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마가복음편)|예술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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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마가복음편)|예술가 칼럼

가로수 0 4,400 2011.02.16 17:56
안티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마가복음편)|예술가 칼럼
예술가 | 조회 3 | 09.09.19 15:26 http://cafe.daum.net/clubanti/8eNh/9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 란 이 6가지 질문은 글이나 책을 읽고 분석할때 받듯이 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까요?
정립된 교리에 의해 단편적으로 성경을보고, 공부할뿐, 각 텍스트의 전체 설명을 왜 하지 않을까요?
이 의문에 대한 실마리는 아마 이글을 읽으시면, 짐작되리라 여겨집니다.
 
아래의 글 내용은 각 신학대학별로 조금씩 다르나, 주로 1학년~2학년 사이에 배우는 공관복음 개론중 "마가복음 서론"의 일부를
요약한것 입니다.
신학대학을 나온 목사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고, 배우고, 시험치고, 하지만, 일반신도들에게는 절대로 얘기안하는것중
극히 일부입니다.
혹시, 이글을 보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 환상속의 예수를 찾아 가실분은 없으리라 생각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사를
만나면,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라고 한마디 하실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1. 마가복음은 누가 썼을까?
 
  1)파피아스(Papias)의 증거
  
파피아스(약 60~130년 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소아시아의 히에라 폴리스의 주교였고, 일 설에 의하면 이 사람이
요한의 제자다. 베드로의 통역관이던 요한 마가가 로마에서 베드로가 설교하는것을 듣고 기록했다고 말한다.
이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마가복음의 내용은 베드로의 설교이다. 그것을 마가가 적었는데, 그러나 자기가 기억나는데로
충실히 적었으나, 꼭 순서대로 적은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고, 또 문체가 잘된 것은 아니다는 그런 말도 덧 붙었다.
 
그래서 파피아스 이래로 교회전통에서는 요한 마가가 이 복음서의 저자로 되어 있다.
 
  2) 비판주의 학자들의 견해
 
최근에 와서는 많은 비판적인 학자들은 마가의 저작설을 많이 회의한다.
그 이유는 주로 양식사가들이 이 복음서가 원래 독립적으로 떠돌아 다니는 전승들을 그냥 꿰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거는 마가복음을 자세히 보면 저자는 팔레스타인의 지리와 관습을 잘 아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 마가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유를 들어서 요한 마가의 저작설을 회의 한다.
그냥 귀찮으니까 요한 마가가 썻다고 치자.
 
 
 
2. 마가복음은 언제 썻을까?
 
(1) 내적 증거
 
이 복음서를 언제 썼느냐? 연대에 대해서 외적증거가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내적증거, 즉 마가복음의 내용을 살펴 보아서
혹 그 내용이 연대에 대한 어떠한 시사를 해 주느냐를 살펴봄으로 연대를 생각하게 된다.
 
 1) 가령 마가복음에 핍박에 대한 언급이 많다.(8:34, 9:31, 10:33ff, 45, 13:8, 10등) 예수가 핍박받음은 교회도 함께 핍박받은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핍박에 대한 언급이 많다.
 
 2) 또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에 대한 토론이 많다.(7:17-23, 26ff, 13:10) 그래서 이 두가지를 생각해서 - 핍박에 대한 언급이 많고,
또 이방선교의 주제를 다루는 것을 보면, 이런 문제들이 언제 심각하게 대두 되었느냐를 살핀다.
1C의 어느 시점에 이 문제들이 심각하게 대두 되었느냐면, AD60-70무렵에 심각하게 대두 되었다.
내용의 이런 점을 볼 때, 복음서가 이 무렵에 쓰여지지 않았나 하고 추정을 한다. 그래서 이 무렵의 문제들을 반영해서
이 문제들에 대해서 답을 하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나 하고 토론을 한다.
 
3) 또 하나는 13:2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것이 마가복음의 연대 잡은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이 진짜 예언이면, 마가복음이 70년대 이전에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짜 에언이면, 사건자체로 부터 만들어
낸 예언이다. 이것이 무슨 소리냐면, AD70년에 성전파괴가 일어났다.
그 이후에 교회가 마가복음을 쓰면서 이 예언을 가짜로 만들어 내어 가지고 예수의 입속에 넣어서 마치 성전파괴 사건전에
예수께서 이미 예언했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사건 자체로부터 만들어낸 예언이라 한다.
그래서 비판적인 학자들은 대개 이 사건자체로부터 만들어낸 예언으로 보고, 그렇다면 마가복음은 이미 성전파괴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러면 이것은 빨라도 70년대 이후에 써졌을 것으로 생각을 한다.
 
