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의 동문서답[2]

▶ 예수의 동문서답[2]

이드 0 3,976 2005.03.04 11:41

예수는 3년이란 그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기적을 보여 줬으며 또한 무수한 설교를 하였다.
그러나 죽음 직전 까지도 그는 자신의 정체성 즉 자신이 정말 메시아인가하는 의문점을 해소하지 못 했으며 그를 따르는 제자와 신도들에게도 확신을 주지 못한 불우한 일생을 보냈다고 바이블은 증거하고 있다.

 

만약 로마가 그들의 정권 안보 차원에서 기독교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기독교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이말은 로마 시대에 기독교의 도그마를 정립 혹은 조작을 하지 않았다면..... 하는 말과 뜻이 같다고 보면 되겠다.

 

바이블 자체가 그만큼 헛점과 오류가 많다는 뜻이다.

예수는  기적이 절실히 요구되는 장소에서 그의 능력을 보여 주지 않았고
확실한 표현이 필요한 대화에서는 비유로 말하거나 아예 동문 서답을 해 버렸다.

 

예수의 동문 서답을 몇가지 정리해 보기로 하자.

1)사탄과의 대화
<<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마태 4:3) >>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마태 4:4) >>

 

*신으로서의 능력을 보여 달라는 요구에 예수는 너무나 엉뚱한 대답을 한다. 예수의 대답에 더이상 추궁하지 않는 사단의 반응이 오히려 이상하기만 하다.

*예수는 신명기 8장에 나온 말을 인용하였지만 그 인용 예 역시 너무나 억지스럽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고생시키시고 굶기시다가 너희가 일찌기 몰랐고 너희 선조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 주셨다. 이는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야훼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었다. (신 8:3) ]

 

*신명기의 내용은 광야 40년 고생의 이유를 설명하고자하는 야훼의 말이다.
*왜 이스라엘 선조들 고생담의 이유가 사탄의 요구에 대한 답이 되어야했을까?

*차라리 그 돌을 만나쯤으로 변신시키고 난 뒤....빵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라고 훈계했어야 좀 더 설득력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글에서는 야훼의 말씀과 빵이 살아가는 데 다 필요하다는 뜻이지만....예수의 말은 오직 야훼의 말씀만 가지고 살아라라는 뉘앙스를 풍기지 않는가한다....그대는 빵없이 살 수 있는가?

 

2)빌립과의 대화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읍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요한 14:8) >>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요한 14:9,10) >>

 

*빌립의 현실적 의문에 대한 예수의 현학적 대답이다.
*사실 야훼가 하늘 나라에 있느냐 혹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느냐하는 것은 심각한 신학상의 주제라고 볼 수 있는 데....
*무식한 빌립이 과연 예수의 이말을 이해는 했을까?
*빌립에게 질타하기 전에 좀 더 쉽게 설명을 할 수는 없었을까?

*참,그대는 야훼가 하늘나라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대의 마음안에 임재한다고 생각하는가?

 

3)니고데모와의 대화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읍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읍니까?" 하고 말하였다. (요한 3;2) >>
<<그러자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3:3) >>

 

*예수의 신성을 즉 메시아됨을 인정하고자하는 니고데모의 질문에 예수는 엉뚱하게도 중생에 대해 설교를 한다.
*이러한 동문서답에도 불구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 가는 니고데모가 유대인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니...너무나 의심스럽지 않은가?

 

4)두 죄수와의 대화
<<"네가 유다인의 왕이라면 자신이나 살려 보아라" 하며 빈정거렸다. ...(누가 23:37) >>
*한 죄수의 이러한 현실적인 요구에 예수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누가 23:42) >>
<<예수께서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 가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누가 23:43) >>


*다른 한 죄수의 간청은 두 가지 관념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은가한다.
*즉 윤회설을 믿는 자일 경우 그리고 예수의 재림을 믿는 경우...

*그러나 예수는 그 죄수의 관념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설명도 하지 않고....뜬금없이 오늘 나하고 낙원에 함께가는 은총을 베풀겠다고한다.
*그러한 예수의 반응에 그 죄수는 속으로 웃었을까? 아니면 기독인들의 기대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그 축복을 기대했을까?

*더우기 이 대답은 마태 복음에서 예언한 예수의 사후관하고도  상충된다.


