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개신교를 떠난이유(3)-평신도의 신앙생활과 규범



나의 기독교 경험담

내가 개신교를 떠난이유(3)-평신도의 신앙생활과 규범

엑스 0 1,575 2002.08.05 13:27
3. 평신도의 신앙생활과 규범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이란 천국 가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또 많은 목회자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신앙의 목표가 천국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에서의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것이 바로 종교의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목회자들이 천국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오늘의 나의 삶과 관계가 없다면 신앙생활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가 이승에서의 삶에 있어서 가치관이나 지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란 마땅히 신도가 현실생활에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등 가져야 할 가치관과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카톨릭에서 생명의 존엄성이란 가치관을 가지고 낙태를 엄금하는 것은 그 좋은 예라고 하겠다.

그러나 나는 개신교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규범을 제시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개신교에서 교인에게 "해야 할 일"로 요구하는 것은 "믿음 생활"이고, "해서는 안 될 일"로 요구하는 것은 술, 담배, 제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술, 담배, 제사 등에 대한 목회자들의 태도는 매우 모호하고 이중적이다.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하고 통일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사석이나 속회 같은 작은 모임에서는 "술 좀 하는 거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고 말하고, 같은 목회자가 강단에 서면 타락한 사람의 생활로 술과 담배를 지적하곤 하는 것이다. 목회자들의 태도가 이렇게 모호하니 교인들의 태도도 모호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술, 담배는 교회에서 금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먹지 않는 개신교인을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개신교가 말하는 이런 규범 몇 가지를 가지고 생각해 본다.

1) 믿음 생활

교회가 평신도들에게 요구하는 규범이란 "믿음 생활"이다. 그런데 믿음생활의 실천규범으로 구체적으로 교회가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교회 봉사와 헌금에만 집중되어 있다. 집안 일을 제쳐놓다 시피하고 교회 일에 열중하는 사람을 신앙이 매우 좋은 성도라고 목회자들이 칭찬하는 것을 나는 어려서부터 수없이 들어왔다. 하나님의 사업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논리로.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목회자의 사모도 그렇게 열심히 교회 봉사를 하지는 않는다. 속세에 사는 우리 평신도가 가족과 이웃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면서까지 교회 봉사에만 전념하는 것이 과연 건전한 믿음 생활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오히려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나아가 이웃에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자 평신도의 덕목이라고 나는 믿고 참고로 이슬람의 경우에는 교리와 가족의 의무중에 어느것이 먼저냐고 하면 후자쪽이라고 한다. 한 가지 예로 율법에 따라 지하드(聖戰)를 행하기 위해 전장에 나갈 때 부모님이 반대하면 그 자녀는 그 책무를 다 하지 않아도 된다.

B목사는 개신교가 제시하는 규범으로 "성화"가 있지 않느냐고 내게 반문했다. 나는 작년 B목사가 시작한 "제자화 성서공부"를 통해 "성화"라는 개념을 배웠다. 나는 신학적으로 성화가 어떻게 설명되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제자화 성서공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화의 개념이란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거룩하게 성별된 삶"이라고 한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지지 말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


요컨대 비신자와는 사회생활을 하지말고, 부정한 것은 만지지도 상대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대로라면 필연적으로 속세와 단절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 같은 생활은 수도승이나 아미쉬(Amish)의 생활에 가까운 개념으로 이해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아미쉬 마을의 경우 21세기를 바라보는 현대에 TV조차 보지 않고 오직 신앙에만 정진하는 그들의 삶은 매우 인상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생활이란 신앙생활을 위해 속세의 욕심을 뛰어넘은 고결한 생활이다.

그러나 이 같은 종류의 성화의 개념을 우리같이 속세에 사는 평신도들에게 규범으로 제시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본다. 이 같은 생활은 우리 같은 평신도는 고사하고 목회자들도 지키지 못하는 기준인 것이다. 목회자들이 이러한 성화의 기준을 지키고자 한다면 자신과 그 가족부터 세속에서 분리시켜야 할 것이다. 왜 자신도 지키지 않는 기준을 평신도에게 지켜야 할 규범이라고 제시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성별된 삶이 고결하다고 해서 속세에 사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일반인 즉 평신도 역시 모두 나름대로의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속세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업, 예술, 학문, 정치 등 어떤 가치건 이 사회와 어우러져 사회의 한 부분을 형성하며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속적인 가치와 역할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반하는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것은 이것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을 구성하는 한 요소인 것이다.

