구속하였다. 그리고 조희성과 이들 3명을 추궁하였다. [7]

[편집] 유골발굴

검찰은 1995년 3월 7일에 피의자의 진술대로 경기도 용인에서 1984년에 암매장되었던 소문종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굴하였다. [8]영생교의 암매장 사실이 사실로 확인되자 검찰은 수사를 확대하여 또다른 실종 신도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였다. 수사의 대상이 된 실종자들의 가족들도 언론에 인터뷰에 응하였다. [9]

[편집] 이탈신도들에 대한 보복

영생교의 배교자 처단조는 크게 지성룡파와 나경옥 파로 나뉘었는데, 지성룡파가 소문종 납치살해를 주도한뒤 나경옥파가 1990년에 지성룡 살해한 후 배교자 처단을 주도해왔다. [10] 검찰은 김규석이 소와 같은해에 교단 비리를 폭로하려다 납치되었고 11년째 행방이 묘연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11]

[편집] 검찰의 수사

검찰은 9일에 잠적했던 나경옥을 비롯한 배교자 처단조를 공개수사하기로하였다. [12] 뿐만 아니라 검찰은 동년(同年) 5월 16일에 용인에서 발굴된 유골이 부검결과 소문종 것임을 입증하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13] 또한 1996년 12월 11일에는 또다른 사이비종교 사건인 아가동산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서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영생교 밀실 정원에서는 유골이 발견되었다. 제보자는 유골이 1987년 6월에 납치된 안경렬이나 함께 납치된 김철순 중 한 사람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4] 김철순은 영생교 신도가 아니었고, 조희성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안경렬이 납치된 사실을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납치, 살해당했다고 한다[15].

2003년 8월에는 영생교의 범죄행각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경기도 안성시의 금광저수지 근처 야산에서 1990년에 나경옥에게 살해된 지성룡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까지 발견되었다. [16] 뿐만 아니라 검찰은 17일에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1990년에 실종된 박차선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도 발굴하였다. [17] 18일에는 전북 완주군에서도 1990년에 실종된 양해금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굴하는 데 성공하였다. [18]

[편집] 중형 언도

결국 2004년 2월수원지방법원은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던 교주 조희성과 처단조 행동대장 나경옥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다른 처단조 간부인 김진태는 무기징역 조모, 정모는 각각 징역 15,12년 형이 선고되었다. [19] 그러나 교주 조희성과 간부들은 항소하였으며 원심과 달리 항소심에서 교주는 직접적으로 신도 살해를 지시하였는가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살인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나경옥의 도피를 방조한 것에 대해서만 2년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은 교주 조희성과는 대조적으로 처단조 간부 나경옥, 김진태, 조모, 정모에 대해서는 원심대로 판결하였다. [20] 이후 교주 조희성은 상고심 계류중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21] 한편 같은 해 9월에 나머지 간부들은 1심과 2심 그대로 나경옥은 사형, 김진태는 무기징역, 조 모와 정 모에게는 각각 징역 15, 12년형을 선고한 원심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22]

[편집] 착취

영생교는 '근화실업'이라는 기업을 세우고 신도 200명을 고용했다. 그러나 근화실업은 신도들을 착취하는 악덕기업이었다. 사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을 그러니까 사원들이 받아야 할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영생교의 활동자금으로 빼돌렸던 것이다. 1991년 8월부터 1994년 2월까지 원래 30~70만원씩 지급하기로 한 임금을 2~10만원만 지급하는 수법으로 총 15억원을 교단 자금으로 빼돌렸다. 서울지방검찰 특수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업무상 횡령)혐의로 1994년 3월 9일에 당시 총무였던 윤태수(1994년 당시 49)를 구속하고 교주 조씨에게도 같은 혐의를 적용하는 한편, 사장인 양시춘을 수배했다.[23]

[편집] 교주 우상화 교리

교주 조희성은 철저하게 자신을 신격화하는 교리를 내세웠는데, 스스로를 '生미륵불', '메시아', '정도령', '이긴 자'으로 불렀다. 또한 자신을 믿으면 불로불사하고 지구가 종말할 때 10배로 되돌려주겠다며 신도들의 금품을 수탈해왔다. 뿐만 아니라 배교자는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처단한다는 상당히 폭력적인 성격을 띠었다.[24] 또한 교주 자신은 갖가지 능력을 내세우기도 했다. 조씨가 주장했던 능력은 다음과 같다.