 
 
 
3. 마가복음은 어디에서 썻을까?
 
(1) 외적 증거
 
 어디에서 썼느냐?  물론 내부 증거로는 어디에서 썼다고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증거로는 파피아스의 말처럼 로마에서 썼다고 한다. 그런데 내부증거가 이 로마설을 많이 뒷받침한다.
 
 1) 가령 66-69년, 70년 그 무렵의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사건들 즉 로마전쟁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에 대한 어렴풋한
분위기 제시만 있지 그것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다.
만약에 이 마가복음서가 팔레스타인에서 쓰였다면 그 엄청난 사건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반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이렇게 어렴풋이 반영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팔레스타인 밖에서 썼다.
또 1C의 기독교 중심이 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이 하나의 중심지였고, 또 안디옥을 중심한 시리아가 하나의 중심지 였고,
그 다음에 그리스 반도 소아시아 지금의 그리스가 하나의 중심지였고, 터어키가 하나의 중심지 였고, 로마가 하나의 중심지 였다.
그런데 초대교회 문서들이 대개 팔레스타인이나 안디옥에서 많이 발생을 했다.
그러면 팔레스타인에서 마가복음이 왜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는가?
AD66-70년 사이에 그 엄청난 사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어렴풋한 분위기 전달만 있지 자세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거기에 있는 독자들에게 쓴 것이 아니다.
그러면 시리아 안디옥을 중심으로 하는 시리아에서 썼느냐?
그것도 아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이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반란을 일으켜 가지고 아주 엄청난 전쟁을 하게 되자,
시리아 지역에서도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엄청나게 많이 잡아 죽였다.
그런 것도 전혀 마가복음에 반영이 안되어 있다. 그래서 사리아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전승이 주장한대로 로마에서 쓰였을 것이라고 본다.
 
2) 또 막7장 3절4절 같은데 보면, 유대관습을 마가가 독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한다.
만약에 마가복음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을 위해서 쓰여진 복음이라면 그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
누구든지 그 관습을 다 안다.
마가가 그런 관습을 독자들을 위해서 일부러 설명하는 것을 보면 팔레스타인 밖에서 이방인들을 위해서 이 복음서를 쓴 것이
거의 분명하다. 또는 아람어로 된 표현들을 마가가 번역을 한다.
가령 14:36에 보면 '아빠'를 번역을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이방인들을 위해서 팔레스타인 밖에서 쓴 것 같다.
 
3) 그런데 마가복음에 라틴어들이 꽤 많다.
예컨데 4장21절에 modus, 5:9 legion, 6:27- spiculatore, 6:37- Denarius, 7:4-, 12:24- census, Qadrus등 이런 라틴어들이
괘 많이 나온다. 이런 것을 보아도 팔레스타인 밖, 라틴말을 쓰는 곳 즉 로마에서 쓰여졌다고 본다.
즉 AD69년 이후에 로마에서 네로의 핍박이 절정에 다다른 그 무렵에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요한 마가에 의해서 쓰였다.
 
 
 
4. 마가복음의 무엇을, 왜 썻을까?
 
그러면 마가가 자기 복음서를 쓸 때에, 어떠한 주된 사상을 근거로 해서 썼을 것인가?
어떤 사상을 중심으로 마가가 베드로의 설교를 편집해서 복음서를 썼을 것인가?
거기에 대한 의견(복음사가)이 여러가지가 있지만,가장 논리적인 견해를 보자.
 
 
(1) W. Wrede의 견해
 
비판적인 학자들 가운데 지금까지 강력하게 영향력있는 학설은 W. Wrede의 Messianic Secret 이론에 의한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이 메시야적 비밀이라는 원칙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라는 것이다.
W. Wrede는 원래 예수가 실제로는 메시야가 아니었다고 한다.
스스로 메시야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메시야라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또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메시야로서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교회가 예수가 부활했다는 확신가운데, 예수가 메시야라고 선포하게 되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했다.
실제로 메시야가 아니었던 예수를 메시야로 선포하게 되는데 있어서, 역사적인 현실과 신앙과의 괴리가 생겼다.
그래서 금방 유대인들과의 논쟁가운데 변증의 문제가 생겼다.
 예수가 메시야였으면 왜 당시의 메시야로 알려지지 않았느냐?
 예수가 메시야 였으면, 왜 구약과 유대교에서 이미 잘 예언된 그런 메시야의 특징을 나타내지 않았느냐?
그것에 대한 답으로 마가가 이 복음서를 썼다.
 