나아가서 기성교단은 평신도가 속세에 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평신도란 속세에 살기 때문에 바로 평신도인 것이다. 기독교의 사랑이란 속세를 떠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속의 한 가운데 살면서 이웃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것이 바로 평신도의 삶이요, 신앙이요, 복음인 것이다. 강도를 만난 사람의 비유를 생각해보자. 예수께서 우리의 이웃이라고 가르치시고 있는 사람이 유대인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이라는 점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요즈음의 말로 바꾸면 기독교인이 아니라 이교도, 비신자 혹은 죄인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사마리아인이, 즉 이교도가 우리의 이웃이며, 이들과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이 평신도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메시지인 것이다.

나는 내가 이교도라고 생각했던 무슬림(이슬람인) 들과 화합하기 위해 그들의 신앙과 관습에 따르고 있고 오히려 그곳에서 주님의 진리를 더욱 발견해 나가면서 성장하고 있는 나 자신을 확인하고 있다.
그들도 자신들의 진리가 통하는 종교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존중해 준다.
고로 나의 관점으로는 기독교인들보다는 무슬림(이슬람인)들이 오히려 하나님, 예수님의 성경말씀에 가깝게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본다.

만약 우리가 속세에 살면서 성화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비신자와 물리적으로 구분 짓고, 이런 것으로 우리를 성화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바리새인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은 예수께서 오시고, 사시고, 또 죽음으로 그 사랑을 실천하신 곳이다. 교회는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 속의 인간들과 함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함께하고 가난한 사람과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에 나눠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세상을 등지고 기독교인만이 모여 자신의 구원에만 몰두하는 곳은 수도원이지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성화의 개념은 감리교나 장로교와 같은 기성교단에는 적절치 않는 개념이라고 본다.

2) 제사

제사에 대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퍼온글]

[1998년 2월에 아버님의 상을 당하여 서울에 가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 우리나라의 통상의 장례절차란 고인의 빈소를 설치하고 문상을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문상 방법은 이 문상 기간에 고인의 빈소를 개별적으로 찾아뵈옵고 인사(절)를 하고 또 유족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아버님이 장로님이셨고 또 평생을 교인으로 사셨으니 문상객 중 상당히 많은 분이 개신교인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다. 그런데 개신교인들의 문상이란 것이 매우 복잡하다. 어떤 사람은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절을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빈소 앞에서 묵념이나 목례를 올리고, 어떤 사람은 꿇어앉아 기도를 하는 등 가지각색이었다. 더욱이 거북한 것은 상당수의 문상객(아마도 목사나 전도사등 교역자들이 아니겠나 생각된다)이 빈소 앞에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간단한 예배를 보는 것이다. 예배를 봐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뒤에는 많은 문상객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기도와 찬송 등으로 오랜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매우 민망한 일이었다.]

교회에서는 제사를 금하고 있다. 특히 절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으로 이는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살아 계신 부모에게 절하는 것은 괜찮으나 돌아가신 시신이나 영정에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제사가 왜 우상숭배인지 나는 동감할 수 없다. 우리가 절하는 것은 비록 부모가 살아 계실 때라도 그 부모의 물질적 육체에 절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라는 그 인격체에 절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돌아가신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돌아가신 부모의 시신이나 영정 그 자체에 절하는 것이 아니다. 돌아가신 부모의 인격체에 대한 예절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만약 돌아가신 분은 인격체가 아니라면 기독교가 부활을 믿는 종교라고 할 수 있는가? 육신의 죽음은 형식적일 뿐 영혼의 불멸을 믿는 것이 기독교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돌아가신 분은 마치 돌이나 나무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개신교에서도 시신이나 영정 앞에서 예배는 본다. 시신이나 영정을 모시고 예배를 보는 것은 시신이나 영정이 살아 있는 생명체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으로 상징되는 부모를 모시고 예배를 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 시신이나 영정을 모시고 예배를 보는 것은 괜찮고 절하는 것은 안 된다는 논리를 나는 납득할 수 없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제사를 지내는 분을 주위에서 많이 본다. 그러나 이 분들은 마치 죄인처럼 숨어서 제사를 지낸다.

실제로 많은 목회자들이 제사를 금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에 동감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정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제사문제로 인해 많은 순교자까지 냈던 카톨릭이 오히려 오랜 검토 끝에 제사를 받아들인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제사란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전통문화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제사를 금하는 것이 단순히 제사의 중단으로만 결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부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마치 술, 담배 정도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만약 제사가 교리적으로 그렇게 문제가 된다면 제사를 금하는 대신 그에 대응하는 규범을 제시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제례나 상례에 관한 한 개신교는 반대만 했지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많은 목사나 교인들이 예배를 보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앞서 아버님의 장례에서 본 혼선은 그 모든 기독교인들이 모두 교육을 잘못 받아 그런 것인가? 또 만약 그들이 모두 교육을 잘못 받았다면 그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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