  • 자신은 이미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자신의 사진을 찍으면 이슬이 맺히고, 집회 의식 중이나 일상생활에서도 이슬이 내린다. 이를 이슬성신이라 한다.
  • 공산주의를 없앴다.
  • 여름에 내리는 장마를 없앴다.
  • 태풍을 막았다.
  • 대한민국1980년대부터 풍년이 들게 했다[25][26].

[편집] 각종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보도

[편집] PD 수첩보도

MBC PD수첩1994년 2월15일에 영생교 비리를 고발하였다.[27] 이 프로그램으로 PD수첩은 1995년 2월 21일에 프레스센터에서 제5회 한국언론학회 언론상 중 방송 부문을 수상했다.[28][29] 그러자 교주 조희성은 MBC에 손해배상 10억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1999년 7월 23일에 법원은 공익 차원의 보도인데다가 교주 조희성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판단되지 않는만큼 손해배상은 물론 반론보도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하였다.[30]

[편집] 추적 60분보도

KBS 추적 60분은 영생교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3차례씩 방송에 내보냈다.

[편집] 1994년 보도

1994년 3월 27일에 처음으로 영생교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하였다. 핵심 주제는 신앙촌과 천부교의 정체에 대한 내용이었으나, 천부교에서 독립한 신흥종교들의 실체도 다루면서 조희성이 천부교에서 독립하여 영생교를 창시하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천부교와 영생교의 관계를 보도했다[31].

[편집] 1995년 보도

소문종의 유골이 발견됨으로서 영생교의 배교자 살해 행각이 드러나자 1995년 3월 12일에 영생교의 내막을 폭로하였다[32].

[편집] 2003년보도

2003년에 영생교의 살인 행각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자 추적 60분은 또다시 2주 간에 걸쳐서 2부작으로 영생교의 정체를 보도했다. 첫 보도는 8월 16일에 보도하였으며[33][15], 방송이 보도되는 날에 영생교 신자들이 KBS본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34]. 같은 달 23일에는 교주 조희성의 교리를 빙자한 범죄행각 역시 폭로하였다[35].