그러니까 이것이 하나의 소설이다.
그 내용은 메시야가 아니었던 예수를, 마가가 예수는 실제로 메시야 였다고 썼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메시야로 알려지지 않았느냐?
예수께서 그것을 비밀에 붙이도록 명령을 했기 때문에 그가 메시야로 안 알려졌다한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에 죽음과 부활함으로 그 비밀이 벗겨져서 예수가 메시야임이 판명이 되서 우리가 선포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실제로는 메시야가 아니었던 예수를 메시야로 나타내기 위해서 였다.
그래서 W. Wrede는 복음서라는 독특한 기독교적인 문학장르가 바로 마가의 이와같은 Messianic Secret라는 원칙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고, 마태와 누가와 요한은 마가를 그런 점에서 답습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W. Wrede가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관찰에서 그렇다.
 
첫째로 마가복음이나 마태복음, 누가복음에 기술되어 있는 예수의 상은 당시 유대교에서 기대했던 메시야 상과 다르다.
당시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은 다양했다.
그러나 주종을 이룬 메시야 사상은 다윗의 아들로 다윗왕조를 재건하고 모든 이방 민족들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에게 태평성대를
가져다 줄 전사, 전쟁의 영웅, 왕, 이런 정치적 메시야이다.
복음서에 기술된 예수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예수가 메시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복음서에 기술된 예수의 행적을 보고 유대인들이 메시야로 알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구약에서 전승받은 메시야 사상과 예수의 모습이 다르므로 그런 이유로 예수가 메시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마가복음에 강조된 것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정체를 예수가 혼자 비밀로 간직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밀이 가끔 탄로가 난다.
예수가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들이 예수의 메시야됨을 안다.
하나님의 아들됨을 귀신들이 부르짖으면, 조용히 하라, 남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다.
또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예수의 메시야 정체가 그의 제자들에게 탄로났다.
그때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자기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널리 소문내지 못하게 한다.
또 예수를 통해서 치료받은 사람들이 그의 메시야 됨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의 메시야 됨을 알면 그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만 비밀리에 가르친 것이 있다.
특히 비유를 말해 놓고 군중은 못 알아듣는 것을 그의 제자들에게만 따로 그 의미를 가르친다.
그래서 예수가 그의 정체를 자꾸 숨기는 것으로 되어있다.
 
W. Wrede는 바로 마가의 이런 의도를 폭로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예수의 모습이 아니고 마가가 지어낸 technic이라고 한다.
실제로 메시야가 아니었던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교회의 신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지어낸 technic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W. Wrede에 의하면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었다.
그런데 교회는 그의 부활을 경험한 후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했다.
그래서 역사적인 실제와 믿음과 괴리가 생겼다.
이 괴리에 대한 답으로 마가가 메시야적 비밀이라는 소설적 원리를 창안해서 이런 식으로 단편적으로 전승되어 오는 예수의
이야기를 꾸며냈다는 것이다.
 
마가의 주장을 살펴보자.
예수는 진짜 메시야였다.
그래서 그의 메시야 됨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보통 인간보다 인지능력이 강한 영적존재들은 그의 메시야됨을 인정했고, 예수로부터 그의 메시야적 능력을 체험한
즉 치유받은 자들도 그의 메시야 됨을 인정했고, 예수와 함께 오래같이 살면서 그로부터 배움을 받고 그를 아주 가깝게
알게 된 제자들도 그의 메시야 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메시야 됨에 대한 문제로 재판받고 십자가에 죽었다.
그러니까 보통 인간보다 인지 능력이 많다거나 또는 예수로 부터 능력을 체험을 했다거나 또는 예수와 가까이 지낸 사람은
 다 예수가 메시야 임을 알았다.
 
그러면 왜 널리 메시야 사상이 안 알려졌느냐?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너무 소문내지 말고 비밀을 지키라고 해서 그런 것이다.
이것이 마가복음에서 마가가 하는 주장이다.
 