[요나가 큰 바다 괴물의 뱃속에서 삼 주야를 지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 속에서 삼 주야를 보낼 것이다. (마태 12:40) ]


*마태에 의하면 예수는 죽은 다음 게헨나에서 삼일 보내고 난 뒤 부활해야만할 터인데....
*이 장면에선 낙원에 갔다가 부활할 거라고 한다....
*만약 낙원이 땅 속에 있다고 하면 세째 하늘에 있는 낙원에 갔다고 주장했던 바울과 주장이 또 상치되겠고....[고후12 :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가나안 여인과의 대화
<<이 때 그 지방에 와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서서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읍니다" 하고 계속 간청하였다 (마태 15:22) >>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가까이 와서 "저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 오고 있으니 돌려 보내시는 것이 좋겠읍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마태 15:23) >>

 

*딸의 치유를 바라는 여인의 애처러운 간구에 예수와 그 일행들의 반응이 너무나 잔인하다.
*예수는 아예 무시하고져하고...제자들은 귀찮으니 쫓아내버리고져 한다.
*그 다음 예수의 대답을 보자.

 

<<예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 15:24) >>
<<예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며 거절하셨다 (마태 15:26) >>
 
*여인의 그 애닯은 간청에 그대는 [개]같은 이방인이라고 오히려 저주를 하고 있다.
*이러한 모욕에도 여인은 처참할 정도로 애원한다...그리고 자존심 마저 포기한다.

 

<<그러자 그 여자는 "주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마태 15:27) >>
<<그제야 예수께서는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마태 15:28) >>

 

*동문 서답하고는 좀 다르지만.....
*이방인에 대한 예수의 관념을 엿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대화가 되겠다.

*그넘의 구원이 무엇인지(병 치료를 구원으로 해석하자) 이렇게 굴욕적인 대우를 감수해 가면서도 그 열매를 찾고자해야만 할까?

 

6)빌라도와의 대화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 너를 내게 넘겨 준 자들은 너희 동족과 대사제들인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물었다. (요한 18:35) >>


*예수의 행적에 대해 설명해 봐라는 빌라도의 질문이다.
*즉 너가 정말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황당한 유언비어를 유포했느냐 그리고 어떻게 처신했기에 그대의 동족들인 대사제들이 너를 죽일려고하느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 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요한 18:36) >>

 

*간단하게 나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 적이 없다....이렇게 대답하면 될 것을 예수는 왜 이렇게 말을 빙빙 돌리기만 했을까?
*그리고 예수는 부하(종)가 있다고 전제를 하고 대답을 했는 데....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와 신도들을 부하라고 생각했음을 은연 중 보여 주고 있다.(현실의 목사와 교주들이 신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예수가 대표적으로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

 

<<"아뭏든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빌라도는 예수께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요한 18:37,38) >>

 

*빌라도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게다가 빌라도는 예수가 왕이라고 말한 적이 결코 없다....왕이냐고 질문만 했을 뿐이지...

*그러나....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라는  예수의 이러한 황당한 답변에도 빌라도는 그저 참고만 있다.
*그리고 진리가 무엇인가? 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는 왜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4:16) ]...이말을 왜 하지 않았을까?


어떠한가?
그대가 만약 예수의 대화 상대라면 ...하고 생각해보시라....


사실 기독인들과 대화할 시 상기와 같은 사례가 너무나 동일하게 재현된다.
대답이 궁하면 ....오직 믿음으로하는 것은 예수의 동문 서답에 추가된 또 하나의 처참한 변명이 되겠다.


 



보람있는삶바로 어제 말하는 대통령과 정치인의 말도 기자의 의도와 편집에 따라 왜곡되어 전달되면 그 진의가 바로 전달될 수 없는 것이 "언어의 굴레" "언어의 한계"이온데, 하물며 예수님 사후 몇십년 지난 뒤에 쓰여진 복음서의 기록 내용은 얼마나 우리에게 실체에 가까운 진실을 전달하고 있을까요?(2004/07/16)
보람있는삶기록자의 지식수준과 의도에 따라 또는 의식을 못했더라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대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2000년전 기록한 성경속 시대의 글들 속에서 현재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교훈과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그 의미들을 파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200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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