[편집] 주석

  1. 동아일보. “敎授 被拉 폭행당해”, 1989년 5월 29일 작성.
  2. 영생교 승리제단 관련 현대종교 자료
  3. 동아일보. “'終末論'富川영생敎 搜査경관 감금구타 3시간만에 풀어줘”, 1992년 9월 29일 작성.
  4. 경향신문. “永生敎교주 연행방해 신도들 한때 警官 감금”, 1992년 9월 29일 작성.
  5. MBC. “신흥종교 영생교 교주 조희성씨 구속”, 1994년 1월 12일 작성.
  6. MBC. “영생교 피해자 가족, 영생교 승리제단 15명 납치 주장”, 1994년 1월 13일 작성.
  7. MBC. “검찰, 영생교 이탈신도 보복했다고 잠정 결론”, 1994년 2월 21일 작성.
  8. MBC. “영생교 이탈자 살해 암매장 의혹 사실로 확인”, 1995년 3월 7일 작성.
  9. MBC. “영생교 암매장 사실 확인됨에 따라 또다른 실종자 수사 확대”, 1995년 3월 8일 작성.
  10. MBC. “검찰, 영생교 이탈신도 실종사건 관련 수사 확대”, 1995년 3월 8일 작성.
  11. MBC. “암매장된 채 발견된 소문종 씨 이외에 납치된 사람 또 확인”, 1995년 3월 11일 작성.
  12. MBC. “검찰, 영생교 신도 실종사건 관련 배교자 처단조 공개수사”, 1995년 3월 11일 작성.
  13. MBC. “검찰, 영생교의 배교자 처단조 4명 구속 기소”, 1995년 5월 16일 작성.
  14. MBC. “경기도 부천시 영생교 밀실 정원에서 암매장 유골 발견돼”, 1996년 12월 11일 작성.
  15. 죽음의 영생교 - 1년간의 추적! , 신도살해 암매장 사건
  16. SBS. “영생교, 신도살해 암매장”, 2003년 8월 14일 작성.
  17. SBS. “영생교 신도추정 유골 한 점 추가 발견”, 2003년 8월 17일 작성.
  18. SBS. “전북 완주에도 영생교 신도 암매장”, 2003년 8월 18일 작성.
  19. 국민일보. “신도 살해지시 영생교주 사형선고”, 2004년 2월 2일 작성.
  20. 국민일보. “영생교주 2년선고…원심 사형판결 깨”, 2004년 5월 24일 작성.
  21. 뉴시스. “영생교 교주 조희성씨 사망”, 2004년 6월 19일 작성.
  22. 머니투데이. “'영생교 사건' 살인 주범 사형 확정”, 2004년 9월 8일 작성.
  23. 동아일보. “永生敎 신도에 15億 착취”, 1994년 3월 10일 작성.
  24. 경향신문. “永生敎란”, 1995년 3월 8일 작성.
  25. MBC. “조희성이 1981년 만든 영생교의 정체”, 1995년 3월 6일 작성.
  26. http://www.victor.or.kr/ 영생교 승리제단 공식 홈페이지
  27. 동아일보. “보도 교주 구속 영생교 정체 분석”, 1994년 2월 15일 작성.
  28. 동아일보. “'PD수첩' 언론학회 방송賞”, 1995년 2월 3일 작성.
  29. MBC. “PD수첩,언론상 방송부문 본상 수상”, 1995년 2월 21일 작성.
  30. MBC. “영생교, MBC상대 10억 손해배상 소송 패소”, 1999년 7월 23일 작성.
  31. 경향신문. “'신앙촌' 11년만에 전파”, 1994년 3월 27일 작성.
  32. 경향신문. “영생교 실체 파헤쳐”, 1995년 3월 12일 작성.
  33. KBS. “사건 끊이지 않는 영생교는 어떤 단체”, 2003년 8월 14일 작성.
  34. KBS. “영생교 신도 백여명 KBS 앞 시위”, 2003년 8월 17일 작성.
  35. 2부작 죽음의 영생교 - 제2편 20년의 추적! - 조교주와 영생불멸
그이름 2011.06.04 00:19

님 고맙습니다..이렇게 많은 자료들을 찾아주셔서...
그러나 핵심은 기독교가 승리제단을 없애려고 했던 근본적인 발단은 승리제단에서 예수를 마귀라고 치는 것입니다..그래서 이것이 사실로 들어나면 기독교가 망하기 때문에 승리제단은 예수교인들에게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죠...

그리고 모든 경전에 핵심은 '영생'입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경전은 휴지조각이 불과하죠..

요한복음 5장 39절 '너희가 성경을 상고하는 것은 그 안에 영생이 있음이라..
했고 불교에서 주장하는 핵심도 불생불멸...불로불사...열반, 해탈입니다...
결국 모든 종교의 핵심은 영생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대상은 그 주인공이 아니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나 영생을 자신있게 논하지 죄인은 영생을 논할 수 없습니다.

여름장마를 막는다. 태풍을 막는다....이런 말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인간은 감히 못하죠... 아니 상상도 못하는 말입니다...신이 아니라면...그래서 죽는 세상에서 안죽는다 하니까  일단 사람들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니까 거부반응이 생기기는 것이죠 ..

님도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님에게 한가지만 말씀을 드리죠...
결국 이세상에서 참스승을 찾는 증표는 감로이슬입니다...감로이슬을 받으면 죽지 않는다고 모든 경전은 말하고 있고 이것이 승리제단에서 오늘도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그것이 사람이 영생하게 하는 불로초라고 고서에 쓰여 있습니다..

4대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말도 하지 못하고 이것다 하고 장담하지 못한 그것이 승리제단에서 그대로 실천이 되고 있다는 것이죠... 사건에 진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제단에서 모든 경전에서 예언한 일들이 실천되고 있다는 겁니다..

udamhwa 2011.07.27 18:30
모든 종교의 핵심이 영생이라니요...??
열반, 해탈이 영생입니까??
ㅋㅋㅋ

조희성이 디졌습니다..
님도,
그만 꿈에서 깨어 나세요..
물론, 지금까지 개구라에 속아서 진실이라 믿고 허송세월 한 것이 억울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시는게
앞으로 보람되게 사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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