마가복음이 왜 쓰였냐면, 마가가 이 비밀이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2) W. Wrede의 견해에 대한 반론
 
복음사가들의 반론은 매우 간단하다.
 만약에 W. Wrede식으로 역사적인 예수가 메시야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교회가 예수를 메시야라고 선포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 상식적으로 예수가 메시야다 라는것은 주장하고픈 교회에서 설명해야 하는것이 아닌가? 또한, 교회에서 무조건 예수가
메시야다하면 아닌메시야가 메시야가 되는가? 그냥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한테 어쩌라고, 해답까지 줘야 되나? 이런게 반론이 되나?>
 
그런데 최근에 더 예리한 연구에 의하면, 이 부활자체는 예수가 메시야라는 신앙고백을 낳을 수 있는 힘이 없다.
왜 그러느냐면 구약과 유대교의 메시야는 부활한다는 전제가 없다.
메시야는 죽고 부활한다는 전제가 구약과 유대교에는 없다. 메시야가 죽고 부활할 수가 없다.
구약과 유대교에 의하면 메시야는 하나님의 축복 덩어리이다.
그런데 어떻게 메시야가 죽을 수가 있나?
여러분들 사53장(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에 메시야가 죽는다는 소리가 있지 않느냐 할지 모르지만,
사53장은 구약내에서도 아주 특별한 장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 유대교가 사53장을 어떻게 이해했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구약의 아람어판 - 탈굼 - 사53장을 보면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주의 종을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을 한다.
다만 거기에 주의 종은 고난 받는 자가 아니고 승승 장구하여 이방민족들을 정복하는 다윗과 같은 전사, 왕으로 나와 있다.
사53장의 고난은 원래는 이방인들이 받는거로 되있는데, 메시아가 받는것처럼 뒤집어 씌어논 것이다.
그래서 사53의 정신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주의 종은 고난받고 백성을 위해서 대속의 죽음을 하는 자가 아니고, 승승장구하여 이방들을 다 정복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모세 율법을 잘 가르치는 메시야이다.
사53에 있는 고난은 이방인들이 다 받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것이 유대교의 대표적인 메시야 사상이다.
메시야가 고난 받을 수 없으므로 메시야가 부활한다는 사상은 없다.
유대교에 이런 전제가 없다.
그렇다면 예수가 부활했다는 그 한가지 이유로 예수가 메시야라는 신앙고백은 나올 수 없다.
가령 구약과 유대교에 메시야는 죽고 부활한다는 사상에 의해서 예수가 죽고 부활했다 그랬다면, 초대교인들이 예수가
메시야라는 신앙고백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없으므로 예수가 죽고 부활했다는 것이 무슨 소리인가?
해석할 카테고리(category)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여기서 부터 예수가 메시야라는 주장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3) 마가복음의 구성및 내용
 
마가복음 긴 서문이 달린 예수의 수난사이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수난사가 중심이다.
8:27-31까지를 분수령으로 해서 그 이후15장 끝까지가 예수 수난사이다.
그 앞에는 어떻게 예수가 수난을 받게 되었는가하는 서문에 불과하다.
여기서 두 논쟁 2장에서 3장까지의 논쟁, 7장이후의 논쟁을 통해서 벌써 여기서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여기 서문에서도
예수를 죽일려고 작정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 강조되는 것이 예수의 죽음이다. 8:31, 9:9-12, 9:31, 10:33, 10:45, 14:17등 계속해서 예수는 자기의 임박한
죽음에 대해서 예고한다.
 
 
 
 
5. 마가복음은 어떻게 쓰여 있을까?
 
M. Hengel에 따르면, 고대 헬라의 비극 드라마의 형태에 따라 썼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가복음이 기술적으로 엄청나게 훌륭한 문학적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M. Hengel 교수의 ' Studies in the Gospel of Mark ' 을 읽어보라.
이 사람에 의하면 마가복음은 5막으로 되어 있다.
 
이분의 주장을 듣고 다시 마가복음을 읽어보면, 왜 예수이야기가 사람들한테 감동적인지 충분히 이해된다.
원래 첨부터 판타지 소설로써 쓰였기 때문에 앞뒤가 딱딱맞고, 구성 및 전개가 놀라우리 만치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 될것이다. 즉, 교회에서 발표회 같은것을 할때, 상세한 대본없이 그냥 성경에
있는 그대로 예수 이야기 연극을 해도, 전혀 무리없이 잘 전달 되는것이다.)
 
 
Ⅰ . 구원사적인 Prologue(1:1-13) : 서언 세례요한의 구원사적인 역할이 나오고 예수의 세례와 시험이 나온다.
 
 
Ⅱ. 제 1막(1:14-3:6)
 
갈릴리에서 예수의 활동 이것은 고대 헬라 고전 드라마의 proposi-tion에 해당된다.
시작이다. 이것이 1:14,15절의 예수의 메시지의 요약, 소위 program 천명으로 부터 시작한다.
예수의 메시지를 요약하면서 예수의 사역의 program의 천명으로 시작한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련의 논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 논쟁들의 극적인 클라이막스가 3장6절에서 헤롯당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일려고
하는 것으로 제1막이 마친다.
 
 
 
Ⅲ. 제2막(3:7-8:26)
 
이것은 예수의 활동의 중심인데 많은 그 무리들이 모여든다(3:7ff 에). 12제자를 임명한다. 또 많은 이적들을 행한다.
또 많은 비유들로 가르친다(4장). 그런데 이 비유들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비유들을 불순종하는, 심장으로 사람들이 받기 때문에(?) 도리어 사람들의 심장이 완악해지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래서 6:1-6까지 예수가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는다.
이것이 하나의 turning point가 된다.
그래서 예수가 무리들한테 배척을 받고, 종교지도자들한테 배척을 받고, 심지어 그의 가족들에게도 배척을 받고, 심지어
그의 제자들도 이해를 못한다.
그래서 제2막의 climax는 예수가 그의 제자들도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심장의 완악해짐을 꾸짖는 것으로 도달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활동을 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음이 제 2막으로 끝난다.
 
 
Ⅳ. 제 3막(8:27-10:52)
 
이것은 고전극에서 peripeteia(사태의 급변)에 해당된다.
그래서 예수의 정체가 드디어 인정되는 그런 부분이다.
나는 고전 문학의 비극을 잘모르므로 M. Hengel만큼 실감나게 극에 비유해서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예수의 비밀이 드디어 노출이 되고 예수가 어떤 분인가하는 인식이 일어난다.
 그러나 거기에 벌써 예수의 진정한 메시야 됨에 대한 오해가 발생한다(8:28ff).
예수가 메시야라는 그 이해는 진정한 옳은 이해이다.
그런데 예수는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야가 되기를 원하는데, 베드로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기다린
전사적 영웅, 왕 메시야 되기를 기대해서, 거기에 tension이 벌어지고, 그리하여 예수가 어떤 메시야인가 이 ten-sion으로
이 부분이 가득차 있다.
이 tension은 막14:61에 산헤드린의 재판에서 예수가 자기의 메시야 됨을 산헤드린에 공표함으로 해소가 된다.
그런데 지금 이 부분에 있어서는 10:46-51까지의 예수의 예루살렘의 입성 때에 여리고에 장님이 예수의 메시야 됨을 선언하므로
3막이 마친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수의 진정한 메시야됨에 대한 인정이 됐으나, 어떤 의미로 메시야가 되느냐 하는 것에는 계속 tension이 있다.
 
 
Ⅴ. 제 4막: 11:1-13:37
 
여기서는 극에서 절정을 이룬다.
점증했던 tension이 폭발하는 단계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체포할려고 준비해서 체포한다.
예루살렘에 입성, 성전에서 소란, 결의 하고 심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Ⅵ. 제5막 (14:1-15:3)
 
tension이 폭발하는 장면인데 예수가 체포되고 심판받고 죽임을 당한다.
여기에서 십자가에서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백부장의 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이 나온다.
 
 
Ⅶ. 에필로그(15:4-16:2)
 
예수의 장사지냄, 빈무덤의 발견 천사들이 나타남, 그리고 happy ending으로 끝난다.
 
M. Hengel에 의하면 효과적인 presen-tation을 하기 위해서 고대의 드라마의 형식을 빌려서 예수의 삶, 행적, 사역,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인류를 위한 구원의 사건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복음서를 썼다고 주장한다.
 이 복음서는 드라마 형식을 빌린 케리그마틱 이야기 서술이다.
이것은 믿음을 유발시키고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것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연극의 형식을 빌린 것이라 주장한다.
 
 
 
 
요점정리 : "교회가 말하면 개나 소나 다 메시야가 된다."
 
 
 
 
               이글을 읽는 모든분들은 이성이 충만하여, 항상 진실